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 개발자·엔지니어와 자주 만나 얘길 나누게 된다. 문득 개발자들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매일 같이 계속되는 야근에 힘들어하고, 40대 이후 개발자로 살아남기 힘들다고 자조하면서도 개발을 계속하는 이유가 뭘까.

개발자로서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오늘도 개발에 힘쏟고 있는 사람들을 찾았다. 첫 번째 손님은 불혹이 넘은 나이에도 개발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는 송화준 투비소프트 최고기술경영자(CTO)다.

"지금도 나는 엔지니어라고 생각합니다. 최고기술경영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엔지니어입니다.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기에 20여년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할 수 있었습니다."

송화준 CTO는 학창시절부터 자연스레 개발자의 길을 꿈꿔왔다. 시계를 분해하고 조립하거나 밤 새워 프로그램을 짜는 등 개발 분야에 소질을 보였다. 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가 엔지니어가 될 거라고 기대했고, 자신도 개발자가 될 거라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회에 나와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을 시작하고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을 맡으면서 프로그래밍에 재미를 붙였다. 없는 것을 새로 만들기보다는 있는 것도 달리 볼 수 있는 소프트트웨어 개발에 희열을 느꼈다.

힘들 때도 많았다. 회사는 그에게 개발 외에도 영업, 조직 관리 등 다른 분야의 일도 떠맡길 원했다. 그럼에도 2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가 개발자로서 일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개발' 그 자체다.

"개발자가 스스로 도태될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관리자가 되면서부터입니다. 개발자 중에서 관리자가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보니 개발자는 나이가 들면 은퇴를 하고 치킨집을 차린다고 하지요."

각종 개발자 행사에서 강연자들이 농담처럼 개발자의 미래가 치킨집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송화준 CTO는 오히려 꿋꿋하게 개발에 집중했다. 개발 경력 4~5년 정도면 기술은 정점을 찍지만 개발 내공은 부족할 때로, 엔지니어 개발 내공이 약하면 개발자로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투비소프트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와 사용자 경험(UX) 를 비롯한 리치 인터넷 애플리케이션(RIA) 전문 개발 업체다. 이 분야에서 개발자로 성공하려면 소프트웨어 개발을 잘 하는 것 못지 않게 기술 문화에 민감해야 한다. 윈도우8 운영체제 등장 이후 나오는 터치스크린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떻게 화면을 배치했을 때 사람들이 편하게 느끼는지 등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경험은 하루 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언어를 다루는 건 4~5년 정도면 기술이 정점을 찍지요. 하지만 제품을 어떻게 기획하고,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고,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걸 만들기 위해선 어떤 기술을 결합해야 하는지를 느끼려면 개발 경력이 한 10년 정도는 돼야 합니다."

개발을 10여년 넘게 하다보니 기술 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PDA와 스마트폰처럼 과거에 등장했던 제품이 왜 실패했고, 그와 유사한 제품은 왜 성공했는지 감이 왔다. 과거에 실패했던 제품일지라도 어떤 요소를 결합하면 성공할 수 있을지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기술 연마에만 만족한 채 개발을 그만뒀더라면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이다.

"개발을 오래 하면 할 수록, 배우면 배울수록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완벽히 새로운 건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경험이 쌓이니 자연스럽게 기술 트렌드가 눈에 보이더군요."

송화준 CTO는 이제 꿈을 꾼다. 그 자신이 개발자로 성장한것처럼 후배들도 관리자가 아닌 노련한 개발자로 성장시키기 위해 회사 조직 문화 개선에 팔을 걷어붙였다. 상하관계 중심의 명령 체계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임원이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 담당자가 개발을 주도하는 형태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 자신이 직접 개발자는 개발하기 최적의 환경에서 제대로 성장한다는 걸 느꼈듯이 같은 환경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서다.

"직장인이 아닌 개발자라는 자부심을 후배들에게 주고 싶습니다. 다들 몸에 밴 습관들이 있어 어려울 것 같지만, 시도해봐야지요. 하지도 않고 후배들이 치킨집을 차린다고 안타까워만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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