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깅노트] 무심한 정부…지스타서 목격된 '게임산업 정책'의 민낯

2025-11-19     최이담 기자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국내 최대 게임전시회 '지스타(G STAR) 2025'는 축제의 열기보다 ‘빈자리’가 먼저 떠오른 행사였다. 우리나라 게임산업의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존재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달 13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 2025 개막식에는 문체부 장차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단상에 선 인물은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이었다. 한국 게임산업을 대표하는 행사에 정부가 보인 관심은 이 정도였다.

하루 전 열린 대한민국 게임대상 시상식도 비슷했다. 대통령상인 게임대상의 시상자는 대신 무대에 오른 콘텐츠정책국장이었다. 이튿날 개막식에는 그조차 보이지 않았다. 시상은 국장이, 개막은 과장이 맡는 기묘한 상황이 연달아 연출된 셈이다.

문제는 단순히 ‘급’이 낮았다는 사실이 아니다. 개막식 이후 진행된 VIP 투어에서 문체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기관장, 게임사 대표들과 함께 전시장을 돌았다. 축사에서는 메시지 전달도, 산업에 대한 짧은 언급도 없었다. 질문하는 기자들에게는 목례만 건넸다. 이러한 모습은 게임산업에 대한 정부의 태도처럼 보였다. 정부가 말로는 ‘K콘텐츠 300조 시대’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게임산업 최대 행사에는 얼마나 무심한지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공백’은 국회의 연이은 방문으로 채워졌다. 14일에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스타 현장을 찾았다. 그는 자신을 ‘스타크래프트 게이머’라고 소개하며 게임 업계와의 소통 의지를 강조해온 인물이다. 정 대표는 인디게임 부스를 둘러보고 개발자들과 대화도 나누며 “게임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고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관심은 준비되지 않은 이해로 한순간에 무너졌다. 정 대표는 e스포츠 진흥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임요환, 이윤열, 홍진호, 마재윤 등이 자리를 잡지 못한 현실도 있다”고 언급했다. 문제는 마재윤이다. 그는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영구 제명된 인물이다. e스포츠 생태계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사건의 당사자이자, 커뮤니티에서 ‘마주작’으로 불리며 사실상 금기시된 이름이다.

현장에서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발표가 끝난 뒤 취재진 사이에서는 “방금 그 이름을 실제로 언급한 게 맞느냐”는 크로스체크가 이어졌다. 이후 정 대표는 “큰 실수를 했다. 스타크래프트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게이머를 자칭한 정치인이 이런 사안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적잖은 허탈감을 남겼다. 게임산업에 대한 관심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피상적인지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15일에는 뒤늦게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스타 전시장을 찾았다. 김 총리는 엔씨소프트·넷마블·크래프톤·웹젠 등 주요 부스를 둘러보고 직접 게임을 시연하며 “게임이 산업으로 인정받고 정착한 만큼 규제 논의 등 정부에서 할 일이 많다”며 “지스타가 더 세계적인 대회로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총리가 지스타에서 규제 완화를 언급한 것은 상징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이틀 전 개막식에서 드러난 문체부의 공백까지 메워지지는 않는다. 총리의 메시지는 ‘정치적 의지’의 표현이지만, 산업정책은 결국 주무부처의 일상적 관심과 실행력에서 갈리기 때문이다. 매일 산업을 들여다봐야 할 부처가 1년에 한 번 열리는 지스타 개막식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현실은 '게임산업을 전략산업으로 키우겠다'는 말과 여전히 거리가 있다.

지금 한국 게임 업계는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 미국, 일본과의 싸움은 더욱 격렬해지고 대형 게임사들은 글로벌 동시 출시, 장르 다변화, ‘착한 비즈니스모델(BM)’ 등 글로벌 확장을 위해 새로운 전략을 쏟아내고 있다. 지스타2025 현장은 이런 변화와 위기의식을 동시에 보여줬다.

그러나 정작 정책을 다루는 정부와 국회는 여전히 게임산업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무심하고, 국회는 무지했다. 올해 지스타는 단순한 게임쇼가 아니었다. 한국 게임산업이 직면한 글로벌 경쟁 환경과 이를 뒷받침해야 할 정책주체들의 현실을 동시에 비춰준 거울이었다. 

산업은 앞으로 나아가는데 정책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산업의 무게와 속도를 따라올 수 있는 정책적 감각이다. 정치권의 보여주기식 방문 사진이 아니라 그 공백을 채울 실행이 뒷받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