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크라상 물적분할]① 지배구조 개편으로 산재 리스크 책임 분산될까

2025-11-25     이유리 기자
SPC그룹은 지난 21일 계열사인 파리크라상의 물적 분할을 결정했다. 지분 구조상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파리크라상의 기능을 사업 부문과 투자·관리 부문으로 분리해, 보다 신속하고 전문적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경영체계를 구축하겠다는 설명이다./사진 제공=SPC

SPC그룹이 파리크라상을 물적 분할하며 사실상의 지주사 체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파리크라상이 지주 기능과 사업부문이 혼재된 구조적 한계를 효율화하기 위한 목적이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최근 잇따른 중대재해 사고로 총수 일가에게 집중되고 있는 사법·사회적 부담을 완충하기 위한 지배구조 재편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25일 SPC그룹에 따르면 파리크라상은 21일 이사회를 열어 물적 분할을 결의하고 연내 주주총회를 통해 최종 승인할 계획이다. 파리크라상은 지난달 정관에 ‘지주사업’을 사업 목적에 추가하며 사전 준비를 마쳤다. 이와 함께 파리크라상은 100% 자회사인 SPC㈜를 흡수합병하는 절차도 병행한다. 그룹 내 컴플라이언스·법무·홍보 등을 지원해 온 SPC의 기능은 합병 후 존속 법인인 파리크라상이 그대로 이어받게 된다.  

이번 분할은 지주 기능과 사업 기능을 분리해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파리크라상은 파리바게뜨·피그인더가든 등 외식 브랜드를 직접 운영하는 동시에 SPL, SPC삼립, 샤니 등 주요 계열사를 거느리는 구조였다. 사실상 지주사와 사업회사의 역할을 겸하면서 의사결정 지연과 효율성 저하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SPC그룹 관계자는 “신설 법인의 사명 등 세부 내용은 주주총회에서 확정될 것”이라며 “분할 과정에서 인력은 포괄 승계되므로 임금, 근로조건, 복리후생 등은 변동 없이 동일하게 유지된다”고 밝혔다. 

SPC그룹 지배구조 /이미지 제작=박진화 기자 

그러나 재계에서는 이번 분할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수년간 SPC 계열사에서 중대재해가 반복되며 오너 일가에 대한 책임론이 거세진 상황에서 지배구조 개편이 사법 리스크를 희석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파리크라상은 오너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어 현장의 사고 리스크가 곧바로 총수 리스크로 연결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현재 파리크라상의 지분은 허영인 회장 63.31%, 허진수 부회장 20.33%, 허희수 사장 12.82%, 배우자 이미향 씨 3.54%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파리크라상을 통해 SPL·샤니 등 제조 계열사를 지배하고, 그룹 내 유일한 상장사인 SPC삼립도 40.6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오너 일가가 파리크라상을 통해 그룹 전반을 통제하는 구조다. 

이러한 지배구조 탓에 2022년 SPL 제빵공장 사망 사고, 2023년 8월 샤니 사고, 지난 5월 SPC삼립 사고 등 인명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총수의 경영 책임을 묻는 여론이 거세졌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원칙적으로 ‘실질 지배·운영 책임자’인 계열사 대표이사에게 형사 책임을 묻지만, 1000억 원 규모의 안전 투자 발표에도 사고가 끊이지 않자 '최상위 지배 주체인 총수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유족 측이 허 회장을 중대해법상 경영책임자로 고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파리크라상이 사고 발생 사업장을 직할 지배해온 구조에서는 총수 책임론이 즉각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분할은 이러한 부담을 의식한 결정일 수 있다"고 밝혔다.

물적 분할이 완료되더라도 오너 일가의 그룹 장악력은 여전히 크다. 다만 ‘지주사(존속 파리크라상) → 신설 사업법인 → 기타 계열사’로 이어지는 단계적 지배 구조가 확립될 경우, 사고 발생 시 총수에게 책임이 미치는 법적 연결고리가 길어진다. 그만큼 총수의 직접적인 관여 입증 난도도 높아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 과정에서 지배권은 오히려 공고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윤동열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오너 일가가 파리크라상 지분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만큼 홀딩스를 별도로 세우는 것은 지배권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성격이 크다”며 "지배와 책임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하는지가 분할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고 밝혔다. 

다만 구조 변화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실제 분할 이후 주식 교환 방식과 2세 간 지분 재편 방향이 드러나야 이번 분할의 진짜 의도를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