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사, '담합 의혹'에 식품 리더십 공백...스페셜티 성장동력 ‘빨간불’
삼양사의 캐시카우인 식품 부문이 리더십 공백과 법적 리스크라는 이중악재에 흔들리고 있다. 최낙현 전 대표이사 체제에서 알룰로스를 중심으로 스페셜티(기능성 소재) 전략이 본격화됐지만, 담합 혐의로 그가 구속되면서 추진동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매출의 과반을 책임지는 식품 부문의 글로벌 확장 전략에 제동이 걸리며 중장기 사업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삼양사는 최 대표의 사임으로 기존의 강호성·최낙현 각자대표 체제에서 강호성 단독대표 체제로 변경됐다. 이는 서울중앙지법이 19일 최 전 대표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설탕 가격 담합)로 구속영장을 발부한 데 따른 것이다. 검찰은 국내 설탕 시장 점유율 94%를 차지한 제당3사(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가 국제 가격 하락에도 수년간 설탕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해온 혐의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번 사태로 삼양사의 사업 중심축에 균열이 생겼다. 삼양사는 식품과 화학으로 사업 부문이 나뉜 가운데 최 전 대표의 이탈 이후 현재 강 대표와 이달 초 내정된 이운익 신임 대표 모두 화학 및 해외사업 전문가다. 이 내정자는 삼양사의 화학1그룹장 겸 삼양이노켐 대표이사를 겸할 예정이라 경영의 무게추가 화학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공백이 생긴 식품 부문이 삼양사 전체 매출의 58%를 차지하는 핵심 사업이자 그룹 차원의 차세대 성장엔진이라는 점이다. 삼양사는 1955년 설탕을 생산하며 식품사업을 시작한 뒤 밀가루·식용유 등으로 확장했지만 제당산업의 성장 정체와 경쟁 심화로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중심의 포트폴리오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대표 전략품목이 알룰로스다. 당류저감화 트렌드에 따라 음료·소스·유제품 등 다양한 식품군에서 활용도가 급증하자 삼양사는 프리미엄 당 브랜드 ‘트루스위트(Trusweet)’, 기업간거래(B2B) 전용 브랜드 ‘넥스위트(Nexweet)’ 등으로 스페셜티 제품군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알룰로스는 설탕 대비 70% 수준의 단맛을 내면서 칼로리가 0인 대체감미료다.
특히 최낙현 체제에서 삼양사의 식품전략은 '질적 성장'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는 2016년 삼양그룹이 자체 효소 기술로 액상 알룰로스 대량 생산에 성공했을 당시부터 식품사업 전반에 깊이 관여해왔다. 2018~2021년 식품BU장과 식품그룹장을 거쳐 2022년 대표에 올랐다.
대표적인 결과물이 지난해 완공된 울산 스페셜티 전용공장이다. 삼양사는 약 1400억원을 투입해 국내 최대 규모의 시설을 구축했고, 알룰로스 생산량은 기존보다 4배 이상 늘어난 연 1만3000t으로 확대됐다. 이러한 전략적 투자와 제품전환은 수익성 개선에도 기여했다. 삼양사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은 2조6728억원, 영업이익은 1327억원으로 각각 전년 대비 0.8%, 17.2% 증가했다.
업계에서는 최 전 대표의 부재가 사업 추진동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B2B 기반의 스페셜티 시장에서 리더십 공백과 담합 이슈가 겹칠 경우 삼양사는 가격·공급 조건 협상에서 불리한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담합과 관련한 거액의 과징금이 부과될 경우 스페셜티 사업에 투입돼야 할 재무여력이 훼손될 수도 있다.
식품 업계 관계자는 “알룰로스 사업을 확장하는 국면에서 리더십 공백과 담합 리스크가 동시에 불거지면 신규 투자 결정은 물론 해외 고객사와의 신뢰 확보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며 “이미 공급 안정성에 대한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공급처 전환이 현실화될 경우 시장점유율과 향후 투자여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삼양사는 식품 부문 리더십을 이날 새로 선임된 정지석 신임 식품BU장이 맡았다고 밝혔다. 1971년생인 정 BU장은 2018년 삼양홀딩스 HRC장을 시작으로, 2024년에는 식자재유통BU장을 역임하는 등 그룹 내 식품사업을 꾸준히 이끌어온 인물이다.
삼양홀딩스 관계자는 “현 BU장 책임 하에 경영을 진행 중이며 신규 대표이사 선임 시 공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