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동안 서울 연세대학교에서 '에버노트 해커톤'이 열렸다. 에버노트 API를 활용해 창의적인 응용 서비스를 만드는 경진대회다. 이 행사에는 필 리빈 에버노트 창업자 겸 CEO도 참석했다. 행사장에서 가진 짧은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사무소 설립 계획과 회사 운영 과정에서 겪은 어려움, 에버노트의 미래에 대한 구상을 공개했다. 한국 예비 스타트업을 위해선 "남을 위한 서비스보다 나를 위한 서비스를 만드는 게 더 어렵다"라며 "정말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명확하게 알고 사업을 시작하라"라고 조언을 남겼다.

에버노트 CEO 필 리빈
▲ 에버노트 CEO 필 리빈


필 리빈 에버노트 CEO @plibin


- 해커톤을 여는 목적은 무엇인가.

= 우리는 여러 방법으로 우리 API를 활용하도록 개발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몇 개월의 준비 기간을 주는 ETC도 있는데 해커톤은 짧은 시간에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이 행사는 우리에게도 실험적인 대회이다.

- 처음으로 여는 해커톤을 한국에서 개최하는 게 트로이 말론의 입김 덕분이라는 후문이 있다.

= (트로이 말론은 우리말에 능숙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 에너지가 큰 곳이라고 생각했다.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참가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에너지가 느껴졌다.

- 한국에 지사를 낸다는 이야기가 있다.

= 한두 달 내로 사무소를 만들어 올해 대여섯명 정도를 채용할 계획이다. 내년이면 10~20명으로 늘릴 생각이다. 전세계적으로는 현재 150명인 직원이 올해 300명으로 늘어난다. 새로운 인원 대다수는 해외 인력이다.(이날 행사장에 예비 에버노트 직원 2명이 참석했다.)

- 에버노트를 처음 만들 때 계획한 대로 사업이 진행되는가.

= 실제로 그렇다. 회사를 세울 때 세운 목표대로 5년간 지냈고 앞으로 100년 후에도 그럴 것이다. 나는 처음 회사를 세울 때 사람들을 똑똑하게 만들고, 두 번째 뇌와 같은 서비스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매일 내가 생각한 목표에 가까워간다.

- 에버노트의 목표는 무엇인가.

= 에버노트는 내가 일하는 세 번째 회사다. 첫 회사는 유통회사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두 번째 회사는 정부 보안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세 번째인 에버노트는 나를 위한 것을 만들고 싶어 세운 회사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금 무엇이 유행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말고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하라'라고 말한다.

- 에버노트는 다양한 운영체제와 기기를 지원하는데, 비용과 인력 문제로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일단은 우리의 믿음이 중요하다. 에버노트의 기본 가치는 '어느 기기에서 저장해도 어디에서든 꺼내볼 수 있다'이다. 기기는 바뀌어도 에버노트를 계속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여러 플랫폼을 대응하는 과정은 힘들고 돈도 많이 든다. 하지만 새로운 기기를 배우고 적응하는 과정은 재미있다.

- 직접 개발 과정에 참여하는가.

= 나는 프로그래머 출신이고, 공동창업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친구들 중 내가 가장 프로그램 실력이 떨어졌다.(웃음) 그 대신 나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에버노트 푸드 판올림을 준비하며 날짜와 시간 정보를 보여주는 디자인에 관한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 에버노트 디자인은 투박한 편인데 CEO가 나선다니 의외다.

= 디자인에 변화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단순하고 깔끔함을 유지하는 게 우리의 전략이다.

- 5년간 사업 방향을 수정해야 했거나 크게 흔들리는 일도 많았을 것 같다.

= 회사 문을 닫을 뻔한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10분만 지나면 '회사를 접어야겠구나'라는 순간도 있었다. 2008년 투자 유치를 앞두고 자금을 받기로 한 날 갑자기 투자사에서 돈을 못 준다고 했다. 그때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있던 시기다. 직원은 20명인데 당장 3주 정도만 운영할 자금밖에 남지 않았다. 추가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여기저기 연락했지만,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그날 새벽 3시까지 고민하다 '내일 직원들에게 회사 문을 닫는다고 말해야지'라고 결심했다. 그런데 컴퓨터를 끄려는 순간 e메일 한 통을 받았다. 스웨덴에 있는 이용자라며 우리 서비스를 잘 쓰고 있고 자기 삶을 바꿔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혹시 돈이 필요하면 도와주겠다는 말이 적혔다.

그 e메일을 받고 실은 우리가 투자자를 찾고 있다고 바로 답변을 보냈다. 20분 뒤에 그 이용자와 스카이프로 통화했고 2주 뒤 50만달러를 투자받았다. 그 덕분에 벤처캐피탈에 투자금을 받기까지 회사를 몇 달 더 운영할 수 있었다. 이 투자자를 직접 만난 일은 한 번도 없다. 그저 스웨덴에 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것만 안다.

회사를 운영할 때 50%는 운이다. 그건 조절할 수 없지만, 전력을 다해 노력하면 기회가 온다고 생각한다.

- 한국 스타트업에 조언 한 마디 부탁한다.

= 남을 위한 걸 만들지 말고 정말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사업을 시작하기 바란다. 사실 남을 위한 것보다 나를 위한 것을 만드는 게 더 어렵다. 일단 나를 돌아보는 과정이 쉽지 않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정렬하고 그것을 상품으로 만들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열정이 없으면 할 수 없다. 만약 이렇게 할 수 없다면 사업을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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