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가야죠."

서비스에 대한 계획을 물으면 으레 듣는 말입니다. 개인 개발자부터 상장한 회사도 국내 시장보다 해외시장을 바라보지요. 때론 아예 법인을 국외에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글로벌 K-스타트업 해외 일정 중 플리토를 만난 건 행운이었습니다. 글로벌 K-스타트업에 참가한 6개 팀이 하려는 게 바로 해외 진출이니까요.

런던은 각국에서 온 인재, 투자자, 아이디어가 모인 곳

올 9월 설립된 플리토는 조만간 법인을 영국이나 미국으로 옮길 계획입니다. 이정수 대표와 강동한, 김진구 공동창업자가 SK텔레콤 사내벤처 프로그램에 참가하다 의기투합해 플리토를 창업했는데요. 지금은 영국에 기반한 스프링보드의 13주짜리 창업보육 프로그램에 참가차 런던에 머물고 있습니다.

플리토 이정수 강동헌 김진구
▲ 플리토 이정수 강동헌 김진구

▲런던에서 만난 플리토. (왼쪽부터) 김진구 공동창업자, 이정수 대표, 강동헌 공동창업자.


스프링보드는 사무공간과 집, 생활비를 지원하고 플리토가 앞으로 사업을 전개하는 데 도움이 될 투자자와 멘토를 소개합니다. 13주간 이렇게 지원하며 플리토의 지분 일정 부분을 가져가고요. 이렇게 사업 초기, 성장하는 데 밑거름을 제공하고 지분을 가져가는 걸 이곳 말로 액셀러레이팅 또는 액셀러레이션이라고 합니다. 플리토처럼 아이디어 단계에 있는 팀을 지원해 서비스를 개발하고 기업으로 성장하게 하지요.

플리토의 숙소는 런던에서도 물가 싸기로 유명하고 유색인종이 모인 웨스트햄에 있습니다. 아침 출근할 때 주위를 둘러보면 아프리카에 온 듯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아랍계도 눈에 띄고요. 플리토는 런던에 사무실은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스프링보드가 입주한 구글의 창업보육센터 캠퍼스 런던 3층 한켠에 태극기를 걸어두고 이곳에 있는 책상을 쓰고 있습니다. 5층짜리 이 건물엔 플리토처럼 스프링보드와 테크허브, 시드캠프가 보육하는 각종 스타트업과 구글에 신청해 협업 공간을 사용하는 팀이 여럿 있습니다.

이정수 플리토 대표는 "스타트업은 서비스 개발할 시간과 돈이 필요한데 따로 투자자를 만나고 인맥을 넓히고 마케팅할 시간은 부족하다"라면서 "런던에 오니 스프링보드에서 자기 인맥으로 사람들을 소개해줘, 우린 일하다 사람들이 찾아오면 만나면 된다"라고 이 방식이 쓸모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치 런던은 스프링보드와 같은 창업보육 회사뿐 아니라, 벤처투자자, 세계적인 IT 기업에 각국에서 온 스타트업이 모여 있어 정보의 광장이나 다름없습니다.


▲런던에 있는 '캠퍼스 런던' 3층엔 스프링보드가 보육하는 각국 팀이 모였습니다. 저마다 자국 국기를 걸어놓고 일합니다.


플리토는 서비스 이름도 플리토입니다. '훨훨 날다'란 '플리터'란 영어 단어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플리토는 트위터나 웨이보에 올라온 소식을 이용자가 번역해 공유하는 서비스입니다. 런던에 와서 웹사이트iOS 응용프로그램(앱), 안드로이드 앱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플리토의 번역에 참가한 이용자는 포인트를 받는데요. 실제론 포인트보다 내가 좋아하는 소식을 널리 알리고 싶단 이용자의 마음을 자극하는 게 이 서비스의 특징입니다.

이런 식이죠. 제가 슈퍼주니어 시원을 좋아하는 싱가포르 사람이라고 상상해볼까요. 전 요즘은 한국어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종종 슈퍼주니어 시원이 트위터에 종종 한국말로 올리는 게 무슨 뜻인지 알고 싶어서지요. 플리토에는 이런 이용자가 꽤 있습니다.

플리토는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슈퍼주니어 시원이 올린 한국말을 중국어나 영어로 번역해주는데요. 2차로 이용자에게 번역이 제대로 됐는지 확인을 부탁하고,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은 수정하게 합니다. 구글 번역기는 어색한 부분까지 잡아주진 못하지만 플리토에선 언어마다 특성과 문화에 맞게 번역이 되는 거지요.

기계로 작동하는 자동번역기가 채우지 못하는 '사람 손'이 바로 플리토의 특징이자 강점입니다. 트위터나 웨이보 메시지는 올라오고 평균 7분이 지나면 매끄러운 문장으로 번역이 된다고 합니다. 플리토는 한국어, 영어, 아랍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인도네시아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태국어, 베트남어 등 14개 언어를 지원합니다.

플리토가 지금은 트위터 번역기로만 보이지만, 이용자가 늘고 번역이 활발하게 진행되면 해외 이용자를 모으려는 각종 콘텐츠를 번역하는 플랫폼이 되는 게 앞으로 목표입니다. 국내 독자만 있는 웹툰 작가나 웹툰 플랫폼이 플리토와 제휴해 해외 서비스를 할 수도 있겠지요.

플리토 웹사이트
▲ 플리토 웹사이트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을래요"

"오늘 아침, 이틀 연속으로 비가 안 내려 놀랐어요. 이곳 와서 이런 날은 처음이에요. 평소엔 비가 물뿌리개를 쏘듯 내리고, 춥고 으슬으슬해요." 50여일 지낸 영국은 살기에 썩 좋지 않은 모양입니다. 플리토의 3명은 서브웨이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는데요. 그나마 재료가 풍부하고 맛도 나쁘지 않으면서 싸기 때문입니다.

이 고생길은 스프링보드의 13주 프로그램이 끝나면 함께 끝나는 걸까요. 플리토는 12월이 되면 실리콘밸리로 갈 생각입니다. 이러다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은 한국에서 해외 투자 유치나 외국 기업과 제휴하는 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라 이렇게 정했다고 합니다.

"한국은 외국 기업이 파트너십을 맺기에 안 좋은 나라예요. 해외에선 한국에 법인이 있다고 하면 접근하기를 꺼려합니다. 서류 하나라도 한국어와 영어로 번역해 봐야 하니까요."

이정수 대표는 한국 기업에 투자하거나 한국 기업과 제휴하려고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하고 우리 사정에 눈이 밝은 변호사, 회계, 재무담당자를 고용할 회사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국내와 해외의 투자 규모가 다른 것도 플리토가 해외를 바라보는 까닭입니다. 투자 회사는 투자한 기업이 투자 유치를 거듭하며 기업가치를 높이길 바라는데, 국내에서 투자 규모를 키우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어라는 장벽 때문에 결국 회사의 기반도 해외에 둬야 한단 얘기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꼭 한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지금 IT 창업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은 영어가 공용어인 곳입니다. 실리콘밸리와 런던,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 세계적으로 스타트업이 모이는 곳은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습니다. 이정수 대표는 "결국엔 영어"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플리토는 이제 막 걸음을 뗀 상태라 아직 한국에서 규제의 벽에 부딪힌 경험은 없습니다. 그 경험도 있었다면 이정수 대표는 "결국엔 영어"란 말에 규제, 규정이란 얘기도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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