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으로 읽어볼까'라고 마음먹고 가장 먼저 드는 고민이 있다. '어디에서 사지?'. 가격 때문에 하는 고민이 아니다. 할인 이벤트를 하는 게 아니면 국내 전자책 서점은 대체로 책값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고민은 어떤 서점의 뷰어로 봐야 하는 지에 대한 거다. 종이로 된 책은 어느 서점에서 사도 읽는 데 문제 될 건 없지만, 전자책은 다르다. 내 마음에 드는 전자책 뷰어가 아니라, 해당 책을 파는 서점 뷰어로 읽어야 한다.

이유를 따지자면 디지털저작권관리(DRM)를 서점마다 다른 걸 쓰고 서점마다 전자책 파일 형식을 다르게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애플과 아마존은 이미 각자 파일 포맷을 내세우고, EPUB 파일을 공통으로 쓰는 서점도 DRM을 달리하는데 독자 한 사람이 '이건 나에게 불편해'라고 하소연해봤자 소용없다.

불평은 그만하고 독자에게 조금 더 친절한 서점은 없을까. 서점 대신 출판사를 찾았다. 이런 시도는 저작권자가 아닌 서점보다 출판사가 하기 더 수월하리라.

도서출판 인사이트 전자책 웹사이트
▲ 도서출판 인사이트 전자책 웹사이트

▲도서출판 인사이트가 현재 판매하는 PDF 전자책


국내 출판사 중 도서출판 인사이트는 올 4월18일부터 책을 PDF 파일로 만들어 DRM 없이 판매하기 시작했다. 판매처는 우리가 아는 온라인 서점이나 전자책 전문 서점이 아니라 도서출판 인사이트가 마련한 웹사이트(http://ebook.insightbook.co.kr)다.

DRM이 없으니 독자는 원하는 방법으로,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다. 도서출판 인사이트에서 전자책을 산 독자는 PC에서 아크로뱃리더로 읽거나, PC혹은 태블릿PC, 스마트폰용으로 나온 전자책 뷰어 응용프로그램(앱) 중 마음에 드는 앱으로 읽는 게 가능하다.

이렇게 책을 판 지 3개월이 되어 간다. 도서출판 인사이트의 전자책 판매 웹사이트는 2권으로 시작해 지금은 8권이 올라왔다. 주로 컴퓨터 개발 언어와 프로그램 개발 등에 대한 책이지만, '시간을 요리하는 뽀모도로 테크닉'과 같이 쉽게 읽히는 책도 있다.

도서출판 인사이트가 DRM 없이 전자책을 판매해 반갑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판매하는 전자책 파일이 PDF 파일만 있고, 결제는 무통장입금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승호 도서출판 인사이트 편집자는 "조만간 신용카드 결제도 지원하고 EPUB 파일로 제작해 올리는 것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오라일리미디어 전자책 드롭박스 동기화
▲ 오라일리미디어 전자책 드롭박스 동기화

▲오라일리미디어, 전자책을 사면 드롭박스로 동기화하는 서비스 안내 광고


미국 쪽에선 오라일리미디어가 DRM 없이 전자책을 파는 곳으로 유명하다. 오라일리미디어는 기술 서적을 전문으로 출간하는 곳인데 책 한 종을 종이책과 EPUB, MOBI, PDF, DAISY 등 다양한 파일로 판매한다. 독자가 자기 독서 환경에 맞는 전자책 파일 형식을 선택해 살 수 있는 셈이다. 책 한 권 때문에 안 쓰던 뷰어를 써야하거나, 없던 단말기를 새로 사야할 필요가 없다.

그러다 오라일리미디어는 최근 재미있는 시도를 시작했다. 전자책을 사면 클라우드 스토리지 서비스 '드롭박스'로 자동으로 동기화하는 서비스를 내놨다. 독자는 오라일리미디어에서 전자책을 사고 PC에 내려받아 뷰어로 옮기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읽고 싶은 책을 사고, 드롭박스 계정을 오라일리미디어 웹사이트 회원 정보에 미리 등록해 뒀으면 아이폰, 아이패드, 갤럭시S3, 블랙베리 등 드롭박스 앱을 깐 기기로 전자책이 곧장 들어온다. 물론, PC 앱과 드롭박스 웹사이트에서도 읽을 수 있다. 드롭박스는 윈도우PC와 맥, 리눅스,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블랙베리 앱을 서비스하고 있다.

전자책 파일을 독자가 이리저리 옮길 필요 없게 한 오라일리미디어의 시도는 국내 출판사들의 흥미를 끈 모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판사는 "우리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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