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한 TV광고에 나온 노랫말이다. 이 노랫말은 틀렸다.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아무리 고민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정, 사랑, 지식, 지혜 등은 언어, 이미지, 영상, 몸짓으로 표현해야 알 수 있다. 정보도 마찬가지다.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 곳간에 쌓인 정보는 공개돼야 마땅하다. 그것은 국민이 정부를 감시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니라 국민에게 귀속된 정부의 역할이다. 이렇게 정부가 정보를 공개해 업무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자는 게 '정부2.0'이다.
정부2.0은 '하자'라고 해서 바로 실현되는 것일까. 정부2.0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조건과 제약 사항을 짚기 위해 국내외 민간과 학계, 시민단체 관계자가 5월23일 한자리에 모였다. SBS가 주최한 '서울디지털포럼'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이하 CC코리아)는 '거버먼트2.0의 현재와 미래 / 시민의 참여와 협업을 디자인 해라'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정부2.0이란 단어는 2005년부터 알려진 '웹2.0'이란 단어와 비슷해 보인다. 이 용어는 웹2.0을 주창한 팀 오라일리가 제안한 개념에서 출발했다. 정부는 정보를 공개하고 플랫폼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뜻이다. 신선한 이야기 같지만, 니콜라스 그루언 호주 정부2.0 TF 의장은 "정부는 예전부터 그런 역할을 했다"라며 새로울 것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그가 '논의할 필요가 없다'라는 게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라는 뜻에서 이 말을 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자.
플랫폼으로서 정부란, 국민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얻거나 만들도록 판을 벌이고 재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보자. 아이폰이 국내에 출시되고 주목을 받은 응용프로그램(앱) 중 '서울버스'라는 앱이 있다. 이 앱은 버스 정류장 위치와 버스의 실시간 위치, 도착 시간 등을 아주 간단하게 보여줬다. 여기에 사용된 정보는 서울시와 경기도가 무료로 웹에 공개한 정보였다.
정부가 할 일은 '서울버스'와 같은 앱을 직접 만드는 게 아니라,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다 만들 재료와 도구, 즉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다. 그것도 누구나 가져다 쓰기 쉽게. 이 정보로 어떤 앱이나 서비스를 만들 지는 민간 개발 영역의 몫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물론 사용자 몫이고. 이 과정에서 정부는 '심판' 역할만 잘 하면 된다. 이것이 정부2.0에서 말하는 정부의 역할이다.
정보를 공개한다고 정부2.0이 완성되는 것일까. 니콜라스 그루언은 "매우 많은 정보가 존재하는 이 시대에는 표준이 중요한데 정부가 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라며 "(표준화되지 않으면) 정보가 공유될 때 효율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된다"라고 표준을 강조했다. 정보의 표준은 다양한 의미에서 해석될 수 있다. 공공문서의 규격이 일정한 것처럼 일종의 틀을 의미할 수도 있고, 조금 더 자세하게 정보의 단위를 부처간 일치할 수도 있다.
표준화된 정보가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Seoul A to Z' 프로젝트는 서울시가 공개한 '구별 에너지 사용량', '공공 화장실 위치', '구별 가구당 사교육비 지출 비중' 등의 정보를 인포그래픽처럼 지도에 그렸다. 이 작업은 소원영 CC코리아 활동가가 맡았는데 정보마다 동별 혹은 구별로 다르거나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해가 있어 군데군데 정보를 빠뜨렸다. 그는 "서울시에서 정보는 오픈했지만, 지역 코드가 달라 한데 모으는 데 애를 먹었다"라고 제작시 어려움을 이날 행사장에서 발표했다.
우리 정부는 1999년부터 8천억원을 들여 '국가DB' 사업을 진행했는데 모든 정보가 제각각이라면 쓸모 있는 정보로 가공하는 데서부터 국민이나 시민단체, 정부 부처는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이쯤에서 의문이 하나 든다. 그렇다면 정부는 정보를 공개하기 위해 정보를 가공하는 일부터 해야 하는 것인가. 팀 오라일리는 정부가 공개하는 정보가 대단할 필요는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미국 포틀랜드시는 단순한 파일포맷으로 공공 교통수단에 대한 정보를 공개했는데 애플리케이션 제조사가 그 정보를 가지고 앱을 개발했다"라며 "굉장히 작은 발자국이었지만, 유익한 데이터가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됐다"라고 말했다. 일단 아주 사소한 정보부터 공개하면 정보의 표준화는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보의 단위가 세밀하면 세밀할수록 그것을 모아 가공된 정보가 만들어지고, 또 한 차례 가공되며 정보의 가치는 커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표준화 작업이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일단 전제는 작은 정보부터 공개돼야 한다는 점이다.
정보를 공개할 때 정부가 먼저 '이 정보가 쓸모 있나'를 판단할 필요는 없다. 정부가 가진 정보의 규모와 가짓수는 국민은 잘 모른다. 일단 공개가 돼야 사용처를 구상할 수 있고, 찾아보게 된다. 이 일은 정부에 번거로운 잡무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의심을 두고 제임스 가드너 전 영국 노동연금부 CTO는 "토니 블레어가 수상으로 있을 때 정보 관련법이 통과됐는데 그는 자서전에서 '제일 바보같은 법'이라고 평가했다"라며 "하지만 그 법은 정부의 투명성 제고 측면에서 도움이 됐다"라고 말했다. 정부2.0이 품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정부의 투명성을 높인다'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디지털 네이티브'와 '매크로 위키 노믹스' 저자 돈 탭스콧은 "장관이 뭘 먹었느냐부터 시작해 정보는 공개돼야 한다"라며 제임스 가드너를 거들며 "정부가 가진 정보는 당연히 공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부2.0을 실천하는 데 있어 우리 정부의 어려움도 있는 모양이다. 윤성천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 산업과 과장은 "공공저작물이 민간에 쉽게 개방돼야 하는데 혹시라도 그 안에 다른 사람의 저작권이 포함됐으면 문제의 소지가 있다"라며 "공공저작물포럼을 만들고 KOGL이라는 개방형 저작권 규약을 만들었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공무원이 가지는 부담이 크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최진원 박사는 "통계청도 과거 통계 정보를 개방할 때 통계저작물에 관해 내게 물어온 일이 있는데, 독일이나 일본은 공무원이 작성하고 공지를 위해 만든 자료는 저작권 보호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이야기가 있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은 정부2.0의 걸림돌인 걸까. 전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회사에서 어떤 생산물을 두고 그 저작권을 회사가 갖지 직원에게 주지 않는다"라며 "공직자는 세금으로 급여를 받아 국민에게 위탁받은 업무를 하는 사람인데, 그 저작권은 시민에게 있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정부2.0을 실천하는 데에 우리나라 정부는 저작권 문제부터 해결한다는 이야기에 팀 오라일리는 이러한 예를 들었다. "기업은 혁신을 하기 위해 아예 저작권을 포기하고 있다. IBM은 4억달러에 달하는 소프트웨어를 리눅스에 제공했고, 제약회사들은 지적재산권을 공개해 자기들의 연구 실패 내용도 공개한다. 음반산업은 저작권법을 바꿔가며 죽어가는 음반산업 모델을 붙들고 있다."
이날 진행된 토론회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크리에이티브커먼즈 코리아 웹사이트에 사진과 함께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