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터닷넷’은 2006년 창간 시절부터 ‘IT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꾸준히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을 숙제로 안고 지금까지 걸어왔습니다. 소외 계층에 대한 기부와 자원봉사 활동을 비롯해 지식기부, 웹표준 준수, 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공익 플랫폼 확산, 친환경 정책 등 IT 기업에 걸맞는 사례들을 널리 소개하고자 애썼는데요. 지난해부터는 웹표준 준수, 개방형 저작권 정책, 오픈소스 가치 확산 등을 포함해 ‘소셜IT’란 영역으로 확대했습니다.

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아닌, ‘IT기업’의 사회적 책임일까요. 그 배경에는 IT가 사회적 가치 확산에 기여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깔려 있었습니다. 대개 기업들이 하는 사회공헌활동들, 참 좋은 일입니다. ‘블로터닷넷’은 기왕이면 IT기업 특성을 살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에 주목하고 싶었습니다.

훌륭한 온라인 플랫폼을 가진 기업이라면, 플랫폼을 누구든 공평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사회적 책임일 겁니다. 플랫폼 일부를 공익을 위해 내놓는다면 더 좋겠고요. 널리 나누고픈 저작물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떳떳이 누리고 나누도록 누군가 기술적 지원을 보태도 좋을 겁니다. 여럿이 기술을 기부해 공동체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공유하는 일은 또 어떨까요. IT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는 사례가 아닐까요.

‘블로터닷넷’이 9월5일, 창간 3돌을 맞았습니다. 창간 3주년 기념 블로터 포럼은 나름의 방식으로 IT와 사회적 가치의 결합을 모색하는 활동가들을 모셨습니다. 이 분들이 사회에 힘을 보태는 방법, 엿보실까요.




  • 일시 : 2009년 8월28일(금) 오후 4~6시

  • 장소 :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예스APM 5층 ‘스토리라운지’

  • 참석자

  • -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실장
    - 원낙연 SOPOONG 시니어 파트너
    - 윤석찬 한국 모질라 커뮤니티 리더
    - 윤종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프로젝트 리드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장(이상 가나다 순)
    - 블로터닷넷 김상범/도안구/이희욱


김상범 : 이 자리에는 어떤 식으로든 직·간접적으로 IT와 사회적 가치의 결합을 모색하는 분들이 와 계시다. 저는 그렇게 믿는데 본인들 생각은 어떠실 지 모르겠다. (웃음) ‘블로터닷넷’ 3주년을 맞아 각자 영역에서의 활동을 서로 공유하고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삶, 더 나은 가치를 위해 IT가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함께 얘기해보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이 자리가 꼭 어떤 결론이나 결과를 도출하는 자리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고민거리와 숙제를 던져주는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게 작은 바람이다. 개인적으로, 원낙연님은 처음 뵙는다. 소개 좀 부탁드린다.

원낙연 : ‘SOPOONG’라는 소셜 벤처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소풍’보다는 ‘에스오피오오엔지’라고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웃음) 창업한 지 1년 정도 됐다. 사회적기업이라 불리는 소셜 벤처를 인큐베이팅하는 일을 한다. 소셜 벤처를 인큐베이팅하는 소셜 벤처캐피털이랄까. 아직은 시작 단계다. 몇 년 안에 결실을 맺을 걸로 기대한다.

김상범 : 벤처캐피털 역할인가?

원낙연 : 그렇다. 기업공개를 목표로 지분투자하기보다는, 창업 초창기부터 벤처와 동반 성장해 나중에 사회적, 경제적 가치를 함께 나누자는 것이다. 지원 대상은 물론 사회적기업이다.

김상범 : 이 자리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CCK)의 윤종수님도 와 계시다. CCK는 사회적기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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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um_csr_yoonjs
윤종수 : 사회적기업은 아니다. CCK는 사단법인이다.

원낙연 : CCK와는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 제가 정보공유연대에서 일을 한 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정보공유라이선스’라는 사회적 라이선스를 준비했다. 그런데 띄우자마자 CCK가 한국에 출범했다. 어찌보면 악연이다. (웃음)

방대욱 : 그때 다음세대재단에서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지원했다. 뒷얘기가 있었다. 재단에서 처음엔 정보공유라이선스를 도입하려 했는데, CC가 들어오면서 글로벌 표준이라고 해서 CCL을 채택했다. 그 때 정보공유연대로부터 배신자란 소리도 들었다. (일동 웃음)

김상범 : SOPOONG에서 현재 투자한 기업은 어디인가?

원낙연 : 투자 제휴를 마친 곳이 몇 군데 있다. 아직은 초기 단계라 잘들 모르실 거다.

김상범 : 그렇다면 사회적기업을 위한 컨설팅을 하는 한겨레경제연구소에서 SOPOONG에 관심을 주셔야 하겠다.

원낙연 : 이원재 소장님과는 자주 뵙는다. 강의도 부탁드리고 사업 도움도 많이 받는다. 사회적기업에 관심 많은 방대욱 실장님과도 자주 뵙는다.

이원재 : 저도 궁금한 게 있다. 다음세대재단은 기업재단인가?

방대욱 : 재단을 구분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기업재단, 민간재단, 운영재단 등등. 이를 기준으로 보면 다음세대재단은 출발은 민간재단 형태라고 본다. 기업에서 기부한 게 하나도 없었다. 다음 임직원들이 개인 자격으로 자발적으로 기부해 설립됐다. 다음 임직원이긴 하지만, 다음이란 기업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2004년부터 다음이 기부금을 주기 시작했다.

윤석찬 : 다음에 스톡옵션 제도가 있을 때, 조건이 있었다. 스톡옵션의 일정 비율을 떼내 재단에 기부하는 것이었는데, 2004년부터 주가 변화로 전입금이 줄었다.

방대욱 : 그런 점에서 다음은 좋은 기업이다. 다음이란 기업 입장을 대변하는 사업을 하라고는 재단쪽에 전혀 말하지 않는다.

김상범 : 다음이 다음세대재단 대주주인가?

방대욱 : 다음세대재단은 비영리 재단이다. 주주 개념이 없다. 다음은 기부자 중에 큰 기부자다.

이원재 : 다음세대재단은 소유권은 없고, 경영권은 있다. 이사진 가운데 네 분 정도가 사외 이사다. 내부는 문효은 대표이사 있다. 다음세대재단 대표이사 겸 다음커뮤니케이션 COO로 일하고 계시다.

김상범 : 사회적기업이란 말이 올해 특히 많이 나오는 분위기다. 일종의 트렌드처럼.

윤석찬 : 전통적인 개념의 사회적기업과 요즘 말하는 사회적기업 개념이 좀 다르다. 예전 사회적기업은 예컨대 실업자 일자리를 창출해주는 식이었는데, 요즘은 비영리 섹터랑 기업 섹터가 못해주는 틈새를 맡으면서 자생 능력을 갖춘 기업을 가리키는 모양새다. 어디에 초점 맞추느냐에 따라 다르다.

김상범 : 사회적기업에 대한 일반인 인식도 아직은 좀 헷갈린다. NGO라 부르기도 하고, 조직 운영 방식도 잘 모른다. 방 실장님도 예전에 블로터닷넷더러 사회적기업 신청을 하면 어떻겠냐고 권유한 적도 있다. 그 땐 폴 뉴먼이 운영하는 ‘뉴먼스오운’식의 사회적기업 모델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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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um_csr_wonny
방대욱 : 폴 뉴먼은 뉴먼스오운이란 e쇼핑몰을 운영하며 수익의 100%를 사회에 기부한다. 자기 부를 주주가 취득하는 게 아니라 모두 사회에 환원한다. 우리나라에선 법으로 사회적기업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제약이 많다. 그 조건에 맞지 않으면 ‘사회적기업’이란 말도 마음대로 붙이지 못한다. SOPOONG는 사회적기업이란 말 대신 사회혁신기업이라 말한다.

김상범 : 그럼 현재 사회적기업은 투자 매력이 적은 기업인가?

원낙연 : 폴 뉴먼도 수익 전부를 사회에 환원하니, 투자자 입장에선 먹고 살 수가 없다. (웃음)

윤석찬 : 그렇다. 직원들은 월급을 받겠지만, 투자자로선 메리트가 없다.

원낙연 : SOPOONG 초창기 벤처에 부족한 요소를 채워주면서, 초기 위험도 함께 감내한다.

윤석찬 : 사회적기업이 사회적 가치와 수익이란 두 가치 앞에서 판단의 기로에 설 때가 있다. SOPOONG은 무엇을 먼저 판단하나?

원낙연 : 사회적 가치 창출이 우선 순위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비즈니스 가치 창출에 대한 비전이 없다면 사회적기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자기 밥그릇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이원재 : 그런 면에서 폴 뉴먼은 사회적기업 개념과 정반대다. 생산 과정에서 자기 먹거리를 해결해야 하는데, 폴 뉴먼은 생산 과정은 배제하고 남는 돈, 즉 분배 과정에서 기부를 한다.

김상범 : IT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지원 문제를  얘기해보자. 다음세대재단이 특히 관심이 많은 걸로 안다. 이를 위해 ‘IT캐너스’란 IT 지원센터도 만들었다. 요즘은 어떤가?

방대욱 : 숙제 해결은 아직 요원하긴 한데, 모델을 만든 게 중요한 것 같다. 우리쪽에 가장 필요한 분이 윤석찬님같은 기술자분의 참여다. 기획자 머릿속에선 너무 복잡한 일을 개발자는 뚝딱 만들어내는 경우가 적잖은데, 재단에선 기획자와 개발자간 연결 고리를 제대로 못 만들고 있다.

기술적 지원에 앞서, 재단에서 ‘인터넷 리더십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거기선 기술 강의가 아니라 인터넷 마인드에 관한 얘길 주로 한다. 실제로 교육에 참가하는 풀뿌리단체 종사자분들 보면, 아직도 웹 개념 자체에 대해 익숙치 않은 분위기다. 의식 전환 교육과 기술 지원이 병행돼야 좀 더 웹과 IT 자원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을 거다. 두 가지 부분 신경 많이 쓰는데, 한쪽은 인문학적 상상력이 필요하고 다른 쪽은 기술적 지식이 필요하다. 사회와 기술이 만나는 걸 하고 싶은데, 기술 그룹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가 고민이다.

원낙연 : 저는 사회혁신을 고민하는 분들이 도구로 IT를 바라보는 사례와, IT분야 종사자들이 사회혁신을 고민하는 두 사례가 있다고 본다. 최근 소셜 벤처 일을 하면서 느낀 건, PC통신 시절보다 나아진 게 별로 없다는 느낌이다. 웹2.0을 얘기하는데 사회혁신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웹2.0을 도구로만 보고 있는 느낌이다. 내부를 뜯어보면 조직 내부 자체가 웹1.0 시대를 살고 있다. 사회혁신을 고민하는 진영은 개방, 공유, 협업 가치를 반영하지 않고 있고, 그러다보니 웹2.0은 여전히 몸에 안 맞는 불편한 옷처럼 되어버렸다. 그런 면에서 다음세대재단 리더십 프로그램은 소중한 프로그램이다.

윤석찬 : 모질라재단의 임무는 기술이란 수단으로 ‘파이어폭스’란 웹브라우저를 만들고, 그 웹브라우저가 세상을 바꾸도록 하는 데 있다. 그런 임무가 최근 몇 년 사이 인터넷을 바꾸는 조직으로, 기술로 인터넷을 바꾸는 사명으로 바뀌고 있다. 요즘 오픈소스 커뮤니티 마케팅 포인트를 보면 단순히 웹브라우저를 독립적으로 만들어 상용SW들의 중간자 위치를 차지한다는 생각에서 지금은 어떤 식으로든 인터넷 세상에 변화와 혁신을 꾀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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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um_csr_bangdw
김상범 : 모질라재단과 다음세대재단이 전략적 제휴를 맺어도 좋을 것 같다.

윤석찬 : 모질라재단에서 9월14일부터 21일까지 일주일동안 ‘모질라 서비스 주간’을 진행한다. IT쪽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모으고 커뮤니티 구성원들은 시간을 기부한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찾아가 웹브라우저를 깐다든지 간단한 지역사회 일을 돕는 식으로 기부하는 행사다. 변화와 혁신으로 임무가 바뀌는 중요한 지점 가운데 하나다. ‘모질라 서비스 주간’도 많은 NGO와 연계돼 있다. 한국어 페이지도 곧 오픈한다.

방대욱 : 안 그래도 윤석찬님이 제안해주셔서 ‘모질라 서비스 주간’ 때 한국어 페이지를 함께 홍보하고 토론하는 기회도 가질 생각이다. 영문페이지 들어가보니 모질라 커뮤니티 구성원들의 기부 시간도 하루하루 늘어나고 있더라.

윤석찬 : 모질라그룹도 사회적기업이라 할 수 있다. 모질라그룹이 비영리재단인 모질라재단의 100% 자회사이고 수익을 전혀 안 낸다. 기부가 들어오긴 하지만, 15% 정도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쌓아두고 있다. 그런 식으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김상범 : 자원활동가 조직이라면 CCK도 빼놓을 수 없다. 오래전부터 자원활동가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잖나.

윤종수 : CCK도 기술쪽 숙제를 푸는 게 쉽지는 않다. 요즘 하는 일은 CC 관련 컨텐트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CCL이 붙은 컨텐트를 이젠 활용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메타데이터 체계를 제대로 따르도록 하는 것, 메타데이터 표준을 만드는 게 첫 번째 작업이다. ‘CC리포지터리’(ccRepository)라는 이름으로 CCL DB를 구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포털과 검색을 연동하고 공공 컨텐트를 끌어들여 메타데이터 DB를 구축하는 작업이다. 이후에는 이용자들이 자기 컨텐트에 좀 더 쉽게 CCL을 붙이도록 돕는 레지스트리(등록) 서비스도 구상하고 있다. 더 나아가면 인증 서비스까지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러려면 자원활동가 뿐 아니라 외부 개발자 커뮤니티를 끌어들여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게 숙제다.

원낙연 : 우리도 2개의 메타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혁신기업 메타블로그와 대안적 여행 관련 소셜 벤처 준비팀이 운영하는 메타블로그다. 도구가 가진 사회적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 가치가 어떻게 사회적 욕구와 맞물려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지 사례를 많이 개발하고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윤석찬 : 오픈소스 커뮤니티에선 사람을 숙련시키는 과정이 어찌 보면 호랑이가 새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 스스로 일하도록 내버려두는 식이다. 본인이 하다가 어려우면 그만두고, 노력해 따라오면 계속 구성원으로 남는 식이다. 저만 해도 모질라 커뮤니티가 많이 알려지면서 도와주겠다고 제안하는 사람도 굉장히 많다. 아직은 적극 받아들이기보다는 조심스럽게 응대하는 편이다.

방대욱 : 다음세대재단도 도와주겠다는 분은 많은데, 어려움이 있다. 예컨대 소스코드를 만들면 누군가 가이드를 해줘야 하는데 비영리조직은 그 역할을 맡을 사람이 부족하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도와주겠다고 나선 개발자도 처음에는 기분좋게 일하다가, 점차 능력과 시간을 거저 헌납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실력 있는 개발자 한 분이 중심에 있으면, 다른 자원활동가들이 하는 일을 가이드해줄 수 있다.

윤종수 : CCK는 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예컨대 개발 코드는 더 잘 하는 곳에 맡기면 된다. 우리는 CC에 대한 비전과 열정을 가진 활동가를 찾는다. CC를 알고, CC에 열정을 가진 사람 가운데 개발자가 포함돼 있을 뿐이다. 가이드를 누가 맡아서 구성원에 필요한 일을 할당하는 식으로는 CCK가 움직여지지 않는다. 각자가 비전과 하고픈 일을 스스로 생각하고, 구성원끼리 끊임없이 얘기하면서 길을 찾아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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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um_csr_yoonsc
윤석찬 : 그 사람이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헌신적인 마음만 있으면 자기 할 일을 지속적으로 한다. 그가 안 하는 영역은 다른 누군가가 하면 된다. 파이어폭스 한글화 작업만 봐도 그렇다. 누군가 이 대목을 업데이트해달라고 요청해도 일주일동안 커뮤니티에서 아무도 답을 안 줄 때도 있다. 그런데도 꾸준히 요청하는 사람이 꼭 있다. 그런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 그런 친구가 몇 명만 모여도 성공한 거다.

윤종수 :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어떤 면에선 모듈화된 작업이다. 기여하는 부분이 작고 클 수는 있는데, 결합하기가 대체로 쉽다. CC가 하는 일들은 모듈화된 작업을 나눠서 맡고 나중에 조합해서 원하는 그림을 짜맞추는 작업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그러니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꾸준히 만나서 무슨 일을 해야 할 지 스스로 찾아나간다.

김상범 : 어찌보면 CCK엔 모듈화된 작업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겠다.

윤석찬 : 모질라도 마찬가지다. 몇 명만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나머지는 의사결정에 의해 만들어진 규칙을 따라가면 좀 더 원활해지지 않을까 싶다. 오픈소스 커뮤니티가 굉장히 오픈돼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조직 면에선 닫혀 있다. 누군가에게 의견을 전달해도 그 사람이 확인을 안 하면 그걸로 끝이다. 규칙이 정해지면 그에 따라가야 한다. 물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저는 그 분들께 이렇게 얘기한다. 그 사람들 의사결정이 싫으면 커뮤니티 참여를 안 하면 된다고. 그 사람들은 오랫동안 일한 노하우로 그런 의사결정을 내린 만큼, 그들이 가진 권위를 인정해줘야 커뮤니티가 제대로 운영된다.

이원재 : 저도 궁금하다. 대부분 비영리단체는 큰 그림까지는 있는데, 개발까지 내부에서 소화하긴 힘든 실정이다. 만약 회원 중심으로 활동하던 어떤 단체가 있다 치자. 지금까진 기획과 홍보를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이제 개발 이슈가 발생할 경우 어떡해야 하나. 누군가 헌신적인 개발자 한 사람이 붙으면 해결되는 건가, 다른 무언가가 더해져야 하는 건가.

윤종수 : 제가 CCK 설립 초기부터 개발자들에게 접근한 건, 개발자가 남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하나 더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들이 못 가진 개발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기획을 해도 아는 기술 기반으로 조금이라도 더 잘 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개발자라면, 던져주는 일을 받아 하기 보다는 CCK에서 내가 하고픈 일을 찾아 신나게 일할 것 같다. (웃음)

방대욱 : 회사에서 길들여진 사람은 그런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우리 재단에도 개발자가 있는데 그 친구가 처음에는 정말 개발 작업만 했다. 재단 사업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기획에 참여하다보니 기획자가 기획하는 것보다 훨씬 짧은 단계로 생각해내더라. 그런 방식이 우리 비영리쪽에는 더 맞는 것 같다.

김상범 : 그렇게만 되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런데 그게 참 어렵다. 욕심일 지도 모른다. 결국은 잘 할 수 있는 걸 잘 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최선이 아닐까.

윤종수 : 배우는 건 있다. 사람들을 섞어놓으니까 개발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섞여 얘기하다보면 생각들이 달라진다. 개발 단계가 아니라 기획 단계까지 얘기하고, 개발자가 아닌 사람은 개발을 배우고 싶다고 한다. CCK 조직을 지금처럼 운영하는 것도 그런 걸 끄집어내고 싶었던 거다.

윤석찬 : 제가 체험한 커뮤니티 모형의 대부분은 서로 감싸주고 이겨나가는 모델은 아니었다. 커뮤니티 모델은 약육강식의 세계다. 내가 살아남지 않으면 끝이다. 이 커뮤니티가 하는 목표나 방향에 대해 믿는다면, 자부심 갖고 일하고 역할만 있다면 하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모질라 커뮤니티에 처음 참여할 때도 그랬다. 나처럼 똑같이 번역하던 사람이 또 있었다. 왜 내가 지금까지 하고 있느냐 생각하면, 아직까지는 나보다 나은 사람이 안 나왔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나보다 더 열정이 있는 사람이 나오면 언제든 내 일을 주고 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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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um_csr_leewj
방대욱 : 오픈소스 커뮤니티는 자발적으로 작업을 해서 올려도 커뮤니티에서 마음에 안 들면 거부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 있다. 비영리단체는 좀 다르다. 얼마 전에 사회적기업을 위해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작업을 했는데, 결과물이 썩 마음에 들게 나오지 않았다. 그 사회적기업은 사실은 홈페이지를 거절해야 하는데, 차마 말을 못 한다. 아직 그런 문화가 안 된다. 기부를 꼭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잖나. 마음에 안 드는 데도 쓸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윤석찬 : 기부했는데 만약 사이트 마음에 안 들어 거절했다고 한다면, 그건 기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고 싶어 일했던 것이고, 그 사람은 마음에 안 들면 안 쓰는 거다. 기부란 걸 너무 받는 쪽이 값을 매기려 하면 오히려 기부가 안 되지 않을까 싶다.

이원재 : 윤석찬님 말씀을 들어보면 그 기술을 충분히 제품화할 수 있는 일에 투입할 수 있는데도 대가 없이 일을 하시잖나. 그 일의 가치에 동의하기 때문인가, 다른 동기도 있나.

윤석찬 : 오픈소스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이유는 여러가지일 테다. 제가 경험한 사람들을 보면 자기만족이 크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자기만족이다. 내가 했다는 거. 제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모질라 프로젝트를 할 때를 돌이켜보면, 그땐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쓰는 사람도 없는데 왜 했을까. 그건 만족감이다.

윤종수 : CCK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가 '지속적인 CC질'인다. 그 지속적인 CC질이 뭔가. 그건 목적이기도 하고, 방법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묻고 얘기하는데, 결국은 구성원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뭔가 얻고싶어 모임에 나오고, 누군가는 자기 자신의 의미를 찾고, 누군가는 그저 즐기러 오는 사람도 있다. 다 나름 괜찮다고 본다. 무슨 동기를 갖고 들어오든 두 가지만 지키면 된다. 하나는 그들이 모여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는 뭔가를 만들어내면 되고, 둘째는 커뮤니티에 해가 되는 일을 안 하면 된다. 이 둘만 지키면 자기가 어떤 동기를 갖고 참여하든 프로젝트엔 바람직한 거 아니냐.

김상범 : CCK도 사단법인이 됐다. 조직을 키워 자체 수익을 내는 고민은 안 하나?

윤종수 : CCK가 자원활동가 중심으로 운영되는 이유가 있다. NGO나 비영리단체들을 만나보면 대개 일손도 부족하고 여건이 열악한 편이다. CCK를 꾸릴 때 생각한 건, 외부 여건에 영향받지 않고 우리가 하고싶은 일만 즐겁게 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었다. 물론 마음이 급할 때도 있다. 외부에서 좋은 제안이 들어와도 시기를 놓쳐 못할 때도 있다. 그래도 아직은 처음 생각한 바를 잃지 않을 자신 있을 때까지는 버티면서 조금씩 늘려나갈 생각이다. 9월부터 상근활동가도 한 명 더 늘린다. 상근활동가와 다른 자원활동가와의 관계가 고민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상근 한 명을 더 늘리는 건, 커뮤니티가 이를 수용하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외부 조건이 개입해도 지금 체제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런 제안이나 요구들을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민은 계속 하고 있다.

이원재 : 윤종수 판사님 말씀이 사회적기업이나 비영리재단에서 많이 고민하는 대목이다. 서비스를 맡은 조직과  조언을 주는 조직간에 갈등이 있다. 예컨대 우리는 장애인을 보호하는 일을 계속 했는데, 정부 지원을 받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거기에 걸맞는 서비스를 해줘야 한다. 자칫 조직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다.

김상범 : CCK 안에서 수익을 내는 방법은 없나?

윤종수 : 예컨대 레지스트리 서비스는 등록 서비스다. 수수료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에서도 조금씩 시도하는 부분이다. 기부를 해주는 사람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법도 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을 따로 만들 수도 있다. 그 부분은 정체성과도 관련이 돼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전세계 커뮤니티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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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rum_csr_kimsb
윤석찬 : 예컨대 CCL 컨텐트를 찾으면 레포지터리를 두고 검색엔진이 긁어오는 것보다, 레포지터리가 검색엔진에 컨텐트를 제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검색서비스의 광고 수익 일부를 기부받는 방법도 있겠다. 모질라재단은 구글에서 돈을 받지만, 그건 채널을 제공한 대 데한 대가다. 정당한 비즈니스다.

김상범 : 아쉽다. 저작권법 이슈도 있고 해서 CCL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좋겠는데 주변에서 아직도 CCL을 많이들 모른다. 그런 걸 많이 알리려면 사람들을 더 모아야 하는데, 정부나 기업에서 돈을 받는 것보다는 제대로 된 서비스나 상품을 갖다주고 대가를 받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윤종수 : 사실 그런 비즈니스 모델은 외부에서 나와줘야 한다. 미국은 CC가 서비스를 내놓으면 외부 기업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내놓는다. 우리가 CC 케이스 스터디 작업을 하고 있다. 11월에 세미나도 한다. ‘자멘도’라는 유명 음악 웹사이트의 설립자가 방한한다. 단순히 CCL 사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SOPOONG처럼 실제 사회적 벤처에 투자할 만한 구체적 사업계획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면 아예 공모를 받고 SOPOONG같은 곳에서 평가를 해서 연계해주는 모델도 어떨까 싶다. 모질라같은 기술 커뮤니티에서도 평가를 해주고. 어찌 보면 CC가 하는 일은 여러 조직들을 연결해주는 ‘사회적 브로커’ 역할이다.

원낙연 : 말씀을 들으니 재미있을 것 같다.  저는 지속가능한 비영리조직 모델을 만드는 일도 어렵고 초조할 거라 생각한다. 지금 CC는 어느 정도 안정적이고 오랜 기간 숙성시켜온 모습이다. 굳이 비즈니스 모델을 지금 시점에서 초조하게 고민하는 것보다는 CC를 열린 플랫폼으로 삼고 여러 기회를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제안을 주시면 기꺼이 파트너로 참여해 도움을 드리고 싶다.

김상범 : 한겨레경제연구소의 비즈니스 모델은 무엇인가?

이원재 : 몇 가지가 섞여 있다. 재정적으로 뭘 충당하느냐의 질문이 아니라면, 우리 비즈니스 모델은 연결하는 지식을 제공하는 거다. 예컨대 CC란 가치를 가지고 비영리단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도와주고 싶은 후원자나 엔지니어 있다면 이를 연결해주고 사람들을 모으는 캠페인을 하는 게 우리 모델이다. 그걸 싱크탱크라고 한다.

김상범 : 사회적기업에 대한 관심은 이원재님 개인 관심인가?

이원재 : 사회적기업, 지속가능경영, 비영리단체는 개인적으로 꾸준히 갖고 있는 관심사다.

김상범 : 관심사를 활동으로 연결시키다 보면 부딪히는 벽이 있을 것 같다. 어떤 게 가장 힘든 장벽인가

이원재 : 가장 큰 벽은, 한국의 시장참여자가 별로 시장적이지 않다. 정치적이다. 뭔가 사회에 대해 메시지를 던질 때 정권 눈치를 많이 본다. 그러다보니 100년 앞을 안 보고 당장 몇 달 앞을 보게 된다.

김상범 : 시간이 많이 흘렀다. 서로의 활동들을 중심으로 자유로운 대화를 나눴다. 앞으로도 사회적 가치 확산을 위해 서로들 자주 연락하고 도움 드리면 좋겠다. ‘블로터닷넷’도 힘 닿는 선에서 아낌없이 지원하고 싶다. 모두들 좋은 말씀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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