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무심코 사진 한 장 올리는 것도 주의할 일이다. 저작권자를 확인하지 않고 그 저작권자에게 허락받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 어느날 해당 사진의 주인이 정당한 대가를 내라고 요구하거나 이의를 제기해도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사진 한 장 올리겠다고 이 사진의 주인 찾아다니는 것도 쉽지 않다. 인터넷에서 돌고 돌아 내 눈 앞에 나타난 사진이라면, 주인을 찾기 위해 전세계 웹문서 파도타기를 해야 할 판이다. 이렇게 저작권자를 확인하고 활용할 방법을 찾는 게 어렵다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 CCL)를 적용한 이미지를 찾아보자.

저작물 사전 이용 허락 표시 - '이 조건이면 마음껏 써도 좋아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는 미국 마운틴뷰에 있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란 비영리기구가 배포하는 저작물 사전 이용 허락 표시다. 창작자가 자기 저작물에 대해 일정한 조건을 지키면 얼마든지 이용해도 좋다는 내용을 표시해 둔, 일종의 약속된 기호다. '출처를 표시하면 얼마든지 써도 좋아요'라거나 '출처를 표시하고 비영리 목적으로 활용하되, 이 저작물을 변경하지 않는다면 써도 좋아요'라는 식으로 저작물 이용 조건을 내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재단은 로렌스 레식 미국 하버드대학교 교수와 해롤드 어밸슨 미국 메사추세츠공과대학 교수, 프로그래머 출신 저술가인 에릭 엘드레드 등이 주축이 돼 2001년 설립됐다. 이 3명 외에도 미국에서 지적재산권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제임스 보일, 미첼 카롤리,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 에릭 살츠만 등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설립에 뜻을 같이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란 이름은 이 재단의 이름이자, 이 재단이 펼치는 운동의 이름이기도 하다. 운동의 주제는 이거다. '창작자는 자기 저작물의 이용 조건을 미리 알리고, 이용자는 저작물을 이용할 때 창작자에게 사전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게 한다.' 저작물을 이용하는 걸 무조건 막는 대신 일정 조건을 걸고 누구나 쉽게 저작물을 쓰게 하는 게 이 운동의 초점이다.

재단은 창작자마다 원하는 이용 조건과 표현 방식을 통일해 2002년 12월 16일 CCL을 배포했다. '내 블로그 제목이랑 내 이름을 적고, 내 블로그 웹페이지 주소를 밝히면 자유롭게 써도 된다'란 긴 글 대신 'CC-BY' 또는 작은 이미지 하나만으로 저작물 이용 조건을 밝히게 하는 내용이었다.

생각해보자. 거실에 아무리 멋진 그림을 걸어도 아무도 볼 수 없다면 그 작품의 가치는 얼마나 클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의 생각대로라면 이 그림은 많은 사람에게 보여줄수록 가치가 커진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저작물을 쓰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CCL이라는 저작물 이용 규약을 만들었다. CCL이 적용된 저작물은 저작자가 내건 조건을 지키면 누구나 마음껏 쓸 수 있지만, 이 조건에서 벗어나는 경우에는 저작권자에게 허락을 받는 식으로 말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의 시작
- 죽은 창작자를 위한 저작권 보호기간 늘리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운동은 에릭 엘드레드가 휘말린 한 소송에서 시작했다. 에릭 엘드레드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재단 설립에 참여한 인물로, '엘드레드 대 애쉬크로프트 사건'이란 소송에 휘말렸다. 에릭 엘드레드는 저작권이 만료된 문학 작품을 공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에릭 엘드레드가 운영하는 엘드리치 출판사에서 맡고 있었다. 그런데 1998년 미국에서 저작권이 창작자 사망 후 50년에서 70년으로 늘리는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안이 통과되자, 엘드리치 출판사가 웹에 문학작품을 올린 게 저작권법과 전자절도금지법을 위반해 고발될 위기에 처했다.

저작권법이 개정되는 과정에서 에릭 엘드레드는 한 가지 의문을 품었다. 저작권을 과도하게 보호하고, 보호 기간을 필요 이상으로 늘이는 게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한 생각이었다. 창작자가 죽어도 유지되는 저작권 보호기간은 누구를 위해 마련된 것인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안은 정말 누구를 위해 마련된 것이었을까. 미국에서는 이 법이 '미키마우스 보호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애당초 2004년이면 미키마우스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될 예정이었는데, 이 법 때문에 2023년까지 20년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결국, 저작권 보호기간은 미키마우스를 활용한 새 아이디어를 디즈니사가 아니면 실현할 수 없게 막는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창작 의욕을 고취하는 게 아니라, 되려 창작 의욕을 꺾는다는 얘기다. 생각해보자. 내가 죽고 70년간 보장받을 권리를 생각할 창작자가 얼마나 될까. 저작권자 사후 70년간 저작권을 보호하겠단 생각은 저작권자 대신 해당 저작권을 보유한 회사나 제3자를 위한 것이란 비판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에릭 엘드레드와 당시 소송 대리인이었던 로렌스 레식 교수는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안과 달리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방법을 고민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운동은 72개 국가에 퍼졌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 캐나다, 일본, 페루, 루마니아, 스위스, 영국, 태국 등 각 나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재단 또는 법인은 자국 언어로 CCL과 CCL 규약을 번역해 배포한다. 그리고 CCL 규약은 그나라 저작권법에 맞게 조금씩 수정한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지적재산권과 사이버 공간, 방송, 통신 등 새로운 영역에서 법적 문제를 다루는 열린 모임인 사단법인 한국정보법학회는 2003년 한 콘퍼런스를 준비하다 미국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재단 사무총장에게 연락이 닿았다. 콘퍼런스 주제는 '디지털 정보의 공유와 전유'였다. 미국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재단 사무총장은 한국정보법학회에 '한국에 CCL을 보급하면 어떻겠느냐'란 제안을 했다.

한국정보법학회는 이 제안을 듣고 바로 미국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재단과 양해각서를 작성했다. 1년 뒤엔 한국정보법학회 내부에서 전담반이 꾸려졌다. 영문 라이선스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일부는 국내법에 맞게 고치고, 한국어 홈페이지도 만드는 작업이 진행됐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는 2005년 3월 21일, 한국어 CCL을 배포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사단법인 설립은 4년 뒤인 2009년 1월 23일에야 됐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는 이름을 줄여 'CC코리아'(씨씨코리아)라고도 불린다.

CC코리아 활동가는 2012년 1월 커뮤니티에 가입한 사람을 기준으로 200여명에 이른다. CC코리아는 자원활동가를 중심으로, CCL을 보급하고 홍보하는 교육이나 저작권과 정보공유 관련한 각종 활동을 전개한다.

CCL에 대한 오해와 사용법

1. CCL을 적용하면 내 저작물은 팔지 못하는 건가요?

CCL을 적용하는 게 해당 저작물을 모두 무료로 배포하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로렌스 레식 교수는 자기 저서에 CCL을 적용해 웹에 무료로 공개하면서 인쇄해 팔기도 한다. 2억건 이상의 CCL 적용 이미지가 있는 플리커에도 CCL을 적용하고 동시에 유료 이미지 판매 사이트를 연결한 이용자가 있다. CCL은 이용자가 저작물을 이용할 때마다 저작권자에게 사전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데 의의가 있다.

국내 저작권법상 저작권은 저작물을 만든 사람에게 있고, 당연히 저작권자에게 이용 허락을 받아야 그 저작물을 쓸 수 있다. 하지만 CCL은 이 과정을 조금 간단하게 만든다. 글이나 사진, 동영상에 'CC-BY'란 표시가 보이면 출처만 밝히고 자유롭게 써도 된다. 이렇게 몇 가지 약속을 정했고 기호로 만든 게 CCL이다. 매번 '이 글을 복사하거나 퍼가고 스크랩하려고 저한테 꼭 e메일로 연락을 줄 필요는 없어요. 제 아이디와 링크만 걸면 마음대로 써도 좋아요'라고 쓰긴 번거로우니 말이다. 그래서 저작권자와 이용자 사이에 CCL 기호와 로고로 서로 '이렇게 공유한다'라고 약속을 하는 거다.

2. CCL을 적용하려면 CC코리아에 허락을 받아야 하나요?

일부 기업은 CC코리아와 제휴해 CCL을 적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CC코리아 홈페이지에서 'CC라이선스→CCL 적용하기'로 가면 나와 있듯이 자기 저작물에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적고, CCL 단추를 달면 된다. CCL 단추는 CC코리아에서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다.

3. CCL은 인터넷 게시물에만 적용할 수 있나요? 제 책을 CCL 적용할 수도 있을까요?

CCL은 블로그 글이나 기사, 사진, 이미지, 동영상, 음원, 인쇄, 출판물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미지에 CCL을 적용할 때는 CCL에 대한 내용을 이미지에 적어 넣거나 아니면 별도로 표시하면 된다. 동영상에는 영상 처음이나 마지막에 CCL 내용을 넣고, 음원에는 음성 클립으로 기록하는 방법도 있다. 또는, 웹페이지에 올린 경우라면 파일 근처에 CCL 내용을 표시할 수 있다. 오프라인으로 유통하는 저작물이면, 겉면 눈에 띄는 위치에 CCL 종류와 로고 등을 표시하면 된다.

4. CCL 단추는 이미지로만 넣으면 되나요?

CCL을 적용할 때 알아두면 좋은 팁이 있다. 나눌수록 가치가 커진다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의 정신을 기억하는가. CCL 단추를 이미지로 넣을 수 있지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홈페이지에 있는 라이선스 생성기를 이용해 만드는 방법을 추천한다. 이 방식으로 CCL 단추를 만들면, CCL 전용 검색엔진에 노출된다.

5. 그럼, CCL 적용한 건 어디에서 찾나요?

CC코리아가 마련한 '렛츠CC'란 검색 사이트가 있다. 상업적으로 이용할 것인지, 수정해 쓸 것인지 선택하고 키워드로 검색하면 이미지, 음악, 동영상, 문서 등을 찾을 수 있다. 이 외에도 이미지는 플리커에서 CCL이 적용된 최소 2억만장 이상을 검색할 수 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재단이 만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검색 페이지'도 있다.

이 밖에도 웹브라우저 파이어폭스의 주소 검색창에서 'CC검색'을 선택하거나 '디스커버ED', 'OER 커먼즈' 등이 있다.

6. 내가 만든 저작물이지만, 꼭 저작권을 주장하고 싶지 않아요.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저작물은 '퍼블릭 도메인'이라고 부른다. 퍼블릭 도메인은 저작권자가 저작권을 포기하거나 저작권 보호기간이 지난 저작물, 법 규정으로 저작권이 소멸한 저작물을 말한다. 위 질문은 이 3가지 중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내 저작물을 전세계 모두가 어떤 조건에 제한을 받지 않고 쓰게 하고 싶다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가 배포하는 퍼블릭 도메인 인증 도구를 이용하자. 퍼블릭 도메인을 두고 정해진 사용권은 없지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는 CC0(CC Zero) 라는 도구를 만들었다. CCL에서 라이선스가 없다는 뜻으로 영문 'L' 대신 숫자 '0'을 붙였다. 퍼블릭 도메인 인증 도구는 저작권자가 원하면 자기 저작물을 퍼블릭 도메인으로 공개하도록 돕고, 이러한 저작물을 찾기 쉽게 한다.

CC0를 적용할 때는 해당 저작물이 저작권 규제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에 유의하자. 내가 주인이 아니고, 저작권자가 아닌데 이 인증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법적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재단은 하나 이상의 재판 관할에서 저작권법의 규제 대상인 저작물에 대해서는 CC0를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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