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회사이지 출판사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출판사 대표가 있다. 아르고나인 손호성 대표다. 아르고나인은 2007년 설립돼 14명 직원이 있는 작은 출판사이다. 사업자등록은 출판사로 했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출판사의 모습과 거리가 있다.

일단 펴내는 책부터 흔히 말하는 '책'과 거리가 멀다. 책이라고 하면 지식의 보고이고, 인문사회과학 서적이나 소설을 다루어야 할 것 같은데 아르고나인이 펴내는 책을 보면 퍼즐책과 유아용 놀이책, 명언집 등으로 꾸려졌다. 대체로 책장에 꽂아 몇 년, 몇 십년을 두고 볼 책으로 보기 어렵다. 손호성 대표도 그 점은 동의한다. "아르고나인은 쓰고 버리는 책을 만들려고 만들었습니다." 출판사 사장님이 할 말은 아닌 것 같다.

손호성 아르고나인 대표
▲ 손호성 아르고나인 대표

▲손호성 아르고나인 대표(사진: 아르고나인)


손호성 대표는 아르고나인을 꾸리기 전, 플래시 개발자로 활동했다. 국내에 플래시가 알려질 무렵 재빠르게 기술을 익혀 플래시 강사 양성소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 그리고 플래시를 바탕으로 외주 용역을 맡는 회사에서 일하며, 윈도우 플래시 개발이나 플래시를 활용한 서비스의 솔루션 개발을 맡았다. 하청에 재하청을 수주하는 업체였다.

특이한 이력이 하나 더 있다. 손호성 대표는 가로·세로 9개 칸에 알맞는 숫자를 채워넣는 퍼즐, '스도쿠' 전문가이기도 하다. 일간지나 스포츠 신문에 있는 퍼즐란에 스도쿠를 연재했는데 아예 스도쿠 전문 책을 만들고 싶어 출판사를 차렸다.

IT DNA를 가진 대표가 있어서일까. 아르고나인은 퍼즐책을 제작할 때, 편집과 디자인은 인디자인과 결합한 자체 프로그램이 대신한다. 사람이 손으로 퍼즐을 만들면 오류가 있거나 해답을 잘못 만들 수 있지만, 컴퓨터는 실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퍼즐책의 편집 디자인은 페이지마다 비슷하니 프로그램을 돌리면 30분만에 책 한 권을 뚝딱 만든다. 이런 모습은 사내에 개발자를 두었기에 가능해 보인다.

온라인 마케팅을 자동화하는 방법도 직접 마련했다. 아르고나인은 '오토트윗'이라는 서비스를 만들었는데 트위터 계정 관리를 전담할 직원을 두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용하게 쓰고 있다. 이 서비스를 통해 트위터 메시지를 몇 분 간격으로 발송할지, 그리고 발송할 메시지를 미리 등록해 자동으로 트위터 메시지를 작성한다. 일종의 트윗봇인 셈이다.

아르고나인은 14명 직원 중 대표를 포함해 3명이 개발자다. 이들은 간혹 외부 용역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아르고나인의 아이디어를 모바일이나 온라인으로 옮길 방법을 고민한다.

"책이란 게 고정관념 없이 만들 수도 있습니다. '악당의 명언'이라는 책은 디자인이 화려한데요. 이렇게 편집을 화려하게 해 누구나 책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간단한 앱으로 만들어 내놓을 수도 있습니다. '루디's 커피의 세계'처럼 책으로 먼저 내놓고 모바일 앱으로 내놓을 수도 있고요."

이 외에도 아르고나인은 카메라 앱을 유료로 출시했다. 이 앱은 이용자가 사진을 찍으면 간단한 편집작업으로 얼굴을 우스꽝스럽게 만들 수 있다. '수염마니아'라는 앱은 얼굴 사진을 찍고서 만화 캐릭터로 꾸미거나 수염을 입힐 수 있는데, 비슷한 기능을 완구로 만들었다.

아르고나인 모바일앱
▲ 아르고나인 모바일앱

▲아르고나인 모바일앱 루디's 카페와 수염마니아


이렇게 책 이외의 형태로 다양한 수익 모델을 시도하지만, 매출이 이목을 끌 만큼 높진 않다. 지난해 매출 18억원 중 약 2.8%를 전자책이나 모바일 앱 등으로 벌어들였고, 외부 용역을 통한 매출까지 더해도 IT 카테고리 비중은 6~7% 수준이다. 그래도 손호성 대표는 디지털쪽 시도를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수염마니아 앱은 지금까지 10만명이 내려받았습니다. 그 중에는 외국 이용자도 있고, 잠시 유료로 판매할 때도 팔렸어요. 사실 출판사가 10만명의 독자를 만드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앱으로 전세계 독자를 만날 수 있게 되지 않나요. 이 앱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양한 상품과 결합할 토대를 만든 셈입니다."

아르고나인이 국경과 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을 방도로 고민하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e쇼핑몰이다. 손호성 대표는 아르고나인이 만들 e쇼핑몰의 장래가 예스24나 인터파크, G마켓은 아니라고 말한다. 독립쇼핑몰이되, 텀블벅이나 굿펀딩과 같은 소셜펀딩 사이트와 연결된 모습이다.

"작은 출판사일수록 직접 거래할 부분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출판의 미래는 독자와 직접 만나고 독자에게 가치를 직접 주는 데 있습니다. 아르고나인이 문구와 완구쪽을 공략하는 게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업의 사내 교육을 위한 문구나 대시보드를 온·오프라인 상품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기업이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활용할 방법을 책으로 출간하는 데서 나아가 현실에서 사용할만한 도구와 서비스를 내놓겠다는 이야기다. 마치 시간관리법 '뽀모도로 테크닉'과 소품, 교육 프로그램으로 활용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아르고나인이 이미 사내에서 그룹웨어를 비롯한 다양한 온·오프라인 시도를 하고 있으니, 37시그널스 창업자가 회사를 경영한 경험을 으로 낸 것과 유사한 사례로도 볼 수 있겠다. 37시그널스는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곳이다.

사실 손호성 대표의 생각이나 아르고나인의 계획이 유독 특이한 건 아니다. 아이들의 대통령 '뽀로로'나 '미키마우스'를 만든 아이코닉스와 디즈니는 공략 대상이 어릴 뿐,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해 다양한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이들 회사는 문구, 완구, 모바일 앱, 도서 등 다양한 수익 모델을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회사 또는, 문구사, 완구사로 부르기 애매한 회사이다.

아르고나인은 지금 판매하는 가계부와 다이어트 수첩을 모바일 서비스로 확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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