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이야기


2001년 미래학자 제레미 러프킨이 ‘소유의 종말’이란 책을 냈을 때, 사람들은 이제 접속이 소유보다 더 적은 비용이 들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이 주도적이 되는 삶이 등장한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러나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는 그 뒤에 있다. 소유 → 접속으로 사회가 이동한다는 이야기는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그 접속하는 권리를 쥐고 있는 사람들(gatekeepers)이 있냐, 없냐, 그리고 누구냐에 따라서 사회의 권력 구조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2002. 실제로 그런 미래사회의 문제가 오늘의 현실로 등장한 사건이 등장했다. 1998년에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 법안(Copyright Term Extension Act)이 나왔을 때, 이 법안은 일시적이고 배타적으로 보호받는 재산권인 저작권이 거의 영구적으로 보호받게 만드는 효과로 악명을 떨쳤다. (흔히들 ‘미키마우스 악법’이라고 부른다. 저작권이 끝난 작품들의 목록인 공적 영역에 있는 백설공주와 같은 재료를 이용해 창작물을 만든 디즈니가 자신의 작품은 새로운 창작물의 재료가 되는 것을 법적으로 차단하는 데 있어 이번 법안을 통해 앞장섰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 법안은 기존에 개인 저작자의 경우로 봤을 땐 저작자의 생애 + 50년으로 보호받던 저작권을 저작자의 생애 + 70년으로 20년 더 연장시켰고, 특별히 기업 저작자의 경우에는 저작자의 생애 + 75년에서 저작자의 생애 + 120년으로 (저작물 저작 시기 기준) 획기적으로 연장시켰다.


이는 저작물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먹고 사는 문화산업 등 기존 이해관계자의 입장에서 보면 좋은 일이다. 자신들의 수익원이 더 안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과 대다수의 시민들에겐 좋은 소식이 아니다. 보호 측면에서만 강화된 저작권은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의 책임만 무거워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있어서도 인터넷의 가장 기본적인 사용 가치인 ‘창작과 공유’를 하는 법적, 제도적 비용이 증가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정치적, 문화적 권리에 기초한 표현의 자유, 헌법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을 보고 당시 스탠포드 로스쿨 교수였던 로렌스 레식을 중심으로 해당 법안에 대한 항소가 행해졌다. 그러나 2002년에 나온 결과는 패소였다. 레식은 이에 포기하지 않고, 기존 저작권은 인정하되 저작권이 창조와 공유의 비용을 증가시키는 현실을 뒤짚고, 저작권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의 영역을 확장하고자, 크리에이티 커먼즈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 이하 ‘CCL’)라는 것을 MIT 컴퓨터공학과의 할 애벌슨 등과 힘을 합쳐 만든다. 저작권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의 갈등을 법이 아니라 문화로, 기술 발전과 함께 권리 발전을 인정하는 자유문화로 풀려한 것이다.


CCL
▲ CCL


(아마도 적어도, 한번즘은 인터넷에서 동영상 공유 사이트나 블로그에 자기 콘텐츠을 올리다가 위와 같은 저작권 권리 사용을 설정하라는 항목을 발견한 적이 있을텐데, 그것이 CCL이다. 국내에는 2005년에 들어왔고, 2007년 관련 공익 법인이 설립됐다. 이렇게 국내에서 CCL의 확산과 CCL을 기반으로 한 자유문화의 확장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의 이름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다. 보통 CC Korea라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의 이야기


현재 CCL은 전세계 70여개 국가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물론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사용되는 GPL (General Public License) 등에서 영감을 받은 CCL이 직관적으로 사용하기 편하고, 국제적 표준으로서 공신력을 초기부터 얻은 까닭도 있다. 그러나 좋은 도구가 있다고 그것이 사회적 움직임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커져가는 까닭은, 도구를 넘어서 이 CCL의 정신을 깊이 이해하고, 그것의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평일엔 벤처회사 CIZION에서 전략매니저로 일하고 주말엔 글을 쓰는 삶을 바람에 시간이 극히 부족한 데도 지난 2012426일 금요일 난 마카오과기대학(MUST)에서 열린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와 저작권 보호에 관련된 국제 컨퍼런스’에 참석한 이유도 나 역시 그같은 창작 공유지를 지지하는 활동가이기 때문이며, 그것이 나에게 중요한 삶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으로 이런 일을 더 많이 하고, 잘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같은 뜻을 품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사는 마카오에서 열리는 바람에 주로 중국 대륙, 홍콩, 마카오, 대만에서 온 사람들이 참석했다. 나와 포르투칼에서 온 지적 재산권 관련 일을 하는 변호사 테레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소위 중화권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발표는 최근에 지역화(localization)에 초점을 맞춘 초안이 발표된 CCL 4.0의 적용과 활용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외는 실제적으로 각 지역에서 어떻게 CCL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는지 이야기가 오갔다.


나 역시 발표자 중 한명으로 참여하긴 했다. 그러나 대개의 컨퍼런스가 그렇듯 그런 발표가 핵심은 아니었다. 이런 실제로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주로 모인 컨퍼런스에서 발표의 목적이란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 지 알리고,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기 위한 것이다.


실제로 내가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서 배운 가장 큰 것은 법적 지식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었다. 다른 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어떤 조건속에서, 어떤 고민을 하며,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배웠다. 그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마카오에서 만난 3인의 CC,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여기 적는다.



(1) 레식의 제자, 리쯔안 교수


행사 전날 같이 마카오 시내 투어를 하면서 급하게 친해진 국립대만정치대 리쯔안 교수(전체적인 느낌이 CC Korea의 프로젝트 리드인 윤종수 판사님과 비슷했다.)CC Taiwan의 법분야 리드(legal lead)를 맡고 있다. 그는 국립대만대 법학과를 졸업해서 잠시 변호사로 일한 후, 하버드에서 법학 석사, 스탠포드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앞서 소개한 로렌스 레식의 제자다. 그는 촹팅뤼 박사와 같은 다른 대만인들과 함께 2003년에 (CCL이 공개된 지 불과 1년만이다.) 대만에 CCL이 도입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대만은 내년이면 CCL 도입 10주년을 맞는다.


리쯔안
▲ 리쯔안


(리쯔안 교수의 발표 사진)


리쯔안 교수의 발표를 듣고, 그리고 발표 전후로 대화를 나누면서 더 잘 알게된 두 가지 사실은 첫째로, 대만 CCL 확산은 리눅스 등의 기존 오픈소스 관련 커뮤니티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점이다. 본래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오픈소스 확산을 주도하고, GPL 사용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콘텐츠 영역에서 CCL을 발견하고, CCL이 발전하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CC Taiwan의 대외적 얼굴 역할을 하는 퍼블릭 리드(public lead)를 맡고 있는 황팅뤼 박사는 대만 자유/오픈소프트웨어 발전에도 많은 일을 한 인물이다.(국내에서는 오픈소스 커뮤니티와 CC Korea가 독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실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로 영역이 다르기도 하니, 이것은 CC Taiwan의 특수한 상황으로 보는 게 정확할 것 같다.)


두번째는 CC Taiwan은 그동안 엔터테인먼트, 문화 영역에서 CCL을 적용한 도서 출판, 음반 제작 등을 하는 일에 역할을 해 왔고, 최근에는 CC Korea와 마찬가지로 공적 영역에서 중앙정부, 지자체와 협력하여 CCL을 정부 데이터에 적용해 행정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CC Taiwan은 대만 총통실에서 지원금을 받아 총통실 자료를 CCL을 사용하여 대중에 공개하고, 대중이 자유롭게 그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CC Korea도 최근 정부 2.0과 관련된 두권의 책을 번역 출간했고, 서울시청 등과 정부 2.0과 관련된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2) 홍콩 인터넷의 아버지, 왕핀다 회장


리쯔안 교수와 함께 행사에서 만난 인상깊었던 인물 중 하나는 홍콩 인터넷의 아버지, 왕핀다였다. (광동어 발음으로는 왕에 가깝게 발음이 되지만, 그의 성은 한국어로 읽었을 때는 황이다.) 임페리얼 공대를 나와서 일찍이 기업가의 길을 걸은 그는 아시아 & 태평양 인터넷 협회의 회장이자, 시스코(Cisco)의 인터넷 프로토콜 저널의 편집자문위원이기도 하다. 인터넷의 뿌리라 할 수 있는 도메인 주소를 나눠주는 아이칸(ICANN)의 이사진 중 한명이라는 점만 봐도 그가 이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얼마나 지속적으로 해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왕핀다
▲ 왕핀다


(왕핀다 회장의 발표 사진)



엔지니어이자 기업가 정신과 사회적 책임이 강하고, 미국만을 추종하지 않고, 끓임없이 홍콩만이 가야 할 길을 찾으려는 모습에서 많은 부분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 전길남 교수님을 연상시키는 그는 CCL의 가장 큰 과제는 “어떻게 CCL로 돈을 벌 수 있게 해줄 수 있느냐”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픈소스가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까둔 까닭은 리눅스가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모델이라는 점이란 걸 생각할 때 이는 틀린 지적이 아니었다. CCL이 대중적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CCL로도 많은 돈을 버는 다수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그런 통찰보다 더 인상깊은 점은 그의 CCL에 대한 이해와 실행력이었다. 그가 정의하는 CCL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기업을 일으킬 수 있도록 만드는 도구다. 기존 지적재산권 체제 내에서는 저작권을 갖고 있는 콘텐츠를 활용하여 새로운 사업을 하는 데 드는 비용이 방대하다. 저작자를 찾아야 하고, 허락을 받아야 하고, 필요한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이 드는 것은 둘째치고, 그런 지리한 과정 자체가 기업가를 낙담시킨다. 그는 사전에 저작권 사용을 설정하고, 이후에는 허락없이 저작물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CCL이 이런 과정을 간소화하여 기업 활동을 도울 수 있다고 봤다. 나아가, 현재 저작권부터 특허에 이르기까지 지적재산권을 공격용 목적으로 사용하여 법과 제도가 혁신을 촉진하기보다는 저하시키는 경우도 많은데 그는 CCL이 그런 불필요한 싸움은 피하고 서로가 더 생산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실제 그런 현실을 앞당기기 위해 지난 3년동안 그가 고민하고 주목하고 있는 건 영국에서 이안 하그리브스 교수의 안을 중심으로 올해 하반기에 통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적재산권 거래소(IP trading system)이다. 기업이 기업 평가를 받고 상장이 되듯이, 그는 아이디어도, 콘텐츠도, CCL의 저작자 표시(attribution)을 활용한 객관적 평가 과정을 통해 상장을 시키고, 거래를 시켜서,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려는 시도다. 게임을 바꾸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거래소가 영국에서 본격화되기 전에 본래 금융 부분에 강점을 갖고 있는 홍콩에 세워서, 모든 홍콩 젊은이들이 아이디어만 있으면, 비용 제로로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애쓰고 있다. 4분기가 되기 전까지 금융권과 협력해 그런 비전을 구체적 법안으로 만들고, 홍콩정부를 설득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국내에서도 이민화 교수님에 의해서 한국기술거래소가 설립된 바 있다. 기술보다 아이디어의 활용 범위가 더 넓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런 비전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실현할 필요가 있는 안으로 생각이 됐다. 그런 부분과 함께 인터넷과 CCL을 디딤돌로 한 더 다양하고, 창의적인 다음 사회에 대해서 더 대화를 해보고 싶어서 왕핀다 회장과 점심 시간을 이용해 식사를 같이 했다. 놀랍게도 왕핀다 회장이 전길남 교수님, 허진호 회장님도 알고 계셔서 그분들이 한국과 아시아 인터넷 발전에 남긴 업적에 대해서도 같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후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는 지적재산권 거래소를 비롯한 아이디어를 실현해 개인 기업(personal corporation)을 만들 수 있는 비용을 낮춰서, 청년들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를 실제 행동으로 만들어보고자 의기투합했다.



(3) 포르투칼에서 온 변호사, 테레사


해당 컨퍼런스에서 나와 함께 유일하게 중화권 인물이 아니었던 테레사는 독일의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지적재산권 관련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재원이다. 그녀는 지적재산권 관련 변호사이긴 하지만, 포르투칼의 한 대학에서 OER(교육 자료 개방)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현행 저작권법이 저작권 보호의 예외 영역인 공적 이용(fair use)을 교육 목적에서도 너무 협소하게 정의해 놓아서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교육을 실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아지는 데도, 그런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것이 그녀가 CCL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테레사
▲ 테레사


(테레사의 발표 사진)


나 역시 CCL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7년부터 고려대에서 MIT OCW(공개교육운동)을 도입하기 위해 활동하면서부터였다. 교육 자료를 개방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저작권 라이선스가 필요했고, 그것을 위해서 CCL에 관련된 공부를 시작했다. 따라서 테레사의 이야기에 내가 친밀감을 가질 만한 이유는 많았다.


나아가 테레사는 포르투칼 법과 포르투칼 법에 기초한 마카오 법을 바꿔서, 적어도 교육 부분에서는 공적 이용이 더 폭넓게 적용될 수 있도록 입법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는데, 그런 목표에 대해서도 나또한 공감하는 것이 많았다. 미국 상황을 봐도 저작권의 보다 자유로운 이용을 위해 CCL을 보급하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재단이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 기존 사회 시스템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오픈 인터넷을 지킬 수 있는 건 아니다. EFF(전기혁신재단)와 같은 소송과 입법을 담당하는 공익 단체들이 있어서 그들이 필요하면 시민들을 조직해, 의회를 움직여서, 기술의 발전이 사회의 발전과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 때문에, 지금의 균형점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현재 테레사는 CCL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이젠 그런 공익단체를 설립하기 위해 주로 교육영역에서 다른 사람들, 단체들을 만나면서 정치적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인터넷이란 좁은 틀에서 벗어나서 노동운동, 환경운동과 마찬가지로 좀더 쉽고, 자유롭게 정보를 쓰는 것도 당연한 권리이자, 주권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제2차 산업혁명인 지금의 정보혁명이 이용자 권리는 도외시한 채, 산업들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대표성이 없는 곳에는 민주주의도 없고, 판을 새롭게 짜고, 더 키울 수 있는 지속적인 파괴적 혁신도 없다. 그렇다면, 그런 대표성을 신장시킬 수 있는 현실적 방법들을 만들어가야 한다. 테레사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더 깊이 만들었다. 처음 만난 사람이고, 태평양을 건너서 온 사람이지만, 고민하고 있는 주제가 비슷하다 보니 매우 쉽게 친구가 됐다.





다음 과제는 더 많은, 더 즐거운 실천이다


김재연
▲ 김재연


(필자의 발표 사진)


마카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직항 비행기의 출발 시간은 새벽 2시였다. 컨퍼런스 주최측, 참가자들과 식사를 마치고, 테레사 및 현지에서 사귄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저작권 관련 이야기를 하다가 잠잘 틈도 없이 공항으로 가서 탑승 수속을 마쳤다. 공항 대기실에 앉아서 컨퍼런스에서 내가 무엇을 배웠는가를 생각해보았다.


답은 분명했다. 다음 과제는 행동이다. 리쯔안, 왕핀다, 테레사, 마카오에서 만난 3인의 CC인에게서 내가 배운 것, 그리고 지난 삶에서 내가 배운 것은 말만 하는 사람들은 별로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리쯔안이 한 것처럼, 국내 CCL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를 넓히고, 그러면서도 그 과정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왕핀다처럼 지역에 맞게, 현실에 맞게 CC를 발전시킬 수 있는 구체적 방법들을 찾고, 그걸 로드맵을 만들어서 실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테레사처럼 일단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부터 시작해 조금씩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쉽게, 창작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지식경제의 사회적 비용과 격차를 낮출 수 있도록 싸워야 할 싸움은 싸워야 한다. 그러한 모든 교훈의 키워드는 행동이다.


실제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재단의 CEO이자 현재는 MIT 미디어랩의 디렉터이기도 한 조이 이토는 많은 강연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DNA는 인터넷 기업가 정신이라고 강조하면서, 그것은 “닥치고 해내는 것”(shut up and build up)이라고 역설했다. 학자들은 “논문을 출판하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삶”(publish or perish)라는 원칙으로 살지만, 실제 사회를 바꾸는 원리는 다르다. CCL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좋은 이론을 들고 설명을 해도, 사람들은 감동하지 않고,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나라도 더 만들어내고, 하나라도 더 재미있게, 지속 가능하게, 그러면서도 임팩트 있게 해내야 변화가 현실이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가슴에 새겨온 것이고,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다시 배운 것이다.


물론, 2007년에 MIT OCW를 국내에 런칭하는 프로젝트로 이 바닥을 발을 들인 이래에 행동으로 옮긴다고 당장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충분히 배웠다. CCL이 절대적 최선은 아니며, 이것도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도구이고, 그렇기 때문에 항상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기억해야 하고, CCL을 발판으로 해서 더 많은 도전을 기획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어쨌든 수년전보다 지금은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적어도, 혼자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으며,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이 고민하고, 그리고 더 즐겁게 할 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많은 위대한 일이 그렇듯, 오픈 인터넷을 통해서 지식이 민주화되고, 혁신이 민주화되고, 창조가 민주화된다는 꿈도,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가능해질 것으로, 나는 여전히 믿고, 앞으로도 더욱 함께, 더욱 많이, 더욱 즐겁게 실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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