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이 HTC에 '넥서스 원' 제조를 제안하기에 앞서 삼성전자와 소니에릭슨에 먼저 제안했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두 업체가 난색을 표하는 사이에 넥서스 원 제조는 대만의 HTC 몫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HTC는 넥서스 원을 성공적으로 출시하면서 일거에 브랜드를 알리는 효과를 톡톡히 봤다. 전세계 소비자들이 HTC라는 회사를 알게됐다.

대만의 HTC는 컴팩의 PDA 'iPAQ'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포켓 PC 등을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으로 공급하던 업체였다. 그랬던 HTC가 자사의 브랜드를 내세운 지 불과 몇 년 만에 세계 8위(2010년 2분기, 가트너)의 휴대폰 제조업체로 떠올랐다.

물론 HTC의 성공의 밑바탕에는 지난 십 수년간 PDA와 포켓PC, 윈도우 모바일 폰을 거치며 쌓아온 기술력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못지 않게 안드로이드 진영의 이정표가 될 두 종의 단말기를 잇달아 출시하며 구글과 밀접한 협력을 했던 것이 HTC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HTC는 2008년 최초의 안드로이드폰인 G1을 출시한 데 이어, 올 초 구글의 레퍼런스폰인 '넥서스 원'까지 선보이면서 스마트폰 시장에 'HTC' 이름 석자를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지난 6월 구글이 넥서스 원의 프로요(2.2) 업데이트를 제공한 이후, 가장 먼저 업데이트를 지원한 것도 HTC의 디자이어였다. 브랜드 인지도가 향상됐을 뿐만 아니라, 기술력과 개발 경험도 톡톡히 챙긴 셈이다.

그 결과 HTC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노키아와 RIM, 애플에 이어 점유율 4위(2010년 2분기, IDC)를 기록하면서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고 있다. 반면, 세계 2위의 휴대폰 업체인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만큼은 '꼬꼬마' HTC에 한 단계 뒤쳐진 5위(2010년 2분기, IDC)에 그치고 있다. 같은 통계에서 소니에릭슨은 '기타' 항목에 포함돼 있었다.

만약에 넥서스 원을 제조한 회사가 HTC가 아니라 삼성전자라면 어땠을까? 아니, 이미 지난 얘기는 빼고, 만약 삼성전자가 '넥서스 투'를 선보인다면 앞으로 스마트폰 시장의 판도는 어떻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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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laxy s gingerbread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니다. 삼성전자가 최근 구글과 함께 진저브레드(안드로이드 3.0)의 레퍼런스폰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에릭 슈미트 구글 CEO가 "넥서스 투에 대한 계획은 없다"고 못박은 상황에서 뜬금없이 레퍼런스 폰 타령이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슈미트 CEO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는 넥서스 원 출시를 앞두고도 이러한 발언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난 6월 방한했던 앤디 루빈 구글 모바일 플랫폼 부사장의 발언이 솔직해 보인다. 그는 "엔지니어가 OS를 설계할 때 제품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방향성을 잃을 수 있다. 명칭이 넥서스 투가 될지는 미정이지만 당분간 이러한 접근법을 취할 것"이라며 넥서스 원의 후속 모델 출시를 암시한 바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애초에 넥서스 원의 후속 모델은 소니에릭슨의 몫이었다고 한다. 구글과 협력해 안드로이드 3.0 버전의 레퍼런스폰을 개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최근 이 프로젝트가 무산됐다고 한다.

업계에서는 구글이 새로운 파트너로 삼성전자를 선택했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구체적인 하드웨어 사양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구글과 소니에릭슨의 프로젝트가 그대로 삼성전자로 넘어가면서 삼성전자도 자사의 프로세서가 아닌 퀄컴의 1.2GHz급 제품을 사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1GHz의 스냅드래곤을 탑재한 넥서스 원보다 전반적으로 소폭 향상된 하드웨어 사양을 가질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오는 10월부터 본격적인 개발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이 제품의 이름이 넥서스 투가 될 지, 삼성의 갤럭시 브랜드에 'with Google'을 붙여 출시하게 될 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앤디 루빈 부사장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삼성전자와 구글의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다른 이름으로 출시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삼성전자와 구글을 통해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다. 삼성전자는 "아직 갤럭시S의 프로요(2.2) 업데이트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저브레드(3.0) 단말기의 출시 계획을 얘기하는 것은 너무 앞선 얘기가 아니냐"라며 "진저브레드 레퍼런스폰 출시 계획은 정해진 바 없다"라고 부인했다. 구글코리아도 "본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협력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며, 확인해주기도 어려운 내용"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구글이 예상대로 진저브레드 버전부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예정이라면 앤디 루빈 부사장의 발언과 같이 또 다른 레퍼런스폰을 필요로 할 공산이 크다.

진저브레드와 관련된 다양한 루머 중에는 안드로이드의 사용자 인터페이스(UI)을 대폭 개선하는 대신 HTC의 센스 UI나 모토로라의 모토블러와 같은 제조사의 커스텀 UI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플랫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하이엔드 스마트폰에는 진저브레드를 탑재하고 보급형 라인업에는 프로요를 탑재하는 형태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이원화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러한 커다란 변화로 인해 구글이 레퍼런스폰을 제작하려고 한다면 그 역할을 삼성전자가 맡을 것이라는 얘기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구글과 삼성전자는 앤디 루빈 구글 부사장이 갤럭시S 런칭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할 만큼 최근 들어 관계가 돈독한 편이다. 더군다나 삼성전자의 휴대폰 하드웨어 제조 실력 만큼은 세계 최고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루빈 부사장도 갤럭시S에 대해 "내가 아는 스마트폰 중에서 단연 톱"이라며 만족감을 표한 바 있다.

삼성전자가 구글과 함께 진저브레드의 레퍼런스폰을 출시하게 된다면 '스마트폰도 삼성'이라는 이미지를 단숨에 각인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향후 하이엔드 안드로이드폰의 주력이 될 진저브레드 관련 경험을 충분히 축적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내년 이후에 안드로이드 라인업을 대폭 확대하는데 커다란 원동력이 될 것이다. HTC가 넥서스 원 출시 이후에 다양한 안드로이드 히트폰을 선보일 수 있었듯이 말이다.

하이엔드 스마트폰은 안드로이드로, 보급형 스마트폰은 바다 플랫폼으로 이원화시키려는 삼성전자의 멀티플랫폼 전략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삼성전자의 안드로이드 라인업이 선진 시장에서 하이엔드 스마트폰으로써 글로벌 히트 모델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과연 삼성전자가 제조한 구글 넥서스 투(혹은 다른 이름의 레퍼런스폰)를 만나게 될 수 있을까? 앞으로 프로젝트의 윤곽이 조금 더 구체화되면 훨씬 자세한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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