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IT 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IT 잡지 업계도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소문으로 돌던 구조조정안이 발표됐고, 기자가 근무했던 팀은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됐다. 살아 남은 자들은 떠나가야 할 이들을 위해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그 말이 귀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그 어정쩡한 상황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떠나는 입장에서 ‘살아 남은자의 슬픔’을 이해할 정도로 아량이 넓지 않았다. 하지만 살아남은 이들도 아픔을 빨리 추스리고 회사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을 것이다. 이번에 그런 슬픔을 가슴에 안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지난 한 해 한국후지쯔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한국후지쯔는 2009년 초 350명이던 인원을 280명으로 줄였다. 한국후지쯔는 노트북과 같은 일반 소비자 대상 제품을 유통하는 것을 잠정적으로 중지시켰다. 엔화의 변동 때문에 국내 사업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한국후지쯔는 서버와 스토리지와 같은 기업용 대상 제품과 솔루션 공급에 힘을 싣기 위해 조직을 정비했다.

다들 의기소침하던 지난해 6월 15일, 김방신 사장이 새롭게 한국후지쯔를 이끌기 위해 취임했다. 김 사장은 한국후지쯔 부임 전 현대자동차에서 경영전략과 마케팅, 홍보, 연구개발, 해외 비즈니스 업무를 담당했다. 부임 바로 직전에는 현대자동차 베이징현대기차유한공사 부총경리를 역임했다.

김방신 사장은 취임 후 내부 직원들로 구성된 ‘변화혁신 태스트포스팀(TFT)’을 사장 직속으로 꾸릴 것을 지시했다. 내부 구성원들의 지혜를 모아 빨리 상처를 치유하고 회사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기 위함이었다.

hujitsutft1001사진 설명 : 1기 변화혁신 TFT에 참여했던 팀원들은 변화의 불씨를 지폈다는데 만족해 했다. 사진 왼쪽부터 김종혁 과장(간사), 강교영 과장, 박경주 과장, 박소영, 류대희 과장, 오진호 과장, 정원석 부장(팀장).

부장과 과장, 사원 등이 포함된 1기 팀은 그렇게 꾸려졌다. 1기 변화혁신 TFT의 간사를 담당한 김종혁 한국후지쯔 인사부 과장은 “사장님이 내부의 인력들을 모아 회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논의를 했으면 좋겠다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영업과 마케팅, 지원부서 등에서 8명의 멤버가 선발됐습니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 9시에 회의를 해서 변화와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들을 쏟아냈죠.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작은 변화가 시작되고 나서 더 열정적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1기 변화혁신 TFT는 프로세스와 퍼포먼스, 인사조직, 조직문화와 관련해 머리를 맞댔다. 프로세스의 경우 어느 특정 분야가 아닌 조직 전반적으로 효율성이 저하돼 있거나, 비효율부문의 개선, 오래된 관습으로 인한 불필요한 제도와 프로세스 전반적 개선에 집중했다. 퍼포먼스의 경우 달성가능한 소규모 프로모션 등을 통한 영업사원 동기부여 추진, 지원부서 프로모션 제도 검토로 전반적 회사 활성화 추구, 지식(영업과 기술 노하우)의 공유 강화에 노력했다. 인사조직은 낡고 비효율적인 관습을 폐하고 조직간 업무 활성화 추구, 전반적인 육성체제 정비, 수평/수직간 커뮤니케이션 활성화, 인사제도의 홍보와 효율적 활용에 주목했다.

조직문화의 경우에는 구조조정 등으로 침체된 조직분위기 개선, 상하간 칭찬릴레이, 미션파서블(매월 미션 우수 수행부서 선정)등으로 침체된 조직문화 개선, 종업원 로얄티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경영 참여 등을 유도했다.

물론 이런 팀이 꾸려진다고 해서 모두가 좋은 성과를 내는 건 아니다. 많은 기업들이 내부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조직의 발전을 위해 적극 반영하겠다고 하지만 기업은 엄연한 조직 사회인 만큼 강심장이 아니고서 입바른 소리를 하기가 쉽지 않다. 별동부대이긴 하지만 원래 팀에 들어가면 팀원이 된다. 이런 입장에서 자칫 하다간 상사들의 문제에 대해 쓴소리도 해야 한다. 쉽지 않다.

원래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팀장이나 임원들이 ‘저 녀석 그렇게 안봤더니 바로 뒤통수를 치네. 어디 한번 두고보자’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많은 기업들이 유사한 조직을 운영하지만 별다른 성과없이 활동이 마무리 되는 경우가 잦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칼은 칼집에 있을 때 위력을 발휘하게 돼 있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그 칼이 자신의 목을 향할 수도 있다.

이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박경주 한국후지쯔 금융비지니스부 프로페셔널 어카운트 매니저(과장)도 이런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뜩이나 바쁜 와중에 TFT에 합류해서 매주 회의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큰 부담이다. 더 큰 고민은 이전에도 이런 조직이 있었는데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박 과장은 “처음에는 직원들 조차도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있을지 의아해 했습니다. 예전에도 이런 제도가 있었는데 제대로 안됐거든요”라고 밝히고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사장님 직속으로 조직을 꾸리다보니 작은 아이디어들이 나와도 바로 적용됐어요. 사장님도 임원들에게 변화 혁신 TFT에서 제안한 내용들에 대해 적극 수용할 것을 지시하셨거든요. 오히려 임원분들도 관심을 더 많이 가져주셨어요. 회의를 거듭해 가면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졌죠. 저도 제가 그런 아이디어를 낼지 몰랐다니까요. 내 안의 작은 불씨가 살아난 것이 가장 큰 성과입니다”라고 말했다.

1기 TFT는 프로세스와 조직 문화 분야에 많이 집중했다. 프로세스의 경우 해당 팀장이 자리를 비울 경우 모든 업무 프로세스가 멈추는 일이 잦았던 것을 개선했다. 업무 집중 시간에 결재 담당자가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한 것. 조직 문화의 경우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칭찬합시다’ 프로젝트를 진행해 전 직원들이 유대감을 높일 수 있도록 했다.

김종혁 간사는 “매달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옷 맵시가 가장 뛰어난 팀이나 사원, 가장 깨끗한 사무 환경을 만든 팀도 뽑았죠. 서로 선의의 경쟁도 하다보니 한결 가까워졌습니다”라고 전했다.

박경주 과장은 스스로 한국후지쯔의 배지를 달고 다닌다. 자기 스스로 회사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기 위함이다. 배지달기 아이디어도 냈다. 박 과장은 "배지다는 게 뭐가 애사심하고 상관이 있겠냐고 하겠지만 어디를 나가던지 몸 가짐이 달라지죠. 사장님이 팀을 방문해 일일히 배지를 달아주셨죠. 아주 작은 이벤트였지만 서로 회사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해요"라고 말했다.

매출 확대를 위한 아이디어들도 많이 쏟아졌다. 앞서 밝힌대로 한국후지쯔는 B2C 사업을 잠정 중단하고 B2B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이제는 전략 회사에 더욱 집중하고 비전략 회사를 뚫기 위해서 지혜도 짜내고 있다. 한국후지쯔는 한국IBM이나 한국HP, 델 같은 미국 IT 업체에 비해 일본계 IT 업체로 보이지 않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다. 제품은 잘 만들지만 미국 기업에 비해 마케팅에 약해 자사의 장점이 고객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고민이 많다.

박경주 과장은 “후지쯔는 내구성이 정말 강한 제품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제품을 집어 던져보고 어디 제품이 멀쩡한지 알아보자는 말도 나옵니다. 고객사 앞에서 피켓 1인 시위라도 한번 해볼가 하는 말도 나오구요. 예전에는 이런 말 자체가 나오기 힘들었죠.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구성원들 사이에서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 정말 큰 변화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1기 TFT에 참여했던 두 과장은 개인적으로 어떤 변화를 실감했을까?

박경주 과장은 “처음 선발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지금 일도 바쁜데 또 뭘 시키려고 하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사장님과 저희 팀장님, TFT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 안에 작은 불씨가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조직 생활을 하다보면 잘 안바뀌는 것들이 참 많거든요. 그런데 3:1이라는 법칙처럼 같이 있던 세 사람이 바뀌니 세상이 조금씩 바뀌더라구요. 정말 좋은 경험을 했고, 애사심도 더 늘어난 것 같아요”라고 뿌듯해 했다.

인사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김종혁 간사는 “인사부서의 일이 원래 회사 전면에 나서지 않게 돼 있어요. 특히 외국계 기업은 더 그런 것 같아요. TFT에 참여하면서 약간의 위험을 안고 참여를 했어요. 저도 가슴에 불꽃이 살아 있다는 걸 알았어요. 구성원들을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지 정말 실감했어요. 제 일에 대한 동기부여도 됐구요. 서로 교감도 나누면서 유대관계도 늘어났죠”라고 소감을 밝혔다.

1기 변화혁신 TFT는 조만간 활동을 끝낸다. 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다음 TFT 팀원들이 1기의 성과를 잇고 미흡했던 부분을 채울 것이다.

박경주 과장과 김종혁 과장은 “2기 TFT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신청자들이 줄을 잇고 있어요. 정말 달라진 조직의 모습이죠. 조직의 변화는 경영자의 의지와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번에 실감했어요. 올해가 가면 한국후지쯔는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을 겁니다”라고 환하게 웃었다.

경인년 새해, 가슴에 작은 열정이라는 불씨를 가졌던 이들이 그 열정을 꺼트리지않고 활활 불태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이겨내고 한국후지쯔가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새로운 불씨를 들고 모인 이들의 멋진 선전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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