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 인적분할] PBR '6→10배', '순수 CDMO' 전환에 멀티플 재정립
인적분할 이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밸류에이션 공식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수주 확대와 실적 개선이 위탁개발생산(CDMO) 본업의 경쟁력을 부각시키며 회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 멀티플을 2개월 만에 6배 수준에서 10배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PBR은 기업의 주가를 주당 순자산가치로 나눈 값으로 현재 주가가 기업의 순자산에 비해 얼마나 높은지 또는 낮은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다만 분할 발표 이후 내세운 신사업 로드맵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만큼 프리미엄 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시장은 '실적 확대가 만든 프리미엄'이 '신사업이 설명하는 프리미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호실적이 바꾼 PBR 공식
인적분할 전 삼성바이오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비교적 단순했다. 안정적인 재무구조와 높은 공장 가동률·수주잔고 덕분에 향후 실적이 어렵지 않게 그려지는 의약품 CDMO 기업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밸류에이션 역시 공장 증설 속도, 고객사 다변화, 안정적 현금흐름에 맞춰 PBR 5~6배 수준에서 안정적으로 형성돼 왔다.
실제 최근 삼성바이오의 연결 PBR를 살펴보면 2022년 6.50배, 2023년 5.50배, 2024년 6.19배를 유지했다. 지난해 말 피어그룹인 셀트리온과 바이넥스 PBR이 각각 2.18배, 바이넥스가 3.13배 수준임 점과 비교하면 2~3배 높은 멀티플이다. 생산능력(CAPA)이나 고객 포트폴리오, 수익성 측면에서 압도적이었던 만큼 시장은 이를 프리미엄이라기보다 당연한 수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삼성바이오는 분할 이전까지 예측 가능성과 규모의 우위에 기반한 멀티플 밴드를 갖고 있는 회사였던 셈이다.
이 같은 고정된 멀티플 구조는 인적분할을 계기로 새 국면에 들어서는 모습이다. 지난 24일 기준 삼성바이오의 PBR은 10.45배로 올 9월 5.83배 대비 약 두 배 가량 올랐다.
회사가 제시한 분할 방향성이 시장의 재평가에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삼성바이오는 위탁 생산 및 개발에 집중하는 '순수 CDMO' 체제로 재편됐고 신설 성에피스홀딩스는 바이오시밀러와 신약 개발을 아우르는 별도 투자 플랫폼으로 분리됐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바이오시밀러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떼어냄으로써 본업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정리하려는 전략이었다.
여기에 공격적인 수주 확대와 실적 개선이 전략의 설득력을 키웠다. 삼성바이오는 이달 4일 기준 누적 수주 금액이 5조5193억원으로 전년도 연간 수주액(5조4035억원)을 10개월 만에 넘어섰다고 밝혔다. 신규·증액 계약은 8건에 달한다. 매출은 지난해 4조5000억원에서 올해 5조8000억원대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며, 영업이익률 역시 29%에서 36%로 개선될 전망이다. 삼성바이오의 인적분할이 단순한 조직 재편이 아닌 실적이 뒷받침되는 전략적 선택으로 읽히면서 회사에 새로운 PBR 공식이 적용되고 있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프리미엄 지속성 '신사업 성과' 관건
일각에서는 시장 기대치가 단기간 크게 오른 만큼 프리미엄이 계속 유지될 지는 불확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불확실성의 중심에는 삼성바이오가 새 성장축으로 내세운 오가노이드 사업이 자리한다. 회사는 분할 발표 직후 오가노이드 기반 임상시험수탁(CRO) 사업에 뛰어들 계획을 밝혔다. 오가노이드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해 비임상·신규 모달리티 개발 역량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오가노이드 기술은 글로벌 제약사들도 속속 도입하고 있는 차세대 비임상 도구로 성공할 경우 신약 검증 속도를 대폭 높일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다만 아직 국내외에서 상업화된 사례가 제한적이고 기술 완성도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업계에서는 기대와 의구심이 공존하는 분위기다.
이번 인적분할 이후 지속적인 CAPA 확장 및 수주 확대가 주가를 지속적으로 끌어올릴 거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생산 능력·포트폴리오·글로벌 거점'의 3대축 성장 전략을 토대로 한 CDMO 역량 강화에 속도를 낼 계획을 갖고 있다. 2032년까지 제2바이오캠퍼스(5~8공장)를 완성해 132만4000리터의 생산능력 '초격차'를 달성하고 항체·약물접합체(ADC), 오가노이드 등 모달리티 다각화도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정이수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바이오에피스와 고객사의 바이오의약품 제품 포트폴리오 중복 우려 해소는 향후 바이오의약품 블록버스터 특허 만료 증가 시 수주 경쟁력 강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이에 따라 글로벌 상장 CDMO 기업인 스위스 론자, 중국의 우시바이오로직스 대비 멀티플 프리미엄 격차가 분할 후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