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듣고 잘못 본 건 아닌지 몇 번을 읽어봤다.

근데 정말이었다. KT가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 미래를 위해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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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석채 KT 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하루 아침에 모든 변화를 가져올 순 없겠지만, IT 산업에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지금이야말로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이 경쟁력을 가질 절호의 기회입니다."

KT는 국내 SW 생태계의 활성화를 위해 앞장서겠다며 SW 가치판단 혁신, SW 개발여건 지원, SW 시장진출 지원을 뼈대로 하는 방안을 내놨다.

SW가치 판단 혁신은 SW 구매 방식을 현재의 용역구매 방식에서 가치구매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말이다. 실 가치구매 방식은 해당 기업의 전문성, 개발하려는 SW의 미래 시장성 등을 기준으로 가격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KT는 이를 위해 전담 평가조직을 신설하고 기준을 정립한다는 계획이다.

SW 개발여건 지원은 개발 과정에서 발생된 산출물의 소유권을 개발사에 제공함으로써 1회성 개발의 관행을 깨고 장기적인 성장동력으로서 활용될 수 있도록 추진한다는 뜻이다.

개발된 솔루션들의 판매로 확보를 위해 오픈마켓 구축과 글로벌 진출도 지원한다는 것이 마지막이다.

나온 것만 보면 KT가 무슨 바람이 불어 이런 말을 쏟아냈는지 깜짝 놀라게 된다. 현재 KT 임직원들은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KT의 서울 목동 IT 프로젝트는 개발자 사이에서 국내 'IT 프로젝트의 막장'으로 불려왔다. 철야는 밥먹듯 하면서도 제대로 대접도 안해주고 요구 사항은 계속 바뀌고 무조건 날짜에 맞추라고 윽박지르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막장에 간 개발자들은 먹고는 살아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고 밝힌 바 있다.

뭐 이런 환경이 KT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정도가 가장 심하다'는 말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SW를 살 때도 전자구매를 하면서 투명성 있게 하는 것처럼 하면서도 정작 1순위에 선정된 기업에게 전화해 '공식적으로 공개된 유지보수료는 못주고 얼마만 줄 것이다. 그렇게 라도 납품을 할 것이냐'고 물어 황당했다는 모 SW 업체 사장의 말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물론 모두 과거의 일이라고 믿고 싶다. 손을 씻고 새사람이 되겠다는 사람에게 과거의 잘잘못을 들춰내는 것도 별로 좋은 버릇은 아니지만 그만큼 지은 죄가 있으니 거론하는 내용들이다. KT의 선언이 신선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에서 바라보는 냉소의 눈길들은 여전하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KT의 이번 행보에 대한 견해를 묻자 돌아온 대답들은 대부분 '냉소'였다. 프로젝트 단가를 '월별 투입된 인원의 비용에서 기능 구현으로 한다고 하는데 그게 더 무섭습니다'라는 말도 있다.

지난해부터 KT는 수천억원이 투입된 소위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KT는 IT 분야 자회사인 KTDS도 보유하고 있다. KT의 이번 선언이 실제 그렇게 구현되는지 여부는 KT의 차세대 프로젝트에서 여실히 나타날 것이다. 물론 KT는 그 프로젝트 말고 앞으로 할 프로젝트에 적용하겠다고 이야기할 지 모른다. 그만큼 스스로도 쉽지 않은 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냉소를 쏟아내면서도, 실제로 "거 봐라. KT가 하긴 뭘 하겠느냐"는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는 SW업계 종사자들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차가운 웃음을 따뜻한 웃음으로 바뀌게 하는 몫은 고스란히 KT의 몫이다. 선언은 누구나 할 수 있다. KT의 이번 선언이 말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냉소를 보내는 이들이 향후 쏟아낼 혹독한 비판을 묵묵히 감내해야 한다. 그 몫은 KT 실무진들 못지않게 이번 선언의 맨 앞에선 KT 경영진들의 몫이다. CEO의 교체 후 전임자의 정책이었다는 소리를 내놓기 일쑤였던 KT에서 또 그런 말이 나오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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