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신용 대출금리가 고신용보다 낮다?…은행권 '볼멘소리' 이유는
"신용 위험이 높을수록 연체 가능성에 대비해 더 높은 금리를 받는다는 금융의 기본상식이 사실상 무너졌다."
정부 주도의 '포용금융' 정책이 금융시장, 특히 은행권의 기본원칙을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저신용자의 대출금리가 고신용자보다 낮아지는 이례적인 금리역전 현상이 확산하면서다.
금융소외 계층을 지원한다는 본래 취지와 달리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 금리 체계가 고착되면서 고신용자에 대한 역차별과 도덕적 해이, 나아가 은행의 건전성 악화까지 우려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18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신용점수 600점 이하(KCB 기준) 차주에게 그 윗단계의 신용점수대보다 더 낮은 금리를 적용한 은행은 6곳으로 집계됐다.
NH농협은행은 9월 신용점수 600점 이하 대출자의 평균 금리를 연 5.98%로 적용했다. 반면 바로 윗등급인 601~650점 대출자의 금리는 연 6.19%로 오히려 0.21%p 높았다. 신한은행 역시 600점 이하에 연 7.49%를, 601~650점에는 연 7.72%를 적용해 금리가 역전됐다.
iM뱅크의 격차는 3.54%p였고,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도 600점 이하 금리가 8.19%인 반면 601~650점은 5.48%로 무려 2.71%p나 차이를 보였다.
이처럼 은행권이 비상식적인 금리 체계를 운영하는 배경에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전방위적인 포용금융에 대한 압박이 자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금융구조를 '금융계급제'라고 명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번 주 중 5대금융(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을 소집해 포용금융 실천계획을 점검할 예정이다. 이에 당국의 포용금융 정책에 대한 압박이 더욱 강해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은행들은 민감하게 반응하며 움직이고 있다. 국민은행은 새희망홀씨II 대출 신규 금리를 인하했고 신한은행은 우대금리를 확대했다. 또 일반 신용대출 영역에서도 600점 이하 저신용자에 대한 가산금리를 낮추고 우대금리를 높이는 '인위적인 금리 조정'을 단행했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정부의 포용금융 기조와 총량 규제 등에 맞추려면 저신용자 우대상품을 늘리고 금리를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포용금융 실적을 점검하는 회의가 예고돼 있어 리스크 관리를 이유로 소극적으로 나설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정책 의도와 달리 일부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부작용도 지적된다. 은행들이 600점 이하의 특정 저신용 구간에 대한 금리 인하에만 집중하면서 그보다 신용점수가 조금 더 높거나 이미 대출을 받은 차주들의 또 다른 대출이나 연장 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신용점수는 상환실적 및 거래정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산출되므로 반드시 저신용자가 저소득자인 것은 아니다"라며 "저소득자가 아닌 저신용자에게 혜택이 흘러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