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정보 설계’(information archiectect)에 크게 공헌한 것으로 유명한 리처드 솔 우르만이 해리 마크스와 ‘TED’(기술, 오락, 디자인의 영어 앞글자를 따서 만든 합성어)를 설립했을 때만 해도, TED는 당시 미국 첨단 기술 산업 관계자들의 향연이었다. 매킨토시 컴퓨터와 소니 콤팩트 디스크의 시연, 수학자 벤와 만델브로트의 프랙탈 이론, 과학자 마빈 민스키의 인공지능 이론 강연 등이 대표적인 예였다. 우르만에게 TED는 어디까지나, 그처럼,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의 교차를 통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벤트였다.

이 TED의 강연 주제를 다양화하고 미국을 넘어 국제적 지식 소통의 포럼으로 확장을 시킨 것은 2002년 우르만으로부터 TED를 인수한 크리스 앤더슨이다.

이 앤더슨은 가끔 동명이인인 미국 IT 잡지 ‘와이어드’의 편집장 크리스 앤더슨과 혼동이 되곤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름, 같은 디지털 정보 생태계에 간여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모두 디지털 환경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사회 현상에 관심과 열의가 있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그러나 전자가 비트의 역동성을 빌어서 ‘TED’라는 플랫폼을 통해 사회의 공익적 가치를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후자는 그 비트의 힘에서 ‘롱테일 경제학’, ‘공짜 경제학’ 등 기존 산업계에서 포착하지 못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하는 데 주력한다.

각자의 영역에서 현재 인터넷과 사회의 발전에 공헌하고 있는 두 사람의 차이가 큰 까닭 중 하나는, TED의 크리스 앤더슨의 성장 배경의 특수성 때문이다. 앤더슨은 의료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파키스탄에서 태어나 인도의 유명 국제학교인 우드스탁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훗날, 옥스포드에서 학위를 딴 후 미국에서 기자 생활과 '비즈니스 2.0' 등의 잡지 운영을 통한 출판업으로 크게 성공을 했지만, 닷컴 붕괴로 인해 몰락한다. 그 후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 도전한 것이 TED였다. 앤더슨은 이 시점에서, TED에서 자신이 학창 시절을 보냈던 우드스탁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 우드스탁은 국제학교였기 때문에 다양한 국적, 인종, 종족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학교’라는 하나의 플랫폼 위에서, ‘지식의 공유’라는 소통의 방법 아래에서, 그들은 그 피상적 차이를 넘어 본질적으로 하나였다. 그 ‘경험’을 앤더슨은 TED를 통해 ‘확산’시키고 싶었다. ‘널리 전할 만한 가치’(Ideas worth spreading)라는 기치를 내걸고 성장한 TED의 중건은 여기서 시작됐다.

이 '지식 공유를 통한 인류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사명의 진정성 확보를 위해서, 본래 영리조직이었던 TED를 비영리조직으로 바꾼 것 외에, 앤더슨이 한 주요한 업적 중 하나는 인터넷상에서 비디오 콘텐츠가 가지는 잠재적 위력에 주목한 것이다.

1440년경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판 인쇄술을 개발하기 전까지는, 대다수의 소통은 직접적 대면 접촉을 통한 소통이었다. 이같은 전통적 방식에 비해 인쇄술의 발전이 가져다 준 혜택은 소위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일대 다수를 상대하는 ‘대중 매체’의 탄생이었다. 중세의 수사들이 하는 주요 노동 중 하나가 성경의 필사였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지식의 보급 체계에 있어서 혁신적인 비용 절감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그 비용 절감이 대가없이 이뤄진 것은 아니다. 대면접촉에서 활자소비로 소통의 방법이 전환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 중 하나는 ‘비언어적 소통의 효과’다. 바라보고 있는 상대의 역동적인 움직임, 성량과 성조의 변화, 동조하는 집단의 열기 같은 것이 그 것들이다.

앤더슨은 인터넷상에서 비디오 콘텐츠가 이 같은 기존 대중 매체의 한계를 극복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비디오는 언어적, 비언어적 의사 소통의 효과가 모두 발휘되는 콘텐츠다. 나아가, 인터넷이란 플랫폼은 누구도 소유하고, 통제하지 않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이 개방적인 미디어는 참여자의 자발적인 의지에 따라서 그 콘텐츠가 생산자가 추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별도로 유통 조직을 관리, 운영하지 않아도, 확산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덧붙여, 국내에서 올해 터졌던 여중생과 할머니의 지하철 내 언쟁을 가리키는 '유튜브녀' 사건을 기억해보자. 이와 같은 각종 사건들의 중심에 있는 것은 신문 기사나 블로그 포스트보다는 역시 동영상이 많다. 이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읽거나 듣는 콘텐츠에 비해 인터넷상에서 보는 콘텐츠의 자극성, 전염성이 높고 강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앤더슨은 한 가지를 더했다. 할리우드 영화를 볼 때 2시간 정도 되는 상영 시간에, 기승전결의 전개 과정과, 선남선녀 간에 약간의 액션과 로맨스를 예측하는 것처럼, 강연을 콘서트화시킨 것이다. 그는 강연자에게 18분 내에 압축적인 메시지를 가시적으로 전달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TED라는 콘텐츠의 패키지를 정형화시켰다. 코카콜라 특유의 캔이 그 용기 안에 든 액체의 품질을 보장하는 것처럼, TED라는 양식이 그 안의 내용에 대한 신뢰성을 보증하게 만든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6년 6월부터, 엄선된 TED 컨퍼런스의 강연들이 'TED토크'(TED Talks)이라는 이름으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로 인터넷에 방출되기 시작했다. 2010년 7월 기준으로 현재 약 700개 이상의 TED토크가 인터넷에 공유되고 있는 상태다. 이들 강연들은 2009년 1월 기준으로 5천만번 시청됐다. 2010년 7월, 약 한 해가 지나서는 2억9천만 시청수를 넘어섰다. TED 자체도 미국을 넘어서 전세계에서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TED상(TED Prize)과 TED 연구위원(TED Fellow) 같은 부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TED 라이선스를 받아서 지역 공동체에 의해 자발적으로 운영되는 TEDx 같은 프로그램도 2010년 현재 전세계 60여 나라에 750여개가 활성화돼 있다. 국내에서도 수도권과 대학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중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를 적용해 비디오를 인터넷에 확산시킨 것도 복안이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는 2002년 11월16일 현재 하버드 로스쿨 교수로 있는 로렉스 레식 등이 주축이 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 재단의 작품이다. ‘라이선스(계약)’란 말에서 보듯, 이것은 기존 저작권의 권위를 부정하는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과는 다르다. 기존 저작권의 권위는 인정하되, 저작권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이라는 고전에서 탈피한 것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는 창작자가 스스로 공유 권한을 설정해 네트워크 정보 환경에서 공유자와 공유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 계약 설정 과정 또한 서너 개의 이미지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직관적인 성격이라 접근성이 뛰어나다. 저작권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에서, 라이선스를 지키는 한 ‘자유’로, 디지털 생태계에 맞게 저작권을 유지하되 그 적용의 관점을 바꾼 것이다. 물론 TED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설정은 ‘BY-NC-SA’(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유지)여서 TED 강연을 편집해 재창작물을 만드는 ‘리믹스 활동’은 불가능하나 기타 내 블로그에 퍼가기, 교실 내 상영 등 그 외 모든 것이 자유롭다.

이 자유를 통해 만발한 이용자 혁신의 장관이 TED의 ‘오픈 번역 프로젝트’이다. 이용자의, 이용자에 의한, 이용자를 위한 이 번역 프로젝트는 700개 이상 공개된 TED 강연을 번역자, 리뷰어를 한 짝으로 하여 '닷서브' 같은 웹 협업도구를 통해 진행된다. 이용자에 의한 자기 규율화의 힘을 믿되, 철저한 가이드라인을 세움으로써 초기 시행착오를 막고 참여율을 높인 것이다. 2009년 5월, 200명의 자원봉사자에 의해서 초기 40개 언어, 300개 번역물로 시범을 보인 이래, 이 프로젝트는 2010년 현재 4259명의 자발적 번역 자원봉사자를 온라인상에서 모집했고, 79개 언어로 1만30 30개의 강연을 번역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1503명의 번역 자원봉사자가 82개 언어로 2055개의 강연을 번역 중이다. 무려 300개 이상의 강연을 번역한 번역자 중에는 제3세계 출신도 다수 포함돼 있다. 183개의 강연을 번역한 세바스티안 베티는 아르헨티나, 360개의 강연을 번역한 안톤 히코프는 체코 공화국, 481개의 강연을 번역한 안와 다파 알라는 수단 출신이다.

그렇다면 TED는 정말 크리스 앤더슨이 꿈꾼 지식의 민주화를 이루고 있는 것일까?

2004년 유명한 벤처 캐피탈리스트이자 현재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재단의 CEO기도 한 조이 이토가 ‘블로그와 돌발적 민주주의’(Weblogs and Emergent Democracy)라는 글을 공저로 발표한 바 있다. 블로그, 위키 등 새로운 협업 도구의 발달을 통해서 온라인 공간의 자기 조직화가 활성화된 덕분에 전에 예측하지 못했던 ‘집단 지성’이라는 새로운 질의 참여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디지털 기술을 통한 제3세계와의 소통의 채널을 개발에 전력해왔으며 현재는 하버드의 버크만센터에서 '글로벌 보이스'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에단 쥬커만은 ‘자기만의 현실을 과대 해석’하는 것으로 일축했다. 제1세계의 디지털 민주화와 제3세계의 현실은 다르다는 것이다. 제3세계의 높은 문맹률, 낮은 인터넷 보급률 등을 감안했을 때 웹 2.0이 그것이 도입되는 사회문화적 해석 없이 모두 ‘자발적 참여’와 그 참여의 ‘자기 조직화’를 통한 ‘돌발적 민주주의’로 진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다.

같은 맥락의 비판은 TED에도 적용이 된다. 700개가 넘는 강의가 5천명 가까이 되는 자원봉사자에 의해서 1만개 이상 번역된다고 할 지라도, 제3세계에서 그 같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은 인터넷에 접속이 되고 그 내용을 문자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 능력과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들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대다수인 것이, 그것이 우리 인류의 인구의 3분의 2에 해당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이 바꿀 세상은 여전히 ‘그들만의 세상’인 것이다. 지식의 민주화는 어디까지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잔치로 남아 있다.

따라서 새로운 착상은 ‘그들에게 맞는’ ‘적절한 방식’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다.

에단 쥬커만이 쓴 ‘제3세계를 위한 디지털 시민 혁명 제안’(Makings Room for the Third World in the Second Superpower)에 보면 2000년 가나, 그리고 같은 해 세네갈의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되는 선거부정의 위기를 막았던 것은 인터넷이 아니라 ‘휴대폰’과 ‘대담용 라디오’의 조합이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시민이 투표권을 행사하러 가다가, 투표장에서 부정의 조짐이 보이면 휴대폰으로 대담용 라디오 스튜디오에 전화를 건다. 라디오를 통해 그 사실이 소개가 되면, 통보를 받은 경찰은 현장에 출동해야 할 강제적 동기를 갖게 된다. 그 결과 오랫동안 권위주의 정부의 지배를 받던 가나와 세네갈 두 곳 모두에서 반대당이 정권을 탈취했다.

이것은 정보 통신에 관한 국제기구인 ITU(국제전기통신연합)의 2006년 통계를 기초로 했을 때, 전세계 인터넷 이용자 중 4.8%만 아프리카에 있는 데 반하여, 2001년에서 2006년 사이 아프리카의 모바일 가입자 성장률은 50.9%에 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같은 상황에서 이용자가 전화를 걸어 대담자와 대담을 나눌 수 있는 대담용 라디오 같은 프로그램은, 제1세계의 유튜브 같은 소위 2.0 콘텐츠 공유 플랫폼과 같은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돌발적 민주주의’를 위해 적절한 기술은 블로그나 위키보다는 모바일과 대담용 라디오였다.

그 같은 소외된 다수를 위한 혁신의 관점에서 지난 2010년 11월20일 국내 대표적 TEDx 이벤트 중에 하나인 TEDx서울의 ‘회사후소’ 행사에서 발표 순서 중 하나로 ‘ODP’(Open Dubbing Project: 열린 더빙 프로젝트)가 발표된 것은 고무적이다. ODP는 간략하게 TED와 같은 이용자의, 이용자에 의한, 이용자를 위한 번역 체계이지만, 활자 대신에 음성을 중심으로 한다. TED 영어 강연에 자국어 음성을 더하는 것이다. 고용량의 비디오 콘텐츠를 소화할 수 없는 제3세계의 현실, 그리고 그들의 높은 문맹률을 감안한 것이다.

일단은 국내의 TEDx서울 공동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인 만큼, 한국어권에 있는 시각 장애인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전세계의 참여자가 늘어나면, 그때부터는 다국어 지원을 통해서 앞서 언급한 제3세계로의 혜택 확대도 가능할 것이다. 그 후에는 출퇴근 직장인, 등하교 학생 등 짜투리 시간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원하는 사람들로 그 대상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상의 이야기를 종합해봤을 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그냥 꽃만 피우고 사라지는 상황에서 TED는 왜 많은 한계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지지와 그 지지의 확산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그 점을 생각해보면 사실 이 신화의 주인공은 크리스 앤더슨도, 그 앤더슨이 개최한 잔치에 초대된 수많은 명사들도 아니다. 'TED 마법'의 핵심은 널리 퍼질 만한 아이디어를 실제로 널리 퍼지게끔 만든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용자다. 그들이 TED를 소개하고, 번역하고, 자신들의 행사를 꾸리고, 이제는 소외된 다수를 위한 혁신까지 준비한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용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허가된, 누구도 소유하지도 통제하지도 않는 공공지대인 인터넷이란 플랫폼의 개방적인 성격이다. 권력과 이윤을 넘어선 소셜의 힘이다.

이 이용자들이 없었다면 TED라는 하나의 문화적 DNA가 이렇게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들이 없었다면 주어진 언어의 벽과 지역적 현실의 장애를 극복하기가, 그 노력 자체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끌리고 들끓고 쏠린다'(Here Comes Everybody)의 저자, 뉴욕대 클레이 셔키 교수가 말한대로 '과거에는 작은 일에는 사랑이, 큰 일에는 돈이' 역할을 했지만, 21세기 디지털 환경에서는 인터넷부터 월드와이드웹까지, 그 월드와이드웹에서 TED의 지식 공유 운동에 이르기까지, 돈을 넘어선 사랑이 그 큰 일의 주축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 사랑이 급속도로 상업화와 권력화를 경험하고 있는 인터넷과 그 인터넷을 주축으로 한 앞으로의 디지털 세상을 지키고 있다. TED 처럼 인터넷상에서 ‘자유롭게’ 공개되고, ‘자발적’으로 공유되며, 또한 그 문제점을 스스로 발견해서 개선해나가는 하나의 사회적 흐름이 대중적으로 뿌리내린다는 것은 디지털 세상을 각자의 방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나누고 꿈꿀 수 있는 공간(commons)으로서 남기고, 다음 세대를 위한 공간으로 지켜가고자 하는 모두의 노력이 살아 있다는희망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TED는 '왜' 사랑받고 있는가, '어떻게' 사랑받을 수 있었는가를 되짚어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 이것은 TED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터넷이란 정보 네트워크들의 연대와 필연적으로 관계된, 그리고 그 인터넷이 촉발하는 디지털 혁명의 영향 아래에 있는 우리 모두의 미래가 어떨 것인가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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