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사람들] 새 수장 맞은 한화세미텍, '기술통' 앞세워 TC본더 주도권 잡는다
한화세미텍이 기존 주력 사업인 표면실장기술(SMT) 장비를 넘어 신성장동력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용 열압착(TC) 본더 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김재현 한화푸드테크 기술총괄을 새로운 대표로 맞이했다.
약 10개월 만에 친정에 복귀한 김 신임 대표는 반도체 장비 업계에서 30여년간 근무한 전문가다. 향후 국내외 장비사를 두루 겸비한 경험을 활용해 고객사 확보와 신규 장비 개발 등에 박차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최근 불거진 경쟁사 한미반도체와 특허 소송전에 대한 대응책 마련과 더불어 조직개편 등 내년 경영전략을 조기에 수립해 사업 계획을 실행해 나갈 전망이다.
30년 반도체 업계 전문가…TC 본더 추가 수주 과제
25일 재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최근 정기 인사에서 김재현 한화푸드테크 기술총괄을 한화세미텍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이후 김 대표는 이달 초 공식 업무에 돌입했다.
1970년생인 김 대표는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기계공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공학박사 출신이다. 이후 2004년 램리서치, 2007년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 2014년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즈, 2017년 원익IPS 등을 거치며 증착·공정·설비개발 등 반도체 장비 기술 전반에 대한 경험을 쌓았다.
이번 선임을 두고 업계에서는 예정된 수순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앞서 한화그룹은 올해 초 한화정밀기계를 한화세미텍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김 대표를 수장으로 내정했다. 다만 김 대표의 전 직장인 원익IPS에서 '동종업계 이직 금지 조항'을 문제 삼으면서 해당 계획이 무산됐고 김 대표는 내정 한달 만에 한화푸드테크 기술총괄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원익IPS가 제기했던 내용에 따르면 김 대표의 동종업계 이직 금지 조항은 이달 1일 공식 해제됐다. 해당 조항이 만료되는 시점에 맞춰 다시 한화그룹에서 김 대표의 복귀를 추진한 것으로 해석된다.
10개월 만에 친정에 복귀한 김 대표는 신규 고객 확보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세미텍은 주력인 SMT 장비를 비롯해 △반도체 후공정 장비 △공작기계 등에서 수십 년간 사업을 키워왔으나 글로벌 경기침체와 미국 정부의 고율 관세 등의 영향으로 SMT 업황의 회복 속도가 더뎌 부진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실제 올해 3분기에도 전분기 대비 15.5 % 감소한 1087억원의 매출과, 영업손실 1억원을 거뒀다.
한화세미텍은 반도체 장비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낙점하고 2023년 한화모멘텀에서 반도체 전공정 사업을 인수하며 포트폴리오를 확장했다. 또 지난해에는 HBM 제조 핵심 장비인 TC본더 개발에 집중했다. 그 결과 올해 상반기에 SK하이닉스로부터 총 805억원 규모의 TC 본더 공급 계약을 따냈다.
다만 하반기에 기대됐던 SK하이닉스의 추가 장비 발주나 신규 고객사와의 계약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김 대표는 내년도 SK하이닉스의 청주 M15X 가동 시점에 맞춰 영업망 재편 등을 통해 내년도 사업 전략 재정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허 소송전 대응 마련…차세대 제품 개발 속도
김 대표는 한미반도체와의 특허 소송을 잘 마무리해야 하는 숙제에도 안고 있다. 앞서 한화세미텍은 지난달 한미반도체에 TC 본더의 핵심 기술과 관련해 특허권을 침해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2월 한화세미텍을 대상으로 한미반도체가 먼저 특허 침해 소송을 냈는데 이에 맞불을 놓은 것으로 보인다. 소송 대리인은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맡았다.
한화세미텍은 이번 소송에서 TC본더에 들어가는 부품 일부를 문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법원이 한화세미텍의 특허를 인정하는 경우 관련 기술이 적용된 설비에 대한 제조 및 판매가 금지되기 때문에 소송 결과에 따라 양사의 TC 본더 사업 매출과 경쟁 구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다만 특허 침해가 인정되더라도 판결 이후부터 제조·판매 금지 효력이 발생하므로 이미 SK하이닉스에 납품된 장비에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소송에 대해 한미반도체는 "이번 소송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적반하장 소송"이라며 "한화세미텍의 기술 침해에 대해 정당한 법적 대응을 하자 이에 맞서 역고소를 제기한 것은 후안무치한 행동"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김 대표는 차세대 제품 개발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한화세미텍은 일명 '꿈의 기술'로 불리는 하이브리드 본더를 내년 1분기 고객사를 대상으로 퀄테스트(품질 검증)를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하이브리드 본더는 반도체 칩과 기판을 연결하는 본딩 공정에서 기존 TC 방식보다 정밀도가 높아 고단 적층이 필요한 차세대 HBM에 적합한 기술로 꼽힌다. 볼 없이 구리배선과 유전체를 직접 연결해 면적을 줄이고 전송 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AI 수요 확대에 따른 고단 적층 HBM 수요 증가와 맞물려 주목 받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베리파이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하이브리드 본더 시장은 2023년 7조2500억원에서 2033년 19조34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연구개발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실제 한화세미텍은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지난해 대비 40% 증가한 약 300억원을 R&D에 투입했다. 또 반도체 장비 개발 조직 '첨단 패키징 장비 개발센터'를 신설하고 경기 이천 사업장에는 '첨단 패키징 기술센터'도 열었다.
차세대 원자층증착(ALD)과 플라즈마강화화학기상증착(PECVD) 제품에 대한 테스트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앞서 한화세미텍은 지난해 1분기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 ALD 제품을 출하했다. 통상 전공정 장비는 2년 이상의 테스트 기간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만큼 이르면 내년 초 성공적으로 테스트를 통과할 지 주목된다.
한화세미텍 관계자는 "김 대표의 복귀로 반도체 장비 시장 선점과 신기술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하이브리드본더 개발 등 차세대 기술을 앞세워 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