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U(국제전기통신연합)가 2011년에 내놓은 통계자료를 보면, 전세계 인터넷 이용자수는 34억7천만명이다. 전세계 절반이 넘는 인구가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 사용 환경의 변화도 상전벽해다. 1969년 개발 당시 메인프레임 위주로 구축됐던 네트워크 환경은 개인용 컴퓨터(PC)를 거쳐 이제 모바일, 태블릿 등의 디지털 휴대 기기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산업화에서 뒤졌던 한국이 이러한 정보화의 흐름에서는 선두의 위치를 차지해왔다는 것이다. 1969년에 미국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된 인터넷은 30년전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한국에 도입됐으며, 이렇게 남보다 한발 앞서 인터넷을 들여온 덕분에 한국은 경제발전, 민주화와 함께 정보화의 첫 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울 수 있었다.

전길남
▲ 전길남


<Flickr 이용자 echo4ngel가 촬영한 전길남 교수의 발표 사진. CC BY-SA.>


이것은 인터넷 종주국인 미국이 특별히 한국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인 전길남 카이스트 명예교수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오사카대에서 학부 교육을 받은 그는 당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일본인과는 다른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자각했다. 그 후 조국에 보탬이 되는 것을 목표로 미국 UCLA에 시스템 공학 연구를 하던 중 인터넷을 발견했고, 근대화에 뒤처진 대한민국을 혁신하기 위해 인터넷이 한국에 들어와야 한다고 판단했다. 공학박사 학위 수여 후 그는 귀국하여 1982년 5월 SDN(시스템개발네트워크) 개발에 성공했고, 한국 인터넷 역사의 시작점을 찍었다.

전길남 교수는 인터넷이란 물적 유산뿐 아니라 인터넷을 발전시킬 많은 인재 양성에도 기여했다. 그의 제자는 한국 최초의 인터넷 접속 서비스(ISP) 회사인 아이네트를 설립한 허진호 크레이지피쉬 대표부터 한국 게임 산업의 글로벌 신화인 넥슨의 김정주 회장을 포함한다. 그는 선각자인 동시에 전략가였다. 인터넷이란 물리적 네트워크만 도입해온다고 해서 자동으로 관련 연구나 산업이 발전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 그것을 운영할 수 있는 인력을 키우는 데 힘을 쏟았다. 사실상 이렇게 한국 인터넷의 발전에서 물적, 인적 부분에서 ‘최초’라 할만한 것들 중 전길남 교수의 수고와 영향에서 벗어난 것은 많지 않다. 그는 문자 그대로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다.

이런 전길남 교수의 공헌은 해외에서는 공식 인정을 받는다. 최근 전길남 교수는 인터넷을 국제적으로 대표하며 관련 표준을 정하는 ISOC(인터넷 소사이어티)로부터 인터넷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헌액된 인물들 중에는 리눅스 운영체제를 만든 리누스 토발즈, TCP/IP를 개발한 빈트 서프 같은 IT계의 세계적 리더들이 있다. 언론인인 시루스 파리바가 2011년 출간한 ‘다른 세계의 인터넷’(The Internet of Elsewhere)이란 책에서도 한국의 인터넷 발전 사례를 언급하면서, 전길남 교수의 일대기를 비중 있게 다룬다.

1943년생으로 올해 69세의 고령인 그는 여전히 전세계 인터넷 발전을 위해 애쓴다. 아프리카 등 인터넷 소외지역에 인터넷 인프라를 기술적으로 보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제도적, 문화적 인프라 구축에도 심혈을 쏟고 있다. 개방성, 중립성, 분산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의 가능성뿐 아니라 한계점에도 주목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사회적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경주한다. 우리 사회에서 그는 ‘숨은’ 인터넷의 아버지이며,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영웅이지만, 그는 여전히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알고, 생의 불꽃을 다하고 있다.

근대 사상가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역사상의 모든 위대한 일들은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마치 널빤지를 송곳으로 뚫듯이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했다. 전길남 교수는 그의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삶으로 그 명제를 참으로 증명한 것처럼 보인다. 민족에서 출발하여 인류애로, 기술에서 출발하여 사회로, 교육에서 출발하여 인프라로 문제의식을 옮긴 그는 스스로를 성장시켰고,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한국 인터넷, 한국 사회 발전에 원동력이 됐다.

한국 인터넷 30주년, 이제 한 세대가 지났다. 이젠 그의 유산을 물려받은 우리 다음 세대가 전길남 교수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의 싸움을 이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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