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의 추억

2007-01-28     김달훈







지금부터 3년 전 엠파스 블로그에 처음으로 블로그라는 둥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블로그가 막 알려지기 시작한 때였고, 블로그가 무엇인지 호기심이 발동해 친구 따라 엠파스 블로그에 발을 들여 놓았습니다.



생활 속의 소소한 이야기들과 사진을 올릴 때 마다 하나 둘 씩 찾아오는 손님들이 남겨주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참으로 따뜻하고 감사했습니다.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그렇게 알게 된 인연으로 서로의 블로그를 오가며 정을 나눴습니다.



친분이 쌓인 사람들과는 오프라인에서 만나 이름난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따뜻한 이야기들을 나누던 곳이 바로 블로그였습니다. 그러다가 설치형 블로그로 새집을 만들어 이사하면서 엠파스 블로그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블로그로 맺었던 인연들과는 헤어졌지만 그 때의 정겨웠던 분들은 마음 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그때 제 블로그에 찾아오던 친구와 이웃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썼던 글입니다.

요즘 인터넷과 블로그가 온통 악플때문에 시끄럽습니다. 마음이 영 불편하고 착잡합니다.



적어도 그 때는 지금처럼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악플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때를 추억하며 친구와 이웃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적었던 글을 여기 올려봅니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상처 내는, 잔인하고 무서운 말들이 사라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블로그의 사랑방 친구들


  


도회지에 사는 사람들이 이웃집으로 마실을 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른 저녁을 먹고 과일 몇 개 찻잎 한 종지를 손에 들고 나서는 마실 길. 반가운 이웃사촌과 말벗을 삼을 수 있는 그런 저녁 시간은 가끔씩 그리워지는 꿈일 뿐이다. 먹고 사는 일에 힘겨우니 이웃과 나눌 잠깐의 시간이 부족한 까닭이다. 가족들 얼굴 보기도 힘든 현실에 이웃들과 저녁 시간에 담소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은 야무진 꿈일 뿐이다.

 


‘프라이버시’라는 말이 특히나 강조되고, 그것이 소중한 권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사람을 쉽게 믿을 수 없는 인심도 무관하지 않을게다. 인심이 ‘각박’하게 되다 보니 사람들과의 관계도 ‘인색’하게 된 것인지, 서로의 관계에 ‘인색’해 지다 보니 인심도 ‘각박’하게 변할 수 밖에 없었는지 모르겠다.

 


아파트라는 곳에 살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이사를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웃으로 이사를 왔다고 미소 짓고 찾아오는 이를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러니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갈 때 마다 이웃집에 떡 한 접시를 돌리며 인사를 하노라면 가끔씩 내 뒤통수가 어색해져 돌아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심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에 무디어져 가는 세상살이가 때로는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은 좋은 사람들, 따뜻한 사람일진데, 모두가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하게 된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현실에서 마실을 꿈꾼다는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처음에는 눈인사를 나누다, 이제는 음식을 나눠먹고 이런 저런 소식을 접하는 이웃이 꽤 있음에도 저녁 시간의 마실은 감히 바랄 수는 없다. 휴식이 필요한 이웃을 방해할 수 없기 때문이요. TV와 인터넷과 게임에 푹 빠져 사는 즐거움을 그들에게서 빼앗을 수 없는 탓이다. 월드컵만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즐거운 이야기 거리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뜻밖에도 블로그에서 마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바쁘면 바쁜 데로, 한가하면 한가한 대로, 누군가를 기다리며, 때로는 혼자만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다가도 언제든 마실을 갈 수 있는 곳이 블로그인 까닭이다. 언제 찾아오고, 어느 틈에 왔다 가는지는 모르지만, 정겨운 이야기와 따뜻한 마음과 든든한 위로와 고마운 기도 나눔이 있는 곳.

 


블로그 세상에서는 몸으로 부딪히는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얼굴을 맞대고 나눌 수 없었던 것을 나눌 수 있다. 말 많고 탈 많은 인터넷 세상에 자리 잡고 있는 블로그 마을이지만 이 곳에는 소박하고 소중한 느낌과 생각들이 오고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 단순하기 때문에 누구나 올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뜻이 통하고 마음이 맞으며 다른 사람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 것 보다 소중한 것은 한 사람이라도 반갑고 편안한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여러 사람의 흥미를 자극해 그저 지나는 길에 들렀다 떠나게 하기 보다는 뜸한 발길이라도 종종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귀한 것이라고 믿는다. 화려한 백화점, 재미있는 극장, 푸짐하고 맛난 것으로 가득한 식당, 신나게 소리칠 수 있는 야구장, 좋은 책으로 언제나 풍성한 도서관, 번잡한 길 위의 크고 작은 상점들…….모두가 있어야 할 것들이고, 꼭 필요하기에 존재한다. 하지만 작은 골목 입구의 허름한 서점 같은 곳도 꼭 필요하지 않을까?

 


늘 찾아오는 사람들로 분주하고,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로 살아 숨쉬는 블로그. 많은 사람들이 꿈꾸지만, 모두가 그런 분주함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재미있고, 즐겁고, 웃음을 나눌 수 있는 곳이 블로그 세상에는 참으로 많다. 모두가 부지런하고 고마운 분들이다. 그런 분들 속에서 내가 만드는 블로그는 작은 사랑방이었으면 한다. 조용한 강가에 자리 잡은 작은 집, 그 뒤뜰에 아담하게 세워진 사랑방. 다섯 명 정도가 방에 둘러앉으면 빈 자리가 없을 만큼 넓지도 않고, 깔끔하고 단정한 벽과 천정이 그저 편안한 그런 사랑방.

 


누구나 와도 상관없지만 사랑방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찾아와 주기를 바란다. 무엇을 이야기해도 좋지만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그 안에 때마다 철마다 가득했으면 좋겠다. 기쁘고, 즐겁고, 괴롭고, 속상하고, 때로는 심심할 때 그저 편안하게 찾아왔다가 갈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 기도가 필요한 이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해 줄 수 있고, 축하가 필요한 누군가에게 환한 마음으로 축복을 줄 수 있는 곳. 나의 블로그 사랑방은 그런 ‘친구’들을 위해 꾸미고 싶다.

 


소중하게 간직했던 사진과 소박하지만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준비하는 정갈한 글들로 친구들을 맞고 싶다. 다녀간 친구들의 발자취를 따라 마실을 다녀오기도 하고, 그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의 단편들을 부담 없이 주고받고 싶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몇 명이 다녀갔는가 보다는 그들이 남기고 돌아간 마음을 살피련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대답 한 마디에도 정성을 다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친구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친구들과 인연을 감사히 여기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고 나누기 위해서 사랑방을 열어 두고 싶다. 이 곳에서 느닷없이 친구하자고 손을 내미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진정한 친구라면 서로가 친구인 것을 확인할 필요가 없다. 친구 사이에 중요한 것은 ‘사람’이지, ‘관계’가 아닌 까닭이다. 친구가 친구로서 ‘관계’를 밝혀야 할 때는 가족과 좋은 친구에게 그 친구를 소개해야 할 때면 충분하다고 믿는다.

 


지나가는 나그네도 좋지만 눈에 익은 친구의 모습을 맞이하는 것은 더욱 행복하다. 그들이 나와 함께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와 생각이 무엇이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더없이 즐거운 일이다. 내 머리와 가슴 속에는 그렇게 감사해야 할 친구들이 아주 천천히 늘어가고 있다. 그 친구들의 누구였던가를 챙기는 일 만큼은 무한능력의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에 맡기고 싶지 않다. 자주 잊어버려서 효율은 떨어질지라도 내 머리, 내 가슴 속에 직접 간직하기 위해 노력해 보고자 한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세상살이는 녹록한 일이 아니다. 여러 가지로 버겁고 힘겨운 것들 속에서 사랑방을 만들고 그것을 하루하루 지켜 나가는 것이 그리 쉽지 많은 않은 일이다. 다만, 좋은 친구 몇 명이 있기에 머릿속이 온통 하얗게 변할 만큼 난감한 일상을 맞을 때도 가능하면 이 곳을 지켜보려고 한다. 섬진강이나 섬강의 강변에서 보았던 들꽃, 바람, 햇살, 물살들처럼 미소를 머금고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마실(가다) : 마을(에 놀러가다)의 사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