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철의 M&A 나침반] 신주인수 투자계약상 상환권의 성격과 법적 쟁점

2025-11-24     황현욱 기자

증가하는 다운라운드 투자 상황에서 핵심이 되고 있는 희석방지 조항

2023년 이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급격한 시장 냉각기를 맞았다. 딥테크 산업 전반의 투자 감소, 미·중 갈등, 불확실한 거시경제 상황 등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많은 기업이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졌다.

그 결과 대부분의 기업이 처음 계획했던 기업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기존보다 낮은 가치로 투자받는 상황인 '다운라운드'로 내몰렸다. 결국 낮은 평가로 투자를 받아들이는 기업이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투자계약서에서 당연하게 존재하는 조항처럼 여겨지던 '전환권 조항'이 실질적으로 회사를 압박하는 요소가 됐다.

전환권은 우선주 보유자가 일정한 조건에서 보통주나 다른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다. 전환이 발생하는 순간 회사의 지분 구조는 새롭게 구성되고 후속투자나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주도권이 바뀔 수 있다.

심지어 창업자가 자신의 회사에 대한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해진다. 전환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투자계약을 체결하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기업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

한국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는 특히 상환전환우선주(RCPS) 중심의 투자 구조가 일반적이기 때문에 전환권이 전환가격 조정 조항과 결합하여 폭발적인 법적·경제적 효과를 낳는다. 이제 전환권은 단순히 형식적으로 투자계약서에 포함되는 조항이 아니라 기업의 생존 전략을 결정하는 조항 중 하나가 됐다.

 

전환권의 법적 구조와 한국 실무의 특징

전환권의 법적 성격을 이해하려면 먼저 상법에서 전환권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정확히 짚고 넘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주식의 전환에 대해서 상법에서는 아래와 같이 정하고 있다.


상법 제346조(주식의 전환에 관한 종류주식) ① 회사가 종류주식을 발행하는 경우에는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주주는 인수한 주식을 다른 종류주식으로 전환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전환의 조건, 전환의 청구기간, 전환으로 인하여 발행할 주식의 수와 내용을 정하여야 한다.

② 회사가 종류주식을 발행하는 경우에는 정관에 일정한 사유가 발생할 때 회사가 주주의 인수 주식을 다른 종류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정할 수 있다. 이 경우 회사는 전환의 사유, 전환의 조건, 전환의 기간, 전환으로 인하여 발행할 주식의 수와 내용을 정하여야 한다.

③ 제2항의 경우에 이사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을 그 주식의 주주 및 주주명부에 적힌 권리자에게 따로 통지하여야 한다. 다만, 통지는 공고로 갈음할 수 있다.

1. 전환할 주식

2. 2주 이상의 일정한 기간 내에 그 주권을 회사에 제출하여야 한다는 뜻

3. 그 기간 내에 주권을 제출하지 아니할 때에는 그 주권이 무효로 된다는 뜻


회사가 종류주식을 발행하는 경우에는 정관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주주는 인수한 주식을 다른 종류주식으로 전환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 이 경우 △전환의 조건 △전환의 청구기간 △전환으로 인해 발행할 주식의 수와 내용을 정해야 한다.

또한 회사는 정관에 일정한 사유가 발생하면 회사가 일방적으로 주주의 주식을 다른 종류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내용도 넣을 수 있고, 이 경우에도 △전환 사유 △전환 조건 △전환 기간 △전환으로 발행될 주식의 수와 내용을 미리 명시해야 한다.

주주가 전환권을 행사하면 해당 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전환권이 있는 우선주가 소멸하고 보통주가 발행된다. 주식이 전환될 때 전환가격 및 전환 주식수 조정 조항이 적용되면서 전환권을 행사하는 주주가 보유하는 주식수의 변동이 이뤄지고 그 결과 전체 주주의 지분율도 함께 변동하게 된다.

후속 투자 시 기존 인수대금보다 낮은 단가로 신주를 발행하게 되면 기존 투자자는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을 지불하여 적은 수의 회사 주식을 보유하게 된 것이므로 후속 투자자에 비해 보유 주식의 가치가 떨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후속 라운드의 투자단가가 기존보다 낮아질 경우 기존 신주인수계약상 전환비율이 조정되며, 기존 주주로 하여금 보유 전환주식을 전환하여 전환 전보다 많은 수의 보통주식을 보유하게끔 함으로써 기존 투자자들의 손실을 최대한 보전하는 기능을 가진다. 그래서 위와 같은 전환권의 조정 조항을 희석 방지 조항이라고도 부른다.

 

한국 투자 생태계에서 전환권이 작동하는 방식 - Full Ratchet 방식이 만들어내는 폭발적 희석

기업의 성장이 멈추고 가치가 하락하면 투자계약서에 포함된 전환가격 조정 조항이 작동하면서 전체 주주의 지분율은 급격히 재편된다.

한국의 투자 실무에서는 가중평균(Weighted Average) 방식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풀 래쳇(Full Ratchet)이 절대적 기준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희석의 속도와 규모는 미국보다 훨씬 더 극단적이다. 우선 한국 투자계약에서 많이 사용되는 전환 조건은 아래와 같다.


본건 종류주식의 전환 조건은 다음 각 호에 따른다.

1. 본건 종류주식 1주의 전환으로 인하여 발행되는 보통주식 수(전환비율)는 1주이며, 보통주식의 발행가액(전환가액)은 본건 종류주식의 1주당 발행가액으로 한다.

2. 본건 종류주식의 전환 전에 회사가 발행한 신주의 발행가액, 전환사채의 전환가액,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신주인수권 행사가액이 그 당시 본건 종류주식의 전환가액을 하회하는 경우, 본건 종류주식의 전환가액은 그 하회하는 가액으로 조정한다. 단, 주식매수선택권 행사에 따른 신주 발행의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

3. 본건 종류주식의 전환 전에 회사가 주식을 분할 또는 병합하는 경우 전환비율은 그 분할 또는 병합의 비율에 따라 조정된다. 단주의 평가는 주식의 분할 또는 병합 당시 본건 종류주식의 전환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4. 본건 종류주식의 전환 전에 회사가 무상감자를 하는 경우 전환비율은 그 감자의 비율에 따라 조정한다. 단, 경영과실 등의 사유로 특정 주주에 대해서만 차등적으로 무상감자를 하는 경우에는 전환비율을 조정하지 않는다.

5. 회사의 IPO 공모단가의 70%에 해당하는 금액이 그 당시의 본건 우선주식의 전환가액을 하회하는 경우, 본건 종류주식의 전환가액을 회사의 IPO 공모단가의 70%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조정한다.


“본건 종류주식의 전환 전에 회사가 발행한 신주의 발행가액, 전환사채의 전환가액,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신주인수권 행사가액이 그 당시 본건 종류주식의 전환가액을 하회하는 경우, 본건 종류주식의 전환가액은 그 하회하는 가액으로 조정한다”고 정하고 있는 위와 같은 전환 가격조정 조건이 Full Ratchet 방식이고, 위 조건에 따라 전환가격과 주식수가 변경된다. 

위와 같은 Full Ratchet 방식의 전환권 조항은 가장 강력한 투자자 보호장치다. 단 한 주라도 신규 발행가가 낮아지면 기존 우선주의 전환가격이 동일한 가격으로 즉시 하향 조정된다. 이 방식은 투자금 대비 실제 보유 지분을 극적으로 늘릴 수 있다.

가령 기존 전환가가 1만원인데 신규 투자를 받으면서 발행하는 주식의 발행가가 2000원이라면, 기존 투자자의 전환가는 2000원이 적용되고, 이에 기존 투자자는 전환권을 행사해 5배의 보통주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실제 자문 사례에서도 이러한 구조는 상당히 많이 발생했다. 어느 시리즈 B 스타트업은 1200억원 가치로 투자를 받았으나 1년 후 시장 침체로 500억원 가치로 하락했다. 기존 투자자는 Full Ratchet 방식에 따른 조정을 요구했고 그 결과 전환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되면서 주식수가 2배 이상 증가하여 창업자 지분은 40%에서 35%까지 줄어들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는 전환권과 관련해 Weighted Average 방식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즉, 전환을 할 때 아래와 같은 공식을 통해서 전환가액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Weighted Average 방식으로 전환가액을 산정하는 경우 Full Ratchet과는 달리 기존 전환가액과 후속 투자시의 투자가액 사이의 어느 지점(기존 투자와 후속 투자의 Weight를 반영하여 계산된 지점)에서 전환가액이 정해지기 때문에 Full Ratchet 방식보다는 전환권 행사에 따라 증가되는 주식수가 크지 않다.

Weighted Average 방식에는 보통주뿐만 아니라 기존에 발행된 우선주들과 옵션까지 모두 포함하여 계산하는 방식(Broad-based), 기존에 유통된 우선주들과 옵션을 제외하고 계산하는 방식(Narrow-based) 두 가지가 있다. 전자는 조정폭이 작은 반면 후자는 조정폭이 클 수 있어 투자자들에게 좀 더 유리하다.

그 외에도 회사가 기업공개(IPO) 혹은 합병하는 경우, 공모단가 혹은 합병평가가액의 70%에 해당하는 가액이 그 당시의 본건 주식의 전환가격을 하회할 시 당해 공모단가의 70%에 해당하는 가액으로 전환가격 조정한다는 취지의 조항도 많이 포함된다.

참고로, 위의 예시 조항에서는 IPO의 경우에만 공모단가의 70% 가격으로 조정된다고 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조항은 투자자 입장에서 IPO가 되거나 합병이 되는 경우 약 30% 정도 내외의 이익은 최소한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조항이다.

예컨대 투자자가 1주당 1만원으로 스타트업에 투자를 했고, 이후 공모단가를 1만2000원으로 해 IPO를 하는 경우 투자자의 전환가격은 1주당 8400원으로 조정돼 그 차익만큼의 수익을 투자자에게 보장해주는 것이다. 만일 공모단가가 1만5000원인 경우 70% 가격이 1만500원이고 1주당 투자가격인 1만원을 상회하기 때문에 이 때에는 조정이 되지 않는다.

 

전환을 둘러싼 힘의 균형이 스타트업의 미래를 정한다

현대적인 의미의 전환사채와 전환우선주는 1950년대 미국 항공회사들이 자본구조를 최적화하기 위해 처음 도입했으며, 1960년대 경기 침체기를 거치면서 그 활용이 널리 확산됐다.

반면, 주식 희석을 막기 위한 희석 방지조항은 1900년대 초반부터 전환사채나 전환우선주를 보유한 투자자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작동해 왔다.

한국과 일본, 미국 등은 계약에 의해 전환권의 희석화를 방지하도록 하고 있는 반면, 영국은 '유가증권상장규칙(Rules on Admission of Securities to Listing)'에 전환권의 희석화 방지를 위한 법률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런데 한국 스타트업 투자 생태계에서 많이 채택하고 있는 Full Ratchet 방식은 창업자 지분의 희석을 과도하게 심화 시키게 되고, 이 때문에 투자자가 보유한 전환권은 단순한 투자자의 권리를 넘어 피투자회사의 지분 구조 및 경영권 재편의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투자자는 적정 수준의 보호를 받아야 하지만 창업자와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할 정도의 극단적 권리가 행사된다면 생태계 전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전환권은 투자자를 위한 보호 장치이면서 동시에 기업의 성장 동력과 지배구조를 좌우할 수 있는 양면적 권리라 볼 수 있다. 

한국 생태계가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환권 구조가 단순히 투자자가 무조건적 우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와 보통주주 △투자자의 균형 △회사의 적절한 지분구조를 복합적으로 고려한 방향으로 재설계될 필요가 있다.

즉 Full Ratchet 방식이 아니라 실리콘밸리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Weighted Average 방식으로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