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반을 둔 비즈니스프로세스관리(BPM) 분야 오픈소스 업체 장진영 대표와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처음 잡힌 인터뷰 날짜는 정 대표의 급한 일정 때문에 연기됐고, 두번째 만남은 기자에게 일이 생겨 연기됐다. 서로 한 번씩 약속을 어긴 후 세번째 약속에서 그를 만났다.서울 지하철 7호선 남성역 2번 출구로 나와 한 100여 미터를 올라갔다.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어 15미터 정도에 있는 작은 건물 2층에 유엔진(www.uengine.org)이 자리잡고 있다. 작은 벤처지만 이미 큰 고객사들이 관련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한화그룹과 대한생명, SK텔레콤, 후지제록스, 녹십자생명, 포스테이타, 한국반도체소재 등 국내 유수의 기업들과 베네수엘라 CanTV, 노벨 등 세계적인 사용자 들이 유엔진을 기반해 자체의 업무를 운용하고 있다.

BPM 솔루션은 오라클, IBM, SAP,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소프트웨어 업체부터 핸디소프트, 티맥스소프트 등 국내 대표 기업들도 제공,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고 있는 분야다. 거대 사업자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시장에 그것도 오픈소스로 도전장을 던진 이유가 궁금했다. 수많은 영역 중에 왜 하필 BPM 분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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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 대표는 “국내에 BPM이 소개된지 10여년이 돼 가지만 성공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BPM은 단순히 패키지를 도입해 구축한다고 해서 될 영역이 아닙니다. 사전 컨설팅과 고객 요구에 맞는 적절한 커스터마이징, 관련 솔루션 구축 후 실무 담당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안정기를 꼭 거쳐야 됩니다. 또 한번 성공을 맞본 고객들이 쉽게 솔루션을 걷어내지 않기도 합니다”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오픈소스 비즈니스 대부분이 사전 컨설팅과 기술 지원, 교육 사업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BPM 영역은 그 어느 오픈소스보다 가능성이 높다는 것. 고객 입장에서도 오픈소스를 활용하면 기술 종속성을 탈피할 수 있고, 자사에 맞도록 커스터마이징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오픈소스 업체가 대형 고객사들을 확보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미 앞서 밝힌 고객들이 손을 내밀었다. 장진영 대표는 조금은 엉뚱하지만 현실적인 접근법을 사용했다. 유엔진은 2003년에 오픈소스 커뮤니티로 전환했다. 그렇지만 고객들의 인식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방식이 유엔진을 개발하던 코어 개발자들이 대거 IT 서비스 업체로 입사한 것.

아예 IT 서비스 업체가 수주할 고객사를 대상으로 프로젝트 인력이 한꺼번에 입사해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전략을 펼쳤다. 대형 SI 업체가 보장했기 때문에 고객들은 신생 오픈소스 업체에게 주지 않던 기회를 줬다. 범을 잡으러 굴 속으로 직접 들어간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하나 둘 사례가 등장하면서 2007년 법인으로 독립했다.

장진영 대표는 “오픈소스를 활용했지만 고객들이 시스템을 오픈한 후 에러가 전혀 안났습니다. 고객들의 만족도도 높았죠. 또 BPM 구축 프로젝트는 상대적으로 고가입니다. 컨설팅과 교육이 먼저 선행돼야 하고, 구축 이후에도 실제 업무에 적용하기 위해서 사후 지원이 중요합니다. 고객들도 잘 알고 있다보니 다른 영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밝혔다.

BPM 분야에서 패키지 업체들은 솔루션 80%, 개발 20% 정도로 가격을 받는다. 하지만 유엔진은 컨설팅 분야에 80%, 패키지 분야에 20%의 비용을 받고 있다. 사업 초기, 고객들은 유엔진에게 작은 업체가 컨설팅과 교육 비용을 너무 많이 받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했지만 프로젝트 후 결과에 만족하면서 이런 전략을 지지하는 우군이 됐다.

장진영 대표는 오히려 엔터프라이즈 분야에서 오픈소스의 가능성이 더욱 크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상용 패키지 업체들이 고객 확보를 위해 저가 수주 경쟁에 치우치면서 시장을 키우기보다는 시장을 오히려 줄이고, 잘못된 관행을 만들어 내는데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

장 대표는 “동일한 엔진을 개발하기 위해 전혀 다른 업체가 인력을 뽑아 연구하고 있지만 핵심 코어 개발자는 몇명이 안됩니다. 저희들은 그런 코어 개발자가 8명이나 되고 파트너까지 합치면 17명 정도입니다. 함께 개발하고 함께 시장을 키우는 모델입니다. 저희 영역 이외에도 더 많은 기업용 오픈소스 업체들이 국내에 쏟아져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유엔진은 지속적인 엔진 개발을 위해 유연한 파트너 정책과 라이선스 정책을 펴고 있다. 파트너 정책을 통해 파트너의 핵심 엔지니어 1명이 유엔진 개발자들과 함께 엔진 개발에 참여해야 한다. 이렇게 개발된 엔진에 각 파트너가 별도로 개발한 특화 기능은 오픈하지 않고 고객에게 제공해도 된다. 어차피 파트너들도 BPM 사업을 위해 제품을 개발해야 되는데 중복 투자를 줄이면서도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전략을 취하면서 상생 전략을 펴고 있다.

그렇다면 오히려 파트너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장진영 대표는 “그래도 상관이 없습니다. 오픈소스 모델이 바로 그런 것이죠. 저희가 주도적으로 기술을 이끌어가기 위해 7명이 투입돼 있는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코어 개발자들입니다. 저희들이 연구개발을 등한시한다면 뒤쳐지겠지만 오히려 더욱 매진하게 되더라구요”라면서 웃었다.

BPM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장진영 대표는 오픈소스 비즈니스를 진행하면서 느낀 소회도 밝혔다.

“상용 소프트웨어 업체와 경쟁해도 절대 뒤쳐지지 않은 오픈소스 제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저는 프로페셔널 오픈소스라고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최근 북미 지역에서 창업하는 소프트웨어 업체 중 80%가 오픈소스를 진영입니다. 그만큼 오픈소스 비즈니스가 검증이 된 것이죠.”

그는 또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오픈소스 기업들이 나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큰 기업이면 큰 기업에 맞는 상도가 필요합니다. 정작 단가를 낮추고 수주한 다음 실력도 떨어지는 개발자 한 두명을 투입하다보니 고객들이 모든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그런 줄 압니다. 시장을 키우기보다는 오히려 죽이는 것이죠. 외형만 크면 뭐합니까? 고객 불만은 높이고, 경쟁사는 죽이면서 국산 업체라서 도와주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모순입니다”라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한 시간 반을 넘겨 가까스로 끝났다. 한번 터진 이야기 봇다리는 쉽게 끝나지 않았다. 오픈소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어느새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생태계까지 이어졌다. 그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이곳에 모두 기록하기는 힘들 것 같다. 기자에게 던져준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장진영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고객은 왕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제가 보기에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고객은 절대 왕이 아닙니다. 소프트웨어에 대해서 배워야될 학생입니다. 익히고 또 익혀야할 대상이 바로 고객입니다. 이걸 잘 아는 고객은 프로젝트에 성공하지만 그렇지 않은 고객들은 많은 실패를 경험합니다. 서로 배우고 익히면서 상생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소프트웨어 업체못지않게 수용하는 고객들의 변화도 필요합니다”라고 밝혔다.

이 작은 업체의 목소리가 얼마나 국내 고객들에게 울림으로 다가갈지는 미지수다. 그들의 도전에 주목하는 것도 바로 이런 도전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오픈소스 생산국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장진영 대표의 도전 그 자체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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