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 150조 국민성장펀드…"5년전 실패 데자뷔" 냉랭한 시장, 왜?

2025-11-17     류수재 기자
이억원 금융위원장 /사진=김홍준 기자

정부가 저성장 극복을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150조원의 국민성장펀드를 본격 가동하는 가운데, 시장의 반응은 냉랭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주도의 관치금융 펀드에 관한 우려와 더불어 해외 실패 사례가 상기되고 있고, 중복투자 등의 여러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면서다.

17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다음달 10일 국민성장펀드 출범을 앞두고 "규모뿐 아니라 지원 방식과 협업 체계도 그간 산업 금융이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라며 "기존의 마인드와 업무방식은 획기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관한 시장의 냉담한 반응이 감지된다. 근본적인 원인은 5년 전 정부 주도 펀드의 실패 사례가 있어서다.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0년, '한국판 뉴딜펀드'는 국민 재테크 상품으로 광고됐으나 46개월 만기가 도래한 국민참여 뉴딜펀드의 10개 평균 수익률은 2.14%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더욱이 이 수익률은 정부 재정이 손실을 먼저 부담한 기준으로, 재정 자금을 제외한 실제 펀드 수익률은 평균 0.75%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당시 정부는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부동산 등 비생산적인 부문에서 생산적인 부문으로 이동시키겠다고 뉴딜펀드를 홍보했다. 핵심은 현 정부에서 표방한 '생산적 금융'기조와 일치한다는 점으로, 사실상 이름만 바뀐 똑같은 정책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뉴딜펀드는 관치펀드, 포퓰리즘 등 비판 속에 민간 자본 유입 부진과 수익률 저조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다"며 "투자 실패 시 면책 지원을 내건 이번 펀드도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정책 의지보다는 펀드의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국회예산정책처는 150조원의 펀드가 기존 정책펀드와 '중복 투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AI 분야의 '인공지능 혁신펀드', 바이오 분야의 '케이·바이오·백신펀드', 창업기업 전반의 '중소기업 모태펀드'와 투자 대상이 겹친다는 것이다.

한정된 민간 출자 수요가 분산되면서 정책펀드 운용의 비효율이 심화되고, 각 분야 투자 성과 점검도 어려워질 수 있다. 또 정책펀드가 민간 벤처캐피탈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은행들이 한정된 위험가중자산(RWA) 예산을 국민성장펀드 출자에 소진하면, 기존 중소형 민간 벤처캐피탈 펀드에 투자할 재원이 부족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이런 가운데 해외 실패 사례도 조명되고 있다. 국민성장펀드 근거로 제시되는 일본의 산업혁신기구(INCJ)를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INCJ가 주도한 엘피다 반도체는 2012년 파산했고, 재팬디스플레이(JOLED)도 2023년 3월 파산을 신청했다. 정부의 '지원'이 시장의 '경쟁력'을 담보하지 못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국민성장펀드가 주목하는 산업(반도체, AI)이 앞서 INCJ가 실패했던 산업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에 대한 시장의 냉담함은 비이성적 반응이 아니고 과거의 실패와 구조적 현실, 해외의 교훈에 기반한 합리적 의심으로 봐야 한다"며 "구조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현실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