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F 베스트 딜] '1세대의 품격' H&Q코리아, 위기의 현대엘리 구하다 [넘버스]

2025-11-26     신준혁 기자

 

/ 사진 = H&Q코리아 홈페이지

국내 자본시장에서 사모펀드(PEF)는 여전히 기업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냥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만기 내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펀드 특성상 연구개발(R&D) 투자보다 재무 개선과 인력 감축 등 단기간 효율화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토종 1세대 운용사인 H&Q코리아는 이러한 통념을 깨고 대주주와 상호 이익이 되도록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외국계 자본의 적대적 M&A 공세에 맞서 백기사를 자처하며 경영권 방어와 창업정신 계승이라는 성과도 거뒀다.

특히 범현대가인 현대엘리베이터와 HL만도(구 만도)의 위기 순간에 구원투수로 등판해 토종 자본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망 어둡던 현대엘리 살리기...백기사 나선 H&Q코리아

H&Q코리아는 지난달 말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도왔던 32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당초 경영 정상화까지 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2년 6개월 만에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H&Q코리아는 현대네트워크가 발행한 교환사채(EB) 800억원을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으로 전환해 전량을 블록딜(시간 외 대량매매)로 처분했다. 현재 현대네트워크가 발행한 전환사채(CB)와 상환전환우선주(RCPS)만 보유한 재무적투자자(FI)로 남았다.

주가 상승으로 EB 투자분을 매각하면서 내부수익률(IRR)은 약 40%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수 규모는 약 1600억원이다. 

앞서 H&Q코리아는 2023년 4월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담보로 RCPS, CB, EB를 인수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부채를 정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한라홀딩스와 현대해상도 자금을 출자해 힘을 보탰다. 단순 지분투자가 아닌 범현대가로서 우호지분을 보태고 경영권을 방어하는데 동참한 것이다.

현 회장은 2대 주주 쉰들러홀딩스와의 소송 배상금을 갚기 위해 엠캐피탈로부터 빌린 연 12%대의 고금리 주식담보대출을 상환하고 경영권을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위기에 처한 배경에는 HMM(과거 현대상선)을 지키기 위한 무리한 파생상품 계약이 있었다. 현 회장은 해운업 불황 속에서 그룹의 핵심인 HMM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파생상품 계약을 맺었지만 주가 하락으로 거액의 손실을 입었다.

쉰들러는 이를 문제 삼아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이 쉰들러의 손을 들어주면서 현 회장은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내야 했다.

이때 등장한 PEF 운용사가 H&Q코리아다. 시장에서는 경영권 방어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란 비관론이 팽배했지만 H&Q는 구조화 금융 패키지를 제시해 판을 뒤집었다. 단순한 자금 수혈을 넘어 정교한 투자 구조를 설계해 급한 불을 끄고 경영권 안정화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H&Q코리아는 현대엘리베이터의 경쟁력에도 주목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국내 점유율 약 40%를 차지한데다 설치 후 유지보수 매출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면서 현금 창출 능력이 우수하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경영권 방어를 지원하면서도 투자 안정성을 염두에 둔 1세대 PEF 운용사의 선구안이 빛을 발한 대목이다.

현대엘리베이터 충주 본사 전경 / 사진 = 현대엘리베이터

 

범현대가와 2번째 인연...실력 증명한 1세대 토종 PEF

H&Q코리아가 현대엘리베이터와 손 잡은 배경에는 성공적인 트랙레코드가 자리잡고 있다. 2008년 한라그룹이 외환위기 당시 JP모건이 설립한 페이퍼 컴퍼니인 선세이지에 매각됐던 만도를 되찾기 위해 H&Q는 KCC, 산업은행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백기사 역할을 수행했다.

H&Q는 재무적 지원을 통해 지분을 전량 인수했을 뿐만 아니라 기업공개(IPO)를 통한 회수 전략을 통해 수익률을 끌어 올렸다. 당시 IPO에 성공한 뒤 투자원금의 2배인 1540억원을 회수했다. IRR은 33.1%에 달했다.

H&Q코리아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H&Q 아시아퍼시픽의 한국 지사로 출발해 국내 PEF 시장의 태동기를 이끈 1세대 운용사다. 토종 사모펀드 운용사 중 업력이 가장 오래됐다. 2005년 본사에서 스핀오프(Spin-off·분사)하면서 토종 사모펀드로 탈바꿈했다.

당시 신한금융투자(과거 쌍용투자증권) 바이아웃 투자에 성공해 이름을 알렸다. 이정진, 이종원, 임유철, 김후정 등 4명이 공동대표 체제를 이끌고 있다.

H&Q코리아는 평소 창업자에 대한 예우를 강조하고 기업 가치를 높이는 조력자 역할을 표방한다. 무리한 가업 승계나 경쟁 구도에 입찰하는 경우도 극히 드물어 재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