[디깅노트] 네이버·카카오에 '독약' 될 한미 팩트시트 '디지털 조항'

2025-11-17     윤상은 기자

 

미국 빅테크가 한미 관세·안보협상에서 마지막 개척지인 한국 인터넷 시장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한국은 드물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자생한 시장이다. 중국, 북한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가 미국 빅테크의 생태계에 종속될 때 한국은 네이버, 다음, 카카오 등 자국 플랫폼을 키워냈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SKB)의 망사용료 관련 법정 공방은 미국 빅테크의 폭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낸 이례적 사례였다. 미국 빅테크에 한국 ICT 시장은 작지만 거슬리는 곳이었을 테다.

미국은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에 '디지털 서비스·데이터 이전 관련 법·정책에서 미국 기업 차별 금지' 내용을 담아 자국 빅테크를 지원했다. 구글이 최대 수혜 기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한국 정부의 고정밀지도 데이터 국외반출 승인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만들 계획은 없지만 지도 서비스는 고도화하고 싶으니 한국 정부가 40년 동안 공들여 제작한 데이터를 달라는 주장이다. 유튜브가 유발하는 방대한 트래픽으로 초래된 국내 통신사와의 망사용료 갈등도 지속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양국이 약속한 미국 기업 차별 금지는 구글의 주장에 힘을 보탠다.

미국 기업은 정말 차별을 받았을까. 구글, 넷플릭스 등은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법인세 회피 의혹으로 회자된다. 구글은 한국에서 얻는 수익 대부분을 싱가포르법인으로 보낸다. 그러면서 구글코리아는 온라인광고 상품·서비스 재판매를 주요 사업으로 삼아 지난해 한국 매출을 3869억원으로 집계했다. 같은 기간 10조원 넘는 매출을 낸 네이버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적다. 이에 대해 구글이 검색엔진과 유튜브로 한국에서 얻은 수익은 훨씬 많지만 세율이 낮은 싱가포르에서 법인세를 낸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구글코리아가 한국에 납부한 법인세는 240억원이다. 한국 정부는 이를 직접 제재한 적이 없으니 오히려 미국 기업을 언제나 온화하게 대한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구글지도에 원자로, 군사시설 등 안보·보안에서 중요한 장소까지 그대로 표기했다. 네이버, 카카오 지도 서비스에서는 가림 처리됐던 곳이다. 올해 구글은 고정밀지도 데이터의 국외반출을 요구하며 안보·보안시설을 가림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분단된 한국의 상황을 이제서야 고려할 수 있는 여유도 미국 기업의 도도한 위치를 보여준다. 또 구글은 한국 정부의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 요구에 '수용불가'를 고수했다. 최근 국토교통부 등 8개 부처 등으로 구성된 측량성과국외반출협의체가 구글에 더 자세한 정부 요구 이행계획 서류를 제출하라고 요구할 정도였다. 

미국은 자국 빅테크를 지원해 소프트파워를 공고히 한다. 그들은 군사·경제력을 앞세운 하드파워뿐 아니라 자국의 문화와 가치를 전 세계에 퍼뜨리는 소프트파워로 세계를 호령하고 있다. 구글,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넷플릭스 등의 제품·서비스는 세계인의 생활방식에서 기준이 됐다. 검색엔진, 지도, 차량호출, 음식배달, 장소예약, 메신저 등 미국 IT 서비스는 전 세계인의 생활과 밀접해진 지 오래다.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미래 기술 경쟁에서도 빅테크는 선두를 예약했다.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정부를 등에 업은 빅테크는 한국 내 데이터센터 구축을 뒤로 미루고 법인세 회피라는 꼬리표에도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한국 사업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구글이 고정밀지도 데이터를 받아 얻을 수 있는 단기이익은 광고와 가게 예약 서비스 수익이다. 지도 서비스로 쌓은 데이터는 장기적으로 AI 학습과 자율주행 기술에 기여할 수도 있다.

한미 관세·안보협상에서 한국은 반도체, 조선 등 핵심 산업 지원과 평화적인 우라늄 농축, 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지지를 얻었다. 요동치는 외환시장 안정과 지나친 관세 부과를 막은 것도 성과다. 그러나 이를 위해 디지털 서비스와 데이터 이전에서 미국 기업을 차별하지 않겠다고 확약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의기양양한 대상을 차별하지 않겠다는 것은 상대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겠다는 약속이다. 한국에서 자생한 디지털 생태계가 미국 빅테크에 잠식될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