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개인 전파인증, 전봇대 좀 뽑아주세요"

발행일 2010-08-11 15:31:01
딱딱하고 폐쇄적인 국내 휴대폰 개인 전파인증 제도를 두고 누리꾼들이 개선을 요구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지난 8월4일 다음 아고라 '이슈청원' 코너에 '불합리한 전파 개인인증 제도 변경/폐지 바랍니다'란 글이 올라왔다. 개인 이용자에게 불편하고 불합리한 국내 휴대폰 개인 전파인증 제도를 보다 느슨하고 유연한 방식으로 바꿔달라는 게 청원 뼈대다. 이 글은 등록 일주일째인 8월11일 오후 3시 현재 목표치인 300명을 넘어선 370여명의 누리꾼 서명을 받은 상태다.

왜 개인 전파인증 제도가 문제가 되는 걸까.

국내 이용자는 대개 휴대폰을 이동통신사 대리점에서 구매한다. 대리점에서 파는 휴대폰은 제조사인 삼성·LG전자 등이 방송통신위원회에 딸린 전파연구소에 요청해 전파인증을 받은 제품들이다. 휴대폰 단말기는 국내 전파법 46조와 57조에 따라 형식검증과 형식등록 및 전자파 적합등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검증해주는 곳이 전파연구소인 셈이다.

WCDMA 방식 휴대폰의 경우 국제 모바일 단말기 인증번호(IMEI)가 부여돼 있다. 한국은 IMEI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기본 채택하고 있다. IMEI가 등록된 휴대폰만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반해 외국 대부분 나라는 IMEI 블랙리스트를 적용하고 있다. 사용이 금지된 단말기를 뺀 나머지 기기는 자유롭게 쓰도록 하는 대신, 가입자 식별카드(SIM카드)로 이용자를 인식하는 방식이다.

IMEI 화이트리스트 방식에선 이용자가 이통사를 바꿀 때마다 그에 맞는 단말기를 사야 하는 부담이 있다. 그렇지만 IMEI 블랙리스트 제도를 적용하면 이용자는 이통사에 관계 없이 SIM카드만 바꿔 끼워가며 자유롭게 통화를 할 수 있게 된다.

국내 전파인증제도의 문제점은 비단 휴대폰을 보다 쉽게 갈아타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국내에 정식 출시되지 않은 휴대폰 단말기를 개인이 외국에서 구매해 들어오면 또다른 문제는 남는다. 이 경우 해당 단말기를 국내에서 쓰려면 구매자가 직접 전파연구소에 의뢰해 인증을 받은 다음, 이통사 대리점에 가서 개통 신청을 해야 한다. 인증 절차도 번거로울 뿐더러, 비용도 적잖이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지난해 9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아이폰3GS를 개통한 이성진씨는 "당시만 해도 개인이 전파인증을 거쳐 휴대폰을 개통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고 고충을 털어놓았다. 이성진씨는 해외에서 직접 구매한 아이폰을 전파연구소에서 인증받는 과정에서 테스트 비용과 인증 비용, 면허료 등을 포함해 모두 36만원이 넘는 돈을 지불했다. 관련 서류를 직접 챙겨야 할 뿐더러, 전파인증을 거쳐 인증서를 발급하기까지 대략 한 달을 기다려야 했다. 이용자 불편이 알려지면서 인증 절차나 대상이 조금 완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개인이 마음에 드는 단말기를 외국에서 가져다 쓰려면 시간과 비용, 발품 모두 오롯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인 건 마찬가지다.

한 회사에서 똑같은 모델 단말기를 여러 대 들여와 쓰더라도 단말기마다 일일이 전파인증을 받아야 한다. 전파인증 제도가 개인 인증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선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데다 '일일이 테스트는 하는 걸까'라는 의구심을 갖게 만든다. 여기에 ▲개인 인증을 받은 휴대폰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때도 이를 받은 이용자가 다시 개인 인증을 거쳐야 하고 ▲한 사람이 여러 대의 단말기를 동시에 개인 인증받지 못하는 문제 등도 이용자들이 꼽는 불편 사례다. 누리꾼 이슈청원이 제기된 것도 이런 불편함을 개선해보자는 이용자 요구가 깔려 있다.

이용자 입장에선 전파인증 제도를 폐지하면 모든 문제가 쉽게 풀릴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 상황에선 간단치 않은 문제다. 예컨대 와이파이만 봐도 한국은 13개 채널을 쓰지만 미국은 11개 채널을 쓴다. 와이파이 기능이 탑재된 단말기를 미국에서 들여와 쓸 경우 일부 채널에선 와이파이 수신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셈이다. 이통사가 자체 제공하는 왑(WAP) 방식 무선인터넷 서비스처럼 한국에만 특화된 일부 서비스는 아예 이용할 수 없다.

이성진씨는 "예전처럼 SMS나 MMS 국제 표준을 따르지 않는 데서 발생하는 송수신 문제도 발생할 수 있고, 외산 단말기 도입 억제 효과로 인해 국내 단말기 제조업체들이 얻는 반사이익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며 "소비자가 모르는 상태에서 단말기를 자유롭게 갈아타며 쓸 때 발생하는 각종 문제들에 대해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상범 홍익세상 대표는 "한국과 터키, 일부 공산국가를 제외한 미국, 유럽, 동남아 주요 국가 등은 모두 블랙리스트 제도를 채택해 지역이나 이통사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SIM카드를 바꿔가며 휴대폰을 쓰고 있다"라며 "전파인증 제도 자체를 폐지하기는 무리겠지만, 최소한 불합리한 점들의 개정은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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