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가 똑똑한 '스마트카'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요? 일반 휴대폰이 어떻게 스마트폰으로 진화했는지를 돌이켜보면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운영체제(OS)입니다.

과거 휴대폰은 기기마다 조금씩 다른 임베디드 운영체제를 사용해왔지만, 성능이 뛰어나고 완성도가 높은 통합 플랫폼을 채택하면서 스마트폰으로 진화할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에서도 하나의 플랫폼으로 인터넷과 내비게이션을 사용하고,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원할하게 구동하기 위해서는 '똑똑한' 운영체제가 꼭 필요하죠.

PC와 노트북, 스마트폰, 태블릿 등 다양한 IT 기기들에서 수많은 OS 업체간 경쟁이 치열했듯이 스마트카 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 업체는 업체대로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고, 운영체제 업체들은 업체들대로 빠른 시간 안에 더 많은 자동차 업체와 협력하면서 다른 운영체제 업체가 발을 못 부치도록 분주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이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자동차의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죠. 신생 기업들이 발을 부치기가 다른 분야보다 더 어렵습니다. 물론 해당 분야에서 이름을 올린 작은 업체는 예외로 하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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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art_car_OS


안드로이드는 이미 스마트폰 시장에서 검증을 마친 만큼, 자동차 업체가 채택할 수 있는 여러 오픈 플랫폼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뛰어난 편입니다. 안드로이드 마켓 등 에코시스템을 갈 갖추고 있으며, 많은 소비자들에게 안드로이드 UI가 친숙해졌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반도체 등 하드웨어 업체들과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이미 안드로이드를 다각도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구글 음성 검색 등 구글의 각종 서비스를 자동차에서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대신, 단점도 있습니다. 김상모 윈드리버코리아 부장은 "안드로이드와 같은 모바일 플랫폼을 자동차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손봐야 할 부분이 만만치 않다"고 말합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멀티미디어네트워크시스템(MOST:Midia Orented System Transport)과 CAN(Control Area Network) 등 기존에 자동차 업계에서 사용하는 차량용 인터페이스와 잘 호환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잘 구동해준다고 해도 주행속도와 연료 상태 등 각종 주행 정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안 맞는 옷을 입는 셈입니다."

부팅 속도도 높여야 합니다. 시동을 거는 순간 부팅이 안되면, 운전을 할 때마다 10초, 20초씩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전압 관리도 중요합니다. 휴대폰에서는 전력 소모를 줄이는 것이 과제였지만, 자동차에서는 배터리 전압이 유동적이기 때문에 초점을 전압 상태 관리(Power Status Management)에 맞춰야 합니다.

자동차 회사의 입장에서는 안드로이드의 잦은 업데이트와 구글이라는 단일 회사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지는 문제도 고민입니다.

안드로이드는 6개월이 멀다고 업데이트되는 상황이죠. 자동차는 기획부터 제품 출시까지 2~3년이 걸리는데 2년 전 안드로이드 버전을 차량에 탑재해서 출시했다가는 안드로이드 애플리케이션이 호환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발 빠른 스마트폰 시장에 길들여진 소비자들도 만족하지 못할 것입니다. 구글의 입장에서도 스마트폰에 이어 이제 막 태블릿으로 안드로이드의 영역을 확장하는 상황에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대한 호환성 인증(CTS)을 신경 쓸 여력이 없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자동차 업체들은 안드로이드 뿐만 아니라 리눅스 등 다른 오픈소스 기반의 운영체제를 함께 테스트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일부 업체가 독자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이 경우에는 플랫폼의 에코시스템을 구축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요즘에는 자동차 업계가 조금씩 힘을 합치는 모양새입니다. 핵심 플랫폼은 공동으로 개발하고 사용자들에게 보여지는 인터페이스와 애플리케이션은 각자 개발해 비용을 줄이면서도 차별화 요소를 가져가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물이 '제니비'(GENIVI) 얼라이언스입니다. 제니비는 오픈소스 기반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플랫폼을 개발하기 위한 연합체로, BMW와 윈드리버, 인텔, GM, 푸조 등이 모여 2009년 설립했습니다. 이후 티어-1과 소프트웨어, 반도체 업계에서 100여 개의 기업들이 참여하며 글로벌 표준 연합체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현대자동차와 LG전자, 모비스, ETRI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니비 플랫폼은 80% 이상이 인텔-노키아의 리눅스 기반 '미고'(MeeGo) 플랫폼을 이용해 만들어졌습니다. 제니비 얼라이언스는 미고에서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해서 자동차 환경에 꼭 맞게 수정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를 위한 오픈소스 플랫폼이라고 부를 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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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mart car_4


(사진 제공 : 프리스케일 반도체 코리아)


제니비 얼라이언스의 탄생 과정를 살펴보면 자동차 업계의 고민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자동차 업계에서 새로운 시도를 일찍하기로 유명한 BMW는 2006년부터 차기 제품에 탑재할 인포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인텔과 머리를 맞댔습니다. 처음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협력하는가 싶더니 리눅스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윈드리버와 손잡고 리눅스 기반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독자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2년이 흐르자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앞으로 투입해야 하는 비용은 더욱 어마어마했습니다. 결국 2009년 BMW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다른 자동차 업체들과 모여 플랫폼을 오픈하고 오픈 컨소시엄을 구축하기로 힘을 모았습니다.

제니비 얼라이언스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제니비라는 이름도 제네바와 '인-비히클 인포시스템(IVI)'을 합친 말입니다.

2010년 GENIVI 1.0 플랫폼이 발표됐으며 인텔 칩 뿐만 아니라 ARM 기반 프로세서도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에서 2013년 쯤이면 본격적으로 제니비 플랫폼이 탑재된 스마트카가 양산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안드로이드나 제니비와 같은 오픈소스 진영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표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MS)와 QNX를 꼽을 수 있습니다. QNX는 최근 RIM에 인수된 이후 블랙베리 태블릿 OS로 탈바꿈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우디, 토요타 등 자동차 업체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MS의 경우에도 2006년 BMW-인텔과 협력이 무산되기는 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 오토(Microsoft Auto)'를 출시하면서 자동차 시장 진출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윈도우 임베디드 제품군의 명칭을 통합하면서 ‘윈도우 임베디드 오토모티브 7’로 이름을 바꾼 MS는, 포드(Sync), 기아자동차(UVO) 등과 인포시스템 개발에 협력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토요타와 손잡고 MS 클라우드 플랫폼 '애저(Azure)'를 토요타 전기자동차에 접목할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시장조사기관 ABI리서치는 지난 6일 2016년까지 ‘커넥티드 카’ 시장이 2억1천만 대 규모(애프터마켓 포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연간 수십 억대 규모의 휴대폰 시장과 수 억대 규모를 기록하고 있는 TV 시장에 비하면 이제 막 성장하는 수준이지만, 머지않아 스마트폰 시장과 같이 자동차 시장에서도 여러 운영체제가 성능과 에코시스템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될 것입니다. 이미 포드와 BMW 등은 차량용 앱스토어 출시를 공식화한 상태죠.

마치 PC나 스마트폰을 살 때 운영체제를 고르듯, 자동차를 살 때도 어떤 운영체제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탑재돼 있는지를 따져봐야 할 시대가 가까워졌습니다. 그 때가 되면 자동차에 '시동 건다'는 말 대신 '부팅한다'라는 말을 써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 그런데 보통 스마트폰이 피처폰보다 비싸고 스마트TV는 일반 TV보다 비싼데, 스마트카의 시대가 열리면서 자동차 가격도 더 비싸지면 어떡하죠? 기사를 쓰고 있는 뚜벅이족의 속마음입니다. 자동차용 인포테인먼트 분야의 운영체제도 이미 우리나라 업체들이 뛰어들기에는 늦은 것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이 있을까요?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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