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1월29일 한미FTA 발효에 필요한 이행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한미FTA 국내 비준 절차가 마무리됐다. 이에 앞서 국회는 11월22일 저작권법과 특허법 등 14개 법안에 대한 개정안을 통과했다.

이중 저작권법은 ‘공정이용’, ‘일시적복제’, ‘암호화된 방송신호’라는 단어가 들어가며 알쏭한 법으로 개정됐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는 개정된 저작권법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한미FTA, 저작권법은 어떻게 바뀌나요?'를 주제로 공개 강좌를 12월1일 열었다. 공개 강좌의 사회는 윤종수 판사가, 강연은 남희섭 변리사와 최진원 연세대학교 법학연구원 전문연구원이 맡았다.

윤종수 판사는 “저작권법은 문화를 다루는 법인데 사람들이 저작권법에 대해 겁부터 먹게 하는 것은 안 좋다”라며 “저작권으로 다룰 게 아닌데도 저작권법으로 몰아가 이용자를 위축하게 하고 있다”라고 개정된 저작권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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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CC코리아(http://www.flickr.com/photos/wowcckorea/sets/72157628242793749). CC BY.


이번 강좌에선 남희섭 변리사와 최진원 전문연구원이 개정 저작권법 가운데 ▲일시적 저장 ▲저작물의 공정이용 ▲저작권 저작인접권 보호기간 연장 ▲저작인접권 보호기간의 특례 ▲음반제작자의 권리가 소멸한 음반 ▲암호화된 방송 신호 ▲위조 라벨, 캠코더 조항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기술적 보호조치 ▲법정손해배상 등에 대해 조목조목 짚어가며 설명했다.

최진원 연구원은 “저작권이 광우병처럼 확인되지 않은 공포를 주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라며 “개정된 저작권법은 명확하지 않은 게 많이 있는데 대표적인 게 일시적 복제와 공정이용 조항”이라고 개정된 저작권법을 설명했다.

일시적 저장은 한미FTA를 발효하기 위해 정부가 이번에 삽입한 조항이다. 저작권법 35조의2를 보자. “컴퓨터에서 저작물을 이용하는 경우에는 원활하고 효율적인 정보처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 그 저작물을 그 컴퓨터에 일시적으로 복제할 수 있다. 다만, 그 저작물의 이용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저작권자 허락 없이는 컴퓨터에 잠깐이라도 저장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A라는 업체가 방송을 생중계하는 계약을 맺었는데 방송이 끊기지 않도록 몇 초 단위로 저장하며 전송한다고 치자. 이럴 때는 ‘원활하고 효율적인 정보처리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범위’에 해당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계약은 생방송에 대해서만 맺었는데 저작권자 허락을 구하지 않고 생방송을 위해 파일을 조금씩 저장해가며 송출하는 게 법이 말하는 예외에 해당하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는 게 남희섭 변리사의 판단이다.

그는 “신문기사를 무단으로 퍼서 블로그에 게재한 사람이 저작권법 위반으로 송사에 휘말릴 때, 게재하기 전 신문기사를 복사한 행위도 저작권법 침해의 소지가 있다”라며 일시적 복제라는 문구가 주는 위험성을 꼬집었다.

저작권자 허락없이 파일을 복사해서 퍼뜨린 사람이 있다고 치자. 이전까지는 퍼뜨린 것에 대해 저작권 침해로 봤다면 이제는 퍼뜨리기 전 복사한 행위까지도 저작권 침해가 되어 가중처벌이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윤종수 판사는 “인터넷에서 모든 행위는 복제를 수반하는데 저작권 침해에 대한 논란이 일어났을 때 저작권자 측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일시적 복제 개념을 사용할 수 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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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CC코리아(http://www.flickr.com/photos/wowcckorea/sets/72157628242793749). CC BY.


특히 남희섭 변리사는 “미국 내에서도 일시적 저장의 범위에 대해 명확하게 정해진 바가 없다”라며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된 저작권법도 일시적 복제가 무엇인지를 규정하지 않은 터라 국내 이용자는 자기가 저작권을 침해하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상태다.

무엇이 법을 위반하는 행위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건 공정이용 조항도 마찬가지이다. 공정이용은 실제로는 저작권 침해이지만,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는 조항을 말한다. 보도·비평·교육·연구를 위해서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도 저작물을 이용하는 게 공정이용의 골자다.

이용자의 권익 신장에 긍정적으로 보이는 이 법 조항에 대해 최진원 연구원은 “굉장히 위험한 조항”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공정이용 때문에 불필요한 소송이 진행되는 경우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무엇이 공정이용에 해당하고 아닌지는 법원이 판단해야 할 몫으로 되어 있다”라고 꼬집었다. 공정이용에 해당하는지를 알기 위해 저작권법이 명시한 사항이 너무 포괄적이라는 이야기다.

저작권법 제35조의3은 “저작물의 통상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아니하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하여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라며 여기에 해당하는 예로 ▲영리성 또는 비영리성 등 이용의 목적 및 성격 ▲저작물의 종류 및 용도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그 중요성 ▲저작물의 이용이 그 저작물의 현재 시장 또는 가치나 잠재적인 시장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을 꼽고 있다. 이 조항에서 어느 하나도 저작권 침해하는 때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못한다는 게 최은섭 연구원과 남희섭 변리사, 윤종수 판사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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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CC코리아(http://www.flickr.com/photos/wowcckorea/sets/72157628242793749). CC BY.


예측하기 어려운 건 법 내용뿐이 아니다. 이번에 개정된 저작권법은 저작권이 이미 소멸한 사항에 대해서 저작권을 되살리는 내용이 포함됐다. 저작권이 설정되어 있지 않아, 그동안 무료로 써온 음악에 대한 저작권이 부활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저작권이 소멸돼 영화나 TV 등에서 음악을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쓴 행위도 저작권 침해 사례가 될 수 있다.

남희섭 변리사는 “약 2천개의 클래식 음반은 작곡가와 작사가가 죽어 음반제작자의 권리만 남았는데 이게 다 되살아날 판”이라며 “단서는 개정법 시행 전 제작한 복제물은 2년간 배포할 수 있다는 조항인데, 배포라는 게 팔 수 있다는 의미이지 방송의 배경음악 등에 쓸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며 문제 있는 조항으로 지적했다

개정 저작권법은 그간 저작권법상에서 다루지 않은 ▲암호화된 방송 신호 ▲위조 라벨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의 책임 ▲기술적 보호조치 등에 대한 사항도 규정하고 있다.

남희섭 변리사는 “정보통신망법에서 인터넷의 모든 걸 담으려 했듯이 너무 모든 걸 저작권법으로 통하게 만들려 한 것 같다”라며 “저작권으로 해야할 내용이 있고 행정적인 규제로 해야 하는 게 있다”라고 지적했다.

방송 신호를 저작물로 보고 위조품을 만들기 위해 상표와 포장을 위조하는 걸 상표권에 앞서 저작권 위반으로 모는 것, 자사 플랫폼상에서 저작권 침해물이 유통되는 것에 대해 망서비스 제공자, 포털사이트, 검색 엔진 등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에게 책임을 무는 것, 기술적 보호조치를 무력화하는 게 과연 저작권 침해 행위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말이다.

특히 이용자가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저작권 침해로 보고 있는 것도 문제이다. 최진원 연구원은 “최종 이용자를 자꾸 법의 테두리로 들여오는 것은 저작권이라는 게 왜 존재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라며 “돈을 내지 않고 저작물을 이용했다면,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게 문제이지 그것을 저작권 침해로 볼 사항인가”라며 의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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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CC코리아(http://www.flickr.com/photos/wowcckorea/sets/72157628242793749). CC BY.


개정된 저작권법은 우리나라와 미국이 FTA에 대한 절차를 완료했다고 서면통보하고 60일 내에 발효되며 정부에서는 내년 1월1일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미FTA 발효를 위해 미국이 저작권법을 수정하지 않은 상황을 확인하지 않은 것에 대해 직무유기로 고발됐다.

국내 저작권법은 이미 한미FTA를 위해 뜯어고쳤지만, 미국은 아직 요지부동이다. 현재 미국 저작권법은 일시적 저장을 명문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으며, 판례에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기술적 보호조치를 우회하는 장치나 서비스를 만들고 유통, 이용하는 행위가 금지되지만 미국은 유통하는 행위만 금지하고 있다. 또, 미국은 위조라벨이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저작권 침해로 보고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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