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모바일 운영체제인 iOS와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의 생태계에 큰 변화를 가져온 것 중에 가장 큰 것으로 애플리케이션 유통 채널을 들 수 있다. 지금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아이튠즈 앱스토어와 구글 플레이, T스토어 등에서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PDA, 스마트폰 앱은 사용자가 직접 구해서 깔아야 했다.

잠깐 옛날 이야기를 하자면 아이폰 이전까지의 스마트폰 시장은 윈도우 모바일, 블랙베리, 팜OS 등의 운영체제들이 휩쓸고 있었다. 이 OS들은 대체로 PC에서 하던 작업들의 일부를 모바일로 가져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애플리케이션 유통 역시 PC와 마찬가지로 직접 패키지를 구입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거창하게 패키지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각 개발사의 웹사이트에 접속해 신용카드나 페이팔로 결제하고 앱 설치 파일과 등록키를 받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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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store01

윈도우 PC용 프로그램을 구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이상할 것도 없지만 이런 애플리케이션 유통 구조는 스마트폰의 장벽 중 하나였다. 아는 사람만 아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구입해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골목 안 구석에 자리잡은 맛집의 어떤 메뉴가 맛있기는 하지만 아는 사람만 가서 먹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불편 때문에 일부 사이트들이 앱 유통에 나서기도 했다. 주요 앱들을 소개하고 사이트 내에서 직접 내려받거나 개발자 사이트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링크와 결제 장치를 제공했다. 스마트폰 전문 사이트로 이름 날리고 있는 포켓나우(http://pocketnow.com)도 사실 초기에는 윈도우 CE 포켓PC의 애플리케이션을 유통하던 사이트였다. 이러던 시장에 애플이 아이폰, iOS를 내놓으면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애플리케이션을 구입할 수 있는 마켓을 운영체제 업체가 직접 스마트폰 안에 집어 넣은 것이다.

애플, '앱도 아이튠즈 콘텐츠 중 일부'

앱스토어를 따지고 보면 지극히 애플다운 유통 방법의 한 흐름일 뿐이다. 초기 아이튠즈는 그저 수많은 음악 다운로드 사이트 중 하나인 것처럼 보였지만 점차 규모가 커지고 음악을 구입하고 다운로드받는 구조에 익숙해지자 영화 콘텐츠, TV드라마 등으로 시장을 넓혔다. 자연스레 아이팟도 동영상을 재생하도록 발전해 왔다. iOS용 앱스토어도 이런 애플 디바이스의 발전과 흐름을 같이 하는 요소 중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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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le_itunes

단말기가 무선랜(WiFi)나 3G 등 인터넷에 연결될 수 있는 조건을 갖췄으니 앱을 PC나 단말기에서 직접 구입하고 그 결제와 구입내역 관리 등은 애플이 대신 해준다. 음악 콘텐츠를 유통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셈이다. 앱스토어는 결국 스마트폰에 깊은 지식이 없는 이들도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검색하고 구입해 설치하는 데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해주었다. 또한 애플리케이션 개발사로서도 앱을 만들기만 하면 이후에 유통, 판매, 마케팅 등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판매가 늘어나니 자연히 앱 개발의 생태계가 생겨났고 아이폰이 그 어떤 플랫폼에 비해 빠르게 양질의 애플리케이션을 갖게 된 배경이 됐다.

애플은 이후에도 마켓을 계속 확장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아이패드를 발표하며 전자책 유통에 욕심을 부리기 시작해 아이북스(iBooks)를 꺼내놨고 교육 콘텐츠 플랫폼으로서의 아이튠즈U도 운영한다. 지난해에는 앱스토어에 올라오는 디지털 매거진들을 묶어서 보여주는 ‘뉴스 가판대’를 운영체제단에 도입하는 등 모든 디지털 콘텐츠 유통의 키를 쥐고 있다. 또한 이런 애플리케이션 유통 구조를 맥에도 도입해 그 동안 패키지로 구입해 오던 각종 애플리케이션들을 아이폰처럼 앱스토어에서 손에 넣을 수 있게 했다. 또한 곧 출시를 앞둔 iOS6에서는 인터넷 라디오 역할을 하는 팟캐스트를 별도 서비스로 꺼내 서비스할 계획이다.

이제 애플의 단말기는 아이튠즈, 앱스토어를 통해 집중되는 구조다. 애플리케이션부터 디지털 콘텐츠까지 모두 한 곳에서 유통된다. 다른 창구는 없다. 애플은 심지어 OSX 운영체제까지 오프라인 판매를 끊었을 정도다. 약간 과장하자면 맥북부터 아이폰, 아이패드는 아이튠즈 유통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한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구글, '콘텐츠 유통의 다각화로 발전'

구글도 콘텐츠 유통에 누구보다 큰 관심을 갖고 있는 회사다. 아이폰에 맞서기 위해 등장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역시 구글이 직접 운영하는 ‘마켓’이라는 애플리케이션 유통 채널을 열었다. 앱을 구입하고 내려받을 수 있는 창구로서의 역할로는 아이폰의 앱스토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안드로이드는 오픈소스와 개방성을 첫째로 두고 있는 운영체제인 만큼 유통을 강제로 일원화하지는 않는다. 누구든 원하면 앱 유통 채널을 만들 수 있게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구글의 마켓인 구글 플레이보다 SK텔레콤이 운영하는 T스토어의 비중이 더 높고 KT, LG유플러스 등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구도는 이런 환경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용자로서는 더 편한 마켓을 이용하면 된다. 현재 구글 플레이에서 앱을 구입하면 해외 결제가 이뤄지면서 별도의 수수료가 붙는 경우가 생기지만 T스토어를 이용하면 원화로 결제되는 것은 물론 신용카드 외에 휴대폰 요금에서 빠져나가게 하는 등 각 국가, 이용환경에 따라 더 편리한 요소를 가져갈 수도 있다.

하지만 구글도 콘텐츠 사업에 대한 욕심이 없지 않다. 올 초 마켓의 이름을 구글 플레이로 바꾸면서 통제권 강화를 예고했고 6월 열린 구글 I/O에서 콘텐츠의 클라우드를 강조하며 구글 플레이의 역할을 확장한다고 발표했다. 애플과 마찬가지로 영화, 드라마, 음악, 전자책 등 콘텐츠를 직접 유통하기로 한 것이다. 이런 콘텐츠들을 더 잘 활용할 수 있도록 7인치 태블릿 ‘넥서스7’을 내놨고 TV에서 콘텐츠를 나누는 ‘넥서스Q’도 꺼내 들었다. 애플이 멀티미디어 콘텐츠에서 앱으로 발전해 왔다면 안드로이드는 반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T스토어 등에서도 현재 음악, 영화 등의 콘텐츠를 판매중이고 구글이 아직까지는 별도 마켓을 제한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시장의 다각화라는 측면은 지속적으로 유지되겠지만 세계적으로는 모든 콘텐츠가 구글의 마켓으로 서서히 집중되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구글 역시 콘텐츠 소비 플랫폼으로서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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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xus7

안드로이드의 다양한 마켓으로 인한 파편화는 앱 개발사들의 고민이고 앱을 하나의 마켓에서만 내려받도록 제한하지 않는 것이 보안이나 불법복제 등의 우려를 낳고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플랫폼이 열려있다는 것 자체가 안드로이드의 경쟁력이기도 하다.

디지털 콘텐츠 시장 확대 시각 같아, 아마존-MS도 눈독

애플리케이션 외 기타 콘텐츠들의 유통이라는 결과물로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하지만 두 플랫폼의 콘텐츠 마켓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저마다 특성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돌아보면 플랫폼에서 직접 유통 채널을 만들면서 디지털 콘텐츠 구입이 하나의 문화로 자연스레 자리잡게 됐고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가격도 낮아졌다. 게임 하나에 1달러라는 값은 예전 윈도우 모바일 플랫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앱 개발사들의 수익 환경은 더 좋아졌고 소비자도 양질의 콘텐츠들을 싸고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됐으니 모두에게 긍정적인 발전으로 볼 수 있다.

앞으로도 두 플랫폼이 경쟁적으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적으로 발전을 이루며 상향 평준화되는 요즘, 더 많은 콘텐츠들이 이 두 가지 플랫폼을 통해 디지털화되고 유통될 것이다. 적어도 디지털 콘텐츠 시장 측면에서는 평가나 경쟁구도보다는 개발, 소비 환경의 질적인 성장을 더 유심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 물론 콘텐츠 유통의 독점이라는 비판이 따를 수 있지만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황무지같은 스마트폰 시장에 플랫폼을 세우고 다진 기업들의 목적이 무엇이었겠느냐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마존이 태블릿과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 폰 8의 핵심 과제로 삼는 이유, 그 핵심은 모두 콘텐츠 유통과 관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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