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화된 네트워크 출발점은 IDC"
자동차를 사려는 고객들은 회사의 브랜드를 볼까 아니면 개별 자동차에 장착된 부품을 볼까? 당연히 자동차 메이커를 볼 것이다. 그 업체가 고객에게 품질 관리된 제품을 제공할 것이라고 믿기에 자동차 회사들간 브랜드 마케팅 경쟁이나 자동차 이미지 부각 마케팅 경쟁이 뜨겁다.
네트워크 시장에서 '시스코(Cisco)'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개인용부터 기업용, 통신사업자용 등에 맞는 전 제품 포트폴리오와 함께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시스코에 맡기면 되지 뭘 고민해'라는 시각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를 일이다. 개별 제품의 경쟁력을 본다면 단품 제공 업체에 비해 떨어지는 요소가 있어도 고객들은 선뜻 '시스코'라는 브랜드를 포기하지 않는다.
타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과의 차별점으로 차세대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구축과 설계 등 기업 고객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면서 안정적인 시장 지배력과 매출을 이어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시스코시스템즈코리아 박승남 상무와는 지난 2006년 12월에 만났다. 시스코가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던 애플리케이션 기반 네트워크(AON)이나 SONA(Service-Oriented Network Architecture) 분야에 대한 전략을 듣기 위해서였다.
시스코는 마이크로소프트와 무척 닮았다. 무엇이 닮았을까.
두 회사 모두 최고의 마케팅 회사이면서 동시에 기술적인 약점을 인수합병으로 발빠르게 메운다. 일단 차세대 개념을 던져놓고 후발주자들의 기를 죽인다. 신규 업체가 시스코의 빈틈을 노리고 약진을 하면 초기에는 '그거 별거 아니다. 우리가 다 지원한다'고 평가절하해놓고는 그 분야 시장이 조금 뜬다 싶으면 재빠르게 품에 안는다. 그런 전략으로 독보적인 통신과 네트워크 장비 분야 1위에 올라섰다.
AON이나 SONA 분야도 어쩌면 그런 부문인지 모르겠다. 시스코가 말하는 SONA는 기업들이 기존 인프라를 서비스 지향 아키텍처(SOA), 웹 서비스와 가상화 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IT 전략을 지원하는 인텔리전트 정보 네트워크(IIN)로 진화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개념이다. 지능화된 네트워크가 제공하는 고급 기능들을 통합함으로써 기업들은 시스템의 복잡함과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으며, 시스템의 유연성과 탄력성을 향상시키고 네트워크로 연결된 자산들의 활용도와 효율도를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은 단품 솔루션만을 제공하는 업체가 던질 수 있는 메시지는 아니다. 기존 고객들에게는 미래의 시장도 시스코가 지원할테니 염려하지 말라는 무언의 약속이면서 동시에 경쟁 업체들에게는 "니네는 안되잖아"라고 대놓고 이야기한다.
박승남 상무는 "단품은 단품대로 고객에게 제공하고 기존에 구축된 스위치 중심의 모듈 시장은 모듈 시장대로 간다. 하지만 더 궁극적인 목적은 기존 고객들이 보유한 기존 IDC는 물론 차세대 IDC를 지능화된 네트워크의 중심부로 태어나게 하는 것"이라고 IDC 시장을 주목하고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오는 3월 대대적인 데이터센터 구축 관련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상화'는 스토리자와 서버, 애플리케이션 영역에만 한정된 개념이 아니다. 고객들이 분사된 IT 자원들을 IDC 중심으로 통합하면서 IT 전영역에서 '가상화' 바람이 불고 있듯이 이런 바람은 네트워크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스코가 지난 2006년 4월 자사의 카탈리스트 6500 시리즈에 애플리케이션 제어 엔진(ACE)를 탑재한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 엔진은 애플리케이션 전달과 보안 서비스의 대규모 가상화를 제공한다. 네트워크 가상화는 액세스 제어, 경로 분리, 정책 시행 등 3단계를 거쳐 확보된다는 것이 시스코의 설명이다.
또 단품 시장에서 애플리케이션을 지원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 분야에서는 F5네트웍스, 시트릭스, 주니퍼, 리버베드 등에 밀려 있는데 WAAS(광역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소프트웨어를 통합 서비스 라우터인 ISR(Integrated Services Router)에서 가동시키면서 동시에 WAFS(Wide Area File Server)라는 장비에도 얹었다. 여전히 단일 운영체제, 단일 인터페이스로 선발 단품 업체들과 경쟁을 선언한 것이다.
시장에 메시지를 던진 것만 따진다면 분명 경쟁업체에 비해 시스코가 유리한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SAP 넷위버와 IBM 웹스피어, BEA의 웹로직을 비롯해 국내에서 티맥스소프트와의 협력을 약속하고 있다. 그동안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은 전달하는 패킷의 내용보다는 그 패킷을 어떻게 하면 빠르고 안전하게 전달할 것인가에 주력해 왔다. 하지만 고객들은 IT 시스템들이 복잡해지고 시스템도 사내 시스템 통합에서 협력사와 파트너까지 엮으면서 이제는 전달하려는 그 패킷의 내용이 정확히 해당 시스템까지 안전하고 빠르게 전달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요구에 전 네트워크 장비 업체들이 나서고 있다.
시스코의 행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F5네트웍스 부사장은 "말로는 항상 지원한다고 하지만 관련 제품을 내놓지 못하거나 뒤늦게 출시하기 일쑤다. 이런 점을 고객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박승남 상무는 "SOA 환경이 하루 아침에 기업에 적용되지 않지만 모든 IT 업체가 SOA 지원을 약속하는 것처럼 시스코도 큰 틀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피해간다.
오는 3월, 시스코가 말하는 차세대 데이터센터의 모습이 벌써부터 관심을 끄는 이유도 시스코가 약속한 그 전략이 현재 어떤 단계에 와 있고, 향후 어떻게 변해갈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시스코의 이런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는 한 고객들은 쉽사리 시스코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시스코의 제품이 경쟁력이 있던 없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