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은(30)·오주영(29)씨는 이른바 'CC'다. 흔히 말하는 '캠퍼스 커플'이다. 1994년 제주도, 사춘기 서귀고교 1년생과 수줍음 많은 서귀포여고 1년생이 고교 연합 컴퓨터 동아리 '퍼즐'에서 처음 눈인사를 나눈 게 씨앗이었다. 이듬해, 여고생은 서울로 훌쩍 전학을 갔다. 인연은 거기까지였을까.

"주영이가 전학간 뒤에도 가끔 연락은 했더랬죠. 제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서울로 오게 됐고, 자연스레 연락도 자주 주고받게 됐어요. 그러다가 대학 1학년때 주영이 여동생 과외 선생을 맡은 걸 계기로 인연이 깊어지더라고요, 하하."(이종은)

둘은 또한 CC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커플'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2003년 설립된 국제 조직이다. 창작과 나눔을 추구하는 저작권 규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를 널리 보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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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커먼즈와 먼저 인연이 닿은 사람은 이종은씨였다. 2007년 4월,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재학 시절 CC믹스터 코리아 프로젝트를 맡은 게 시작이었다. CC믹스터는 공개된 음원들을 자유롭게 리믹스해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는 프로젝트다. 첫 시도인 글로벌 CC믹스터 프로젝트가 꽤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받던 때였다.

"당시 윤종수 판사(현재 CC코리아 프로젝트 리드)님을 통해 우연찮게 CC믹스터 얘길 들었는데, 꽤나 재미있었어요. 당시 대학원 첫 학기였는데, 대학원생 5명이 의기투합해 CC믹스터 코리아 프로젝트를 준비하게 됐죠. 여러 사정으로 프로젝트는 기대만큼 진행되진 않았지만, 그 인연으로 저는 CC코리아 자원활동가로 계속 활동하게 됐어요."(이종은)

그러니 오주영씨가 CC코리아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처음엔 옆에서 남자친구가 하는 일을 지켜만 봤는데, 참 보기 좋았어요. 무엇보다 CC가 주창하는 창작과 공유의 정신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특별한 조직도, 변변한 사무실도 없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뭔가를 뚝딱 해치우는 것도 신기했고요. 처음엔 얼굴만 기웃거리다가 2008년 여름께 자원활동가 공개모집 소식을 듣고 본격 참여하게 됐어요."(오주영)

그렇게 둘은 다시 CC가 됐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란 정식 사단법인이 출범하기 전부터 둘은 사이좋은 연인이자, 열정적인 CC코리아 자원활동가였다.

이쯤되면 지겨울 만도 하지 않을까. "사실 그 전엔 서로 얼굴 볼 시간이 만만치 않았어요. 종은이는 바쁜 대학원 생활 틈틈이 자원활동가로 일했고, 저는 직장 생활에 붙들려 시간 여유가 넉넉치 않았거든요. 그러니 CC코리아 자원활동가 생활이 어찌보면 서로 만날 시간을 만들어준 고마운 기회였던 셈이죠."(오주영)

마냥 좋을 수만은 없는 법이다. 오롯이 스스로 즐겨 하는 일이라도, 피치 못할 선택의 순간 앞에선 어쩔 수 없이 밀어놓게 마련이니까. "부족한 시간을 쪼갤 땐 아무래도 회사나 집안일이 우선 순위에 놓이게 마련인데요. 그러다보면 시간 부족으로 자원활동가 일을 미뤄두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누군가가 강요해서 될 일은 아니니, 스스로 힘들 땐 잠시 쉬어가는 것도 지혜인 것 같아요. 스스로 힘든 상황에서 참여하면 즐겁지 않고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잖아요."(오주영) 둘이 약속한 듯 마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CC로 시작해 CC에서 키운 정은 서로를 적잖이 변화시켰다. "사실, 사회에서 주영이가 어떤 모습인 지 그 전에는 알 기회가 없었어요. 기껏해야 친구들과 어울리는 정도였는데요. CC코리아에서 함께 활동하며 많은 사람들을 함께 만나다보니, 주영이의 다른 면을 보게 되더라고요. 새로운 발견이었죠."(이종은)

"그 전엔 같은 일을 두고 둘이 함께 추진해본 경험이 없었어요. 그런데 CC코리아에서 종은과 같이 활동하면서 잠재 능력을 발견하게 되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게 됐어요. 예전엔 종은이가 자기 의지를 관철하려는 성향이 짙었는데, 자원활동가 생활을 하면서 배려심이 깊어진 것도 기분좋은 일이고요. 이른바 '오픈 마인드'를 갖게 된 거죠, 하하."(오주영)

이종은씨는 2009년 3월 다음커뮤니케이션에 둥지를 틀었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개발자로 첫 발을 디딘 셈이다. 7개월여 뒤인 10월에는 오주영씨가 다음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 기획팀에 자리잡았다. 그러면서 둘은 다시 CC, '컴퍼니 커플'이 됐다. 올해 1월17일, 이종은·오주영씨는 혼인 서약을 하고 정식 부부 인연을 맺었다. 영원한 CC로.

"남들은 지겹지 않냐고들 하지만, 회사에선 서로 팀이 달라 얼굴 볼 기회가 거의 없어요. 그래도 둘이 있을 땐 아이디어를 자주 나누는 편이에요. 예컨대 CC코리아 활동만 해도, 그저 CCL을 보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둘이 힘을 모아 관련 서비스를 직접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아직은 아이디어 차원이지만요. 안 그래 주영?"(이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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