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 뗀 올리브영 美 진출.. 핵심 브랜드 공백에 규제·구색 장벽이 과제
올해 초 미국 LA에 법인을 세운 CJ올리브영(올리브영)이 내년 5월 현지 1호점을 오픈하기로 했다. 법인 설립부터 점포 출점까지 1년 3개월가량 소요되는 셈인데, 올리브영 특유의 속도 경쟁력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사이 현지 유통 채널들은 메디큐브, 조선미녀 등 핵심 K뷰티 브랜드를 독점 계약으로 선점하며 우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들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킬러 콘텐츠가 올리브영의 북미 성패를 가를 관건으로 꼽힌다.
20일 올리브영에 따르면 오는 2026년 5월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Pasadena)에 미국 1호 매장을 여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국내외 뷰티 브랜드와 입점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패서디나는 LA에서 북동쪽으로 약 18km 거리에 있는 소도시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Caltech) 등 유수의 연구기관이 소재해 고소득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북미 양대 뷰티 채널인 울타뷰티와 세포라도 이곳에서 점포를 하나씩 운영하고 있다.
발목 잡는 독점 계약… 구색 난도도 높을 듯
올리브영이 미국에 연착륙을 하기까진 걸림돌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올해에만 현지 유통업계에서 K뷰티 ‘모시기’ 경쟁이 벌어지며 주요 브랜드 판권이 동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울타뷰티는 5월 메디큐브와 손잡았고, 세포라는 1월 에스트라에 이어 한율(5월), 조선미녀(7월) 등과 독점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올해 2월 미국 법인을 설립한 올리브영이 현지화 전략 설계에 집중하는 동안 핵심 파트너 유치 기회를 놓친 모양새다. 지나치게 신중한 접근이 오히려 발목을 잡게 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뷰티업계 한 관계자는 “올리브영의 성공 방정식인 속도감과 추진력이 미국에선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브랜드 입장에선 올리브영과 돈독한 관계에 있더라도 본토의 대형 유통사들이 제안하는 계약을 거부하기 힘들다. 단번에 미국 전역에 입점할 수 있다는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울타뷰티는 1400여개, 세포라는 430여개 매장을 거느리고 있다. 실제로 성과는 즉각 나타나고 있다. 에이피알은 지난 8월 울타뷰티 전 매장에 입점한 메디큐브의 인기에 힘입어 올 3분기 미국에서만 15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이는 단일 국가 최초 기록이다.
올리브영이 K뷰티 특화 매장을 구상 중인 가운데, 일정 수준 이상의 구색을 갖추기까지 제약이 많다는 점도 과제다. 미국 화장품 규제인 현대화법(MoCRA) 등으로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는 점이 일례다. 영세한 규모의 인디브랜드의 경우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조직적 역량이 부족해 올리브영이 한국에서처럼 가지각색의 매대를 갖추기까지 적잖은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큰 위협은 아냐"
다만 올리브영 내부적으론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인지도 높은 브랜드가 초기 집객에 도움은 되지만 수천 가지 라인업 중 극히 일부인 데다, 단독 계약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경우도 드물기 때문이다. 세포라에 입점한 라네즈의 계약은 올 연말 만료되고, 울타뷰티에서 판매되는 메디큐브의 계약 조건은 내년 상반기까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화장품 제조업체 관계자는 “독점 파트너십은 진출 초기 단계에 통상적인 사안”이라며 “독점 계약이라고 해도 브랜드 전체가 아닌 개별 제품에 적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카테고리가 세분화되고 있는 만큼 K브랜드를 선보이는 데 한계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짚었다.
또 다른 글로벌 유통사 관계자도 “독점 계약의 기한이 과하게 길면 독소 조항”이라며 “법무적인 검토를 통해 어떻게든 입점하기 마련”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과거 한국 시장과 유사한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2010년 아모레퍼시픽이 아리따움 등 자사브랜드 로드숍과의 이해충돌 문제로 올리브영에서 전면 철수할 당시, 위기론이 무성했지만 오히려 유수의 인디브랜드를 발굴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는 사례를 들면서다. 이러한 성공 DNA가 있는 올리브영인 만큼, 지금 미국 시장에서 주요 브랜드를 뺏긴 상황도 데자뷔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속도보다 방향
올리브영은 속도보다 방향에 무게를 두겠다는 방침이다. K브랜드는 K유통사가 제일 잘 소개할 수 있다는 소구점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첫 매장은 'K뷰티 쇼케이스'를 콘셉트로 브랜드 스토리텔링과 한국 고유의 성분 안내, 체험 콘텐츠 등을 집약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인허가 절차 역시 자체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비롯해 ODM·OEM사와의 협력으로 무난히 극복 가능할 것으로 내다본다.
올리브영은 400여개 국내외 브랜드를 유치할 계획이다. 현지화 작업이 안정화되고 나면 이후 가파른 확장세도 기대되는 지점이다. CJ대한통운 미국 법인과 협업해 현지에서 상품을 직접 발송하는 물류망까지 구축하겠다는 포부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고조된 K뷰티에 대한 관심을 더 많은 글로벌 소비자에게 확산시키고 더 다양한 브랜드가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현지 기반이 되어 K뷰티 산업의 지속가능한 세계화에 기여하겠다”면서 “궁극적으로는 K브랜드부터 해외 브랜드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글로벌 뷰티·웰니스 유통플랫폼으로 진화하고자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