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 땐 놀고, 일할 땐 일하라'란 말이 있다. 일과 놀이를 구분하고, 화끈하게 일하고 화끈하게 놀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그래서 '좋아하는 걸 일로 하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이런 이야긴 에버노트에서 일하는 헤더와 레온 와일드 커플에겐 해당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사내에서 일과 사랑, 취미 그 무엇도 놓치지 않는 커플로 꼽힌다. 바로 두 사람은 요트에서 살며 바다 위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에버노트 고객지원 담당 헤더와 레온
▲ 에버노트 고객지원 담당 헤더와 레온

헤더 와일드는 에버노트에서 입사 순위 10위 안에 드는 인물이다. 레온은 헤더 뒤를 이은 13위다. 지금 에버노트 직원 수는 약 240명이니, 두 사람은 입사순으로 따지면 톱이다. 두 사람은 입사 톱이라서 유명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만나기 어려운 동료기 때문이다. 줄리아 오쇼내시 에버노트 홍보담당 이사조차 "본사에 3번 방문했지만, 그때마다 두 사람은 바다 위 어디엔가 있었고 언젠가는 아르헨티나에 있다는 얘길 들었다"라며 "이번 행사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봤다"라고 털어놓았을 정도다.

헤더와 레온은 에버노트에서 고객지원을 담당한다. 헤더는 기술지원 담당 이사이고 레온은 기술 부문 외 문의를 맡는 고객지원 담당 이사이다. 헤더는 에버노트가 설립되기 전에 입사했다. 필 리빈 에버노트 CEO와 알고 지낸 덕분이었다. 6개월이 지나고 레온도 합류했는데, 그는 "전 직장이 잘 안 돼서"라면서 "헤더와 함께 있고 싶어서"라고 입사 배경을 밝혔다.

아무래도 두 사람이 요트에서 지내는 이야기를 들으려면 두 사람이 인연을 맺은 때로 올라가야 할 듯했다. 첫 만남이 어땠는지 묻자, 나란히 앉은 헤더와 레온은 회상에 잠긴 듯 얼굴이 발그래졌다. 레온이 먼저 입을 뗐다. "1999년이었던가요. 플로리다에서 스피릿항공에서 매니저로 일했어요. 그때 승무원으로 뽑으려 300명을 인터뷰했는데 그 중 한 명이 헤더였어요. 면접이 첫 만남인 거지요. 그런데 면접관과 구직자인 우리 두 사람은 '더 나은 기장이란' 주제로 논쟁을 벌였어요."

우여곡절 끝에 헤더는 스피릿항공에 채용됐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을까. 헤더가 샤니아 트웨인이란 컨트리송 가수의 콘서트 티켓이 생겼다. 함께 가려고 한 친구가 가지 않겠다고 해, 헤더는 별 뜻없이 레온에게 같이 가자고 청했다. "콘서트에서 노래를 들을수록 우리 두 사람의 상황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제 눈에 별이 들어왔어요. 콘서트가 끝나곤 분위기가 무르익어 곤돌라를 탔지요. 그때 키스를 하곤 이 사람과 평생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헤더와 레온 와일드
▲ 헤더와 레온 와일드

두 사람은 10년 넘도록 한결같이 서로만 바라보고 왔는데 지금도 사랑이 샘솟는 모습이었다. 집보단 비좁은 요트에서 같이 일하고 사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 그런데도 두 사람은 인터뷰 내내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머금었다.

2002년, 요트를 샀다. 2007년부터는 아예 요트를 집으로 삼았다. 바다 위에서 둥둥 떠다니는 요트가 집이라니, 불편한 점은 없을까. 헤더는 "요트엔 잡동사니를 쌓을 곳이 없어 신발을 사도 둘 곳이 없다"라고 푸념했다. 간혹 드라마나 영화에 보이는 신발장은 헤더에겐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 빼곤 두 사람은 불평을 하지 않았다.

땅에 뿌리내린 집보다 요트는 손도 많이 갈 것 같다. 실제론 일과 요트 생활을 같이 하는 게 불가능할 거란 궁금증이 생긴다. 경치 좋은 바닷가에 정박해 일하는 게 아무래도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란 '걱정'마저 든다. 다행히도 요트엔 자체 발전기가 있어 정박한 도시가 정전돼도 일하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최근 샌디애고 시내가 정전된 사건이 있었어요. 도시가 깜깜했는데 우리 보트만 환했어요. 요트 안에 있는 발전기를 돌려 인터넷에 연결하고 전화기와 컴퓨터를 켰죠. 우린 항상 준비돼 있어요. 위성전화기, 위성인터넷 등 모든 걸 갖춘 셈이에요. 오늘 제가 들고온 가방엔 노트북 3개, 태블릿PC 4개, 전자책 단말기 3개, 그리고 휴대폰과 케이블이 종류별로 들어 있어요." 인터뷰가 있던 에버노트 트렁크 콘퍼런스 행사에 헤더가 들고 온 가방 무게는 34Kg이었다.

기기만 있다고 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기업마다 사무실이란 걸 차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동료끼리 얼굴 맞대고 의견을 나누고, 급한 건 뛰어가서 부탁할 수 있다. 일하다 감정이 부딪혀도 곧바로 풀 수가 있다. 농담 한마디 던져도 더 재미있게 던질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헤더와 레온은 담당 업무가 고객지원이다.

헤더와 레온 와일드
▲ 헤더와 레온 와일드
걱정만 앞선 질문에 두 사람은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했다. "부서별로 내부 대화 채널은 항상 열려 있어요. e메일, 채팅, 영상회의 등 할 수 있는 모든 채널로 얘기해요." 에버노트는 사내에서 기업용 SNS인 야머, 개인 또는 기업용 모바일 인터넷 전화이자 영상 통화가 가능한 스카이프, 그리고 자사 서비스인 에버노트를 적극 활용한다.

하루종일 출렁이는 요트에서 일하는데도 두 사람은 꽤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모습이었다. 뭍이 아닌 물 위에서 사는 건 생각해 본 일이 없는데, 미국에선 평범한 것일까. 두 사람은 미국, 아니 요트에서 사는 사람 중에서도 특이한 편이다. "99%는 은퇴한 사람들이지, 저희처럼 일하며 사는 사람은 드물어요."

물론 젊은 사람들도 요트에서 지내긴 한다. 그런데 대부분은 일을 하다 잠깐 쉴 겸 요트 생활을 선택한다. "우리와 비슷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긴 해요. 아이는 학교에 보내지 않고 요트에서 홈스쿨링하는 가족이었죠. 그런데 그런 사람은 드물어요. 한 간호사는 일이 힘들어서 요트를 타고 멕시코에 가 휴식을 취하고 일로 돌아갔어요. 치과의사도 만났는데 비슷했죠. 4년간 일해 모은 돈으로 2~3년 요트에서 사는 사람도 봤고요. 4개월 응급실에서 일하고 6개월은 보트에서 사는 간호사도 있어요. 돌이켜보니 마사지사, 기자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긴 했네요." 그나마 태평양에 인접한 샌프란시스코에는 젊은 사람들이 요트를 찾는 편이란다.

에버노트 직원 누구도 두 사람이 있던 장소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아메리카 대륙 해안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이다. 다녀온 몇 곳만 물었는데 샌디애고, 멕시코 바하, 카보 산 루카스, 에스프리토 산투, 남미의 터틀베이 등 이름도 낯선 휴양지를 댔다. 그런데 듣고보니 모두 아메리카 대륙이다. 요트 생활 6년차면 태평양도 도전해볼 만하지 않을까.

"하와이? 가 보고 싶지요. 하지만 바빠서 갈 시간이 없어요." 두 사람 정도면 하와이 가면서 일을 하고, 하와이에 정박해 휴가를 내고 즐기다 오면 될 일인데 엄살이다.

사실 위성인터넷 속도와 비용 때문이었다. 지금은 한 달에 60달러, 우리돈으로 약 7만원 정도를 인터넷 접속료로 내는데 이 금액이 태평양 한가운데로 가면 한 달 3천달러로 50배나 뛴다. 여기에 1바이트당 추가 요금도 붙는다. 게다가 태평양을 항해하려면 한 사람은 일에서 손을 놔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는 건, 두 사람 한 번쯤은 태평양을 항해하며 일하는 꿈을 꿔봤다는 뜻 아닌가. OTL

헤더와 레온 와일드의 요트
▲ 헤더와 레온 와일드의 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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