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KT의 ‘혼돈’과 포스코의 ‘약진’

2025-11-24     박종면 발행인

정치외압 굴복한 기업과 이겨낸 기업 극명한 ‘대조’
포스코, 현지화로 관세장벽 뚫고 소재산업도 ‘성과’
KT, 尹정부 후광 CEO 물러나고 사외이사들 ‘폭주’

기업 지배구조는 기업이 어떻게 운영되고 통제되는지에 대한 제도적·조직적 구조를 의미합니다.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 경영진의 권한과 책임, 그리고 주주·이사회·경영진·이해관계자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시스템입니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기업의 지배구조는 단순한 제도적 요건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성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기업 지배구조는 주인이 없는 이른바 ‘소유분산 기업’에서 특히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KB, 신한, 하나, 우리 등 금융사 계열을 빼고 국내에서 가장 대표적인 소유분산 기업을 꼽으라면 단연 포스코와 KT입니다. 두 기업그룹의 최근 상황을 보면 지배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확인됩니다. 나아가 지배구조의 근간을 뒤흔드는 정치적 외풍이 불 때 기업이 어떻게 스스로를 방어하고 대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등 역대 보수정권은 전통적으로 소유분산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인사에 적극 개입했습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방식이 매우 거칠었습니다. KT의 경우 정관 등에 따라 정당하게 선임된 내부 출신 대표이사 후보를 갖은 압박으로 물러나게 하고 사외이사들까지 대거 사퇴시켜 무려 6개월간의 경영공백을 초래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선임된 사람이 LG 출신의 김영섭 현 대표입니다. 당시 KT 인사 개입에 총대를 멘 곳은 1대주주인 국민연금이었습니다. 여당이었던 국민의힘도 적극 나섰습니다.

김 대표는 LG CNS와 LG유플러스 경력이 있지만 통신 전문가도, 인공지능(AI) 전문가도 아닌 재무통입니다. 8인의 사외이사 역시 교수·변호사·관료 출신 등이 주축이며 통신·보안·AI 전문가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비상계엄과 내란사태로 윤석열 정부가 무너지자 윤 정부의 지원 아래 구성된 KT 지배구조도 급격하게 흔들렸습니다. 무단 소액결제와 대규모 해킹사태는 김영섭 체제의 붕괴를 가속화했습니다. 결국 김 대표는 국회에 나가 연임 도전 포기를 선언합니다. 그러나 KT의 ‘혼돈’은 CEO 한 사람의 퇴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합니다.

 

정치 외풍을 대하는 기업의 자세

김 대표 후임자 물색에 들어간 KT가 무려 33인의 차기 후보군을 선정했다고 발표한 가운데, 정당한 유임 절차를 밟고도 윤석열 정부의 압박으로 물러난 구현모 전 KT 대표는 “KT 대표를 좋은 일자리라고 생각해 응모한다면 자격이 없다. KT의 역사도, 문화도, 기간통신사업자의 역할과 책임도 모르는 분들은 참여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특히 그는 현 이사회가 올해 초 임기 만료된 이사 4인을 전원 유임시키고 정관에도 맞지 않는 인사권 관련 규정을 신설하는 등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을 이어왔다고 지적하면서 “KT의 지배구조가 왜곡된 결과로 탄생한 이사회로부터 다시 심사를 받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대표이사 도전 포기 의사를 밝혔습니다.

구 전 대표의 지적대로 KT의 가장 큰 문제는 현 이사회가 왜곡된 지배구조의 산물이라는 데 있습니다. 김 대표야 물러나면 그만이고, 그가 데려온 친윤 성향의 인사들도 결국 퇴진할 것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서 구성된 KT 이사회는 쇄신이 어렵습니다. 더욱이 8인의 사외이사들이 똘똘 뭉쳐 외부 인사의 개입을 배제하겠다며 대표이사를 능가하는 권한을 행사하면서 이를 막을 수단조차 없는 현실입니다.

KT 이사회는 총 10인의 구성원 중 8인이 사외이사이며 이 중 7인이 윤석열 정부 초기에 선임됐습니다. KT 이사회는 올해 초 임기 만료된 4인을 모두 재추천해 ‘셀프 연임’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특히 KT 사외이사들은 부문장급 경영임원과 법무실장의 임명이나 면직, 주요 조직의 설치·변경이나 폐지 등 조직개편와 관련해 이사회의 동의를 얻도록 했습니다. 인사권과 조직에 대한 권한을 대표이사가 아닌 이사회가 가져간 것입니다.

KT는 신임 대표가 선임되더라도 인사나 조직개편과 관련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습니다. 사외이사들과 이사회는 경영진에 대한 감시나 견제에 집중해야 하는데, 자신들이 직접 경영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KT는 이제 ‘사외이사 공화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표는 퇴진 선언, 사외이사들은 ‘셀프 연임’

현 KT 이사회는 2023년 6월 김 대표를 선임하면서 연임할 경우 주총 특별결의를 통해 출석주주의 3분의2 이상,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1 이상의 동의를 받도록 했습니다. 외부 인사의 개입을 막고 기존 집행부를 감시·견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이렇게 되면 소유가 분산된 지배구조에서 연임은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런 상황에서 이득을 보는 쪽은 CEO 선임을 주도하는 사외이사들입니다. KT 사외이사들은 3년마다 대표이사를 교체·선임하는 것은 물론 주요 경영진 인선과 조직개편 권한까지 가짐으로써 그야말로 ‘사외이사들만의 리그’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지배구조라면 KT는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전쟁에서 골든타임을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김 대표 후임 선정이 또다시 정치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설령 정치적 편향이 없는 내부 출신 CEO가 선택돼도 현재의 해괴한 이사회와 지배구조를 쇄신할 방법이 없습니다. KT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혼란을 겪어야 할까요. KT의 지배구조는 언제 정상화될까요.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포스코도 KT 못지않은 정치적 압박을 받았습니다. 역시 포스코홀딩스의 1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앞장섰고 심지어 경찰까지 나섰습니다. 국민연금은 최정우 회장의 임기 만료로 새 CEO를 선임하는 과정에 노골적으로 개입했습니다. 국민연금은 포스코홀딩스 회장 선임도 “KT처럼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야 하고 포스코 출신보다는 외부 인사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경찰은 일부 언론이 제기한 ‘호화 이사회’를 빌미로 수사에 나서기도 했고 국민연금은 이 이사회에 참석한 사외이사들의 재선임을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 같은 압박에도 포스코홀딩스 이사회는 꿋꿋하게 버텼습니다. 3연임에 도전했던 최 회장을 후보군에서 빼는 대신 윤석열 정부의 지지를 받는 외부 출신 인사들도 배제했습니다. 잘못이 없는데도 퇴진 압박을 받던 사외이사들이 버티면서 최종적으로는 정치색이 없는 내부 출신의 철강 전문가 장인화 회장을 선임했습니다.

포스코홀딩스 이사회는 이사회의 독립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권한이 너무 커지지 않도록 스스로 견제장치도 둡니다. CEO가 3연임 이상 하려 할 경우 주총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했습니다.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KT처럼 끼리끼리 해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사회 밖에 ‘사외이사후보추천단’을 뒀습니다. 또 매년 사외이사 개인을 평가해 그 결과를 연임 시 반영합니다.

 

스스로 절제한 포스코홀딩스 이사회

윤석열 정부가 비상계엄과 내란사태로 물러난 뒤 지배구조가 큰 혼란에 빠진 KT와 달리, 포스코홀딩스는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애초 정치권력을 배제했기 때문에 새 정부가 출범해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업에 집중할 뿐입니다.

지난해 3월 장 회장 취임 이후 포스코홀딩스는 글로벌 철강 경쟁력 제고에 나섰습니다. 시장이 있는 곳에 제철소를 지어 제품까지 만들어내면서 그룹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완결형 현지화 전략’입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포스코는 인도 1위 철강사인 JSW그룹과 인도 현지 합작제철소 건설에 합의해 현재 부지를 물색하고 있습니다. 올 4월에는 현대자동차와 미국 루이지애나 제철소 합작 설립에서도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지난달 '경주 APEC' 기간에는 미국 고로설비 1위 철강사인 클리블랜드클리프스와 북미 철강사업 협업을 선언했습니다. 합작 형태와 투자 금액은 양사가 추후 논의해 결정할 예정이지만,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APEC 기간 중 한미 관세협상 타결 이후 발표된 양국 기업 간 첫 사업협력 사례입니다. 북미 철강시장 공략 측면에서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견줄 만한 상징적 사업이라는 평을 듣습니다. 또 ‘마스가(MASGA·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로 상징되는 미국 중심의 조선업 부흥에 현지 파트너사와 합작하며 대응하고, 안정적인 조선용 후판 공급에 나서게 됐습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장 회장은 지난달 한미 경제협력 및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2025 벤플리트상’을 수상했습니다.

장 회장은 취임 이후 소재 분야를 그룹의 2대 코어 사업으로 분류하고 글로벌 톱티어 경쟁력을 적극적으로 확보하고 있습니다. 소재사업 강화는 도널드 트럼프 미구 정부가 중국과의 광물 패권 전쟁에서 전기자동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리튬 등 광물을 확보하기 위해 열을 올리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포스코홀딩스는 최근 1조원을 투자해 호주의 대표 광산기업인 미네랄리소스가 신규 설립하는 중간지주사 지분 30%를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정치권 ‘패싱 논란’ 잠재운 장인화 회장

이에 따라 포스코는 서호주 리튬광산에서 연간 27만t의 리튬정광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됐습니다. 이미 포스코그룹은 아르헨티나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 인근에 연산 2만5000t 규모의 수산화리튬 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며, 니켈·양극재·음극재 생산능력 확충에도 적극적입니다. 포스코그룹은 2030년까지 리튬 42만t, 니켈 24만t, 양극재 100만t, 음극재 37만t 생산체제를 구축해 62조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윤석열 정부 시절 정권과의 관계가 불편했던 포스코그룹은 국제행사 때마다 제외되는 이른바 ‘패싱 논란’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 들어, 특히 경주 APEC을 계기로 이런 논란을 모두 지워버렸습니다. 장 회장은 APEC 기간 중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환담하며 글로벌 파트너십 강화를 논의했습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주재한 비즈니스라운드 테이블에도 참석했습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은 물론 시진핑 중국 주석의 초청 만찬에도 이재용·최태원·정의선 회장 등과 함께 초대됐습니다.

포스코그룹은 하반기 들어 본업인 철강과 이차전지 부문에서 뚜렷한 이익 회복세를 보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끊이지 않는 안전사고가 문제입니다. 포스코그룹은 회장 직속의 ‘안전특별진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등 온갖 노력을 하고 있지만 성과를 내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입니다. 근본적으로 하도급 구조의 문제이고 노후화된 기술·설비 탓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그럼에도 포스코그룹은 완결형 현지화 전략으로 관세장벽을 뚫었고, 리튬·니켈·양극재·음극재 등 소재산업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습니다. 정치적 편향이 없는 장 회장의 투명경영도 돋보입니다. 이런 성과의 밑바닥에는 건강한 지배구조가 있습니다. 포스코는 정치라는 외풍을 꿋꿋하게 견뎌낸 건강한 지배구조와 스스로 절제하는 이사회가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지속가능 기업으로서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잘 드러냅니다. KT는 정치권력과 함께 놀아난 왜곡된 지배구조가 기업을 어떤 방식으로 서서히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는, 포스코와 확연히 대비되는 사례입니다. 모든 소유분산 기업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