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16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reative Commons License, CCL)가 세상에 나온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CCL은 로렌스 레식 하버드대 교수가 설립한 비영리단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가 보급하는 저작물 자유이용 라이선스이다. 저작권자는 몇 가지 조건만 지키면 모든 이가 자신의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CCL로 허락하고, 이용자는 CCL 조건에 따라 그의 저작물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2005년 3월 CC코리아(Creative Commons Korea)가 설립되고 CCL의 한국 버전이 런칭됐다. 그 작업에 참여한 나는 그 후 많은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CC코리아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따금 질문을 받는다. '어쩌다가 CC를 하게 되셨나요?' 뭔가 그럴듯한 계기가 있었을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거창한 계기도, 감동적인 이야기도 없다. 단지 참여하고 있던 학회에서 저작권 라이선스를 번역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에 덥석 맡았던 게 시작이었다.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었고, 심지어는 레식 교수가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다. 번역만 마치면 되는 일인 줄 알았다. 법률가였던 나에게 CCL은 익숙하지는 않지만 뻔한 내용의 영문 계약서일 뿐이었다. 그러나 작업을 마쳤을 무렵 CCL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CCL은 단순한 법률 문서가 아니라 인터넷 시대의 창의와 혁신을 위한 도구이자 새로운 문화운동이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법률가가 창의적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면 CCL은 너무나 단순한 개념이다. 기존의 저작권법을 뒤집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다. 법적으로는 저작권법에 따라 권리자가 하는 이용허락의 한 종류, 즉 ‘라이선스(license)’일 뿐이다. 다만 그전에는 보지 못했던(CCL 이전에도  GPL과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적용되는 자유이용 라이선스가 있었고 CCL은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일반 콘텐츠에 대한 본격적인 자유이용 라이선스는 CCL이 처음이다), 모든 이에게 자유로운 이용을 허락하는 라이선스인 게 다른 점이다. 처음에 든 생각은 ‘이런 라이선스가 가능할까?’였다. 당연하게도, 가능했다. 라이선스를 어떻게 하는가는 순전히 권리자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 간단한 원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흔히 우리가 마주치는 ‘copyright, all rights reserved’라는 문구가 하나의 온전한 것이 아니라 ‘copyright’ 과 ‘all rights reserved’라는 별개의 문구가 합쳐진 것이라는 것, 따라서 ‘copyright, all rights reserved’ 대신 ‘copyright, some rights reserved’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주어진 권리는 최대한 행사하여야 하고 다다익선이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고정관념 뒤에는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만 행사하는 것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진리가 가려져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단지 역발상적인 간단하고 표준화 된 라이선스가 사람들에게 주어졌을 때 전혀 새로운 경험과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에게는 이 모든 것이 ‘유레카'였고, 그때 처음으로 법률가가 창의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처럼 단순한, 하지만 창의적인 사고의 전환은 10년 동안 많은 족적을 남겼다. 더 이상 통계가 무의미할 만큼 수많은 콘텐츠들이 CCL에 의해 자유롭게 이용되고 있다. 70여개가 넘는 나라에서 CCL이 그 나라 언어로 이용되고 있으며, CCL을 활용한 다양한 사례들을 예술, 학술, 공공, 비즈니스 등 모든 콘텐츠 분야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자발성에 기초한 유연한 저작권의 행사는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창의성과 열린 문화를 끌어내는데 상당한 기여를 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물론 CCL이 현재의 저작권체계가 갖는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아니며 자발성에 기초한 방안은 분명 그 한계가 있다. 레식 교수가 10여 년전에 저술한 ‘아이디어의 미래(the future of the idea)’의 번역서를 최근에 감수하면서 새삼 느꼈듯이 그가 설파한 창의와 혁신이 좌절되고 있는 상황은 큰 변화가 없고, 레식 교수가 던진 의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CCL은 인터넷 시대의 문화와 창의의 영역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계속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CC가 갖는 의미는 단지 문화와 창의의 영역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중요한 맥락은 단순하지만 창의적인 사고의 전환 그 자체에 있다. 우리도 모르게 갇혀 있는 인식의 프레임과 고정관념에 대한 깨달음, 더 많이 놓을수록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선문답적인 진리가 실제로도 실현될 수 있는 전략이라는 깨달음, 나눔과 공유가 누군가의 희생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윈인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지혜라는 깨달음,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열린 지혜로움이 문제 해결의 첫 출발이라는 깨달음, 그것이 CC가 우리에게 알려준 통찰이다. 최근 무형의 콘텐츠와 달리 유한하고 경합적인 유형재화를 다루는 실물경제에서도 공유경제 개념이 등장하면서 자본주의의 새로운 실험이 이어지고 있고, 나눔과 공유는 새삼스럽게 사회 곳곳에서 큰 화두로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그러한 사고의 전환과 맥락을 같이 한다.

나는 그야말로 우연하게, 아무런 생각 없이 CC와 인연을 맺었지만 그 인연은 나에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법률가로서 저작권을 비롯한 지적재산권을 피상적으로 다루지 않게 된 것도 큰 변화이지만 열정적이고 비전을 가진 많은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CC코리아를 끌고 오면서 '커뮤니티'라는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동력을 역시 똑같은 자원활동가로 8년 가까이 경험한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웹2.0, 집단지성, 협업, 참여, 창의성, 혁신 등등 추상적인 수사에 그쳤을지도 모를 인터넷 시대의 키워드들이 이제는 실천과 경험으로 다가오고, 그렇기 때문에 열린 인터넷의 가치에 대한 관심은 나의 주된 분야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CC로 부터 얻은 가장 큰 행운은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다. CC를 경험하지 않았으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을 관점의 변화는 사고의 폭을 넓혀주었고 그럼으로써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스스로 자부한다.

앞으로 10년 후 CC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기적같이 CC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바람직한 세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예상은 다르다. 여전히 세상은 모순과 갈등으로 힘들어 할 것이고 CC는 한구석에서 빈곳을 채우기 위해 지금처럼 열심히 뛰고 있겠지. 때로는 변화의 느림에 실망할 수도 있고,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경험할지도 모른다. 인터넷이 더 이상 열린 인터넷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CC가 가져다 준 통찰은 계속 진화할 것으로 믿는다. CC가 알려준 지혜를 경험한 젊은 친구들은 계속 성장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창의력을 발휘할 것이고 우리 사회는 이를 뒷받침할 시스템을 꾸준히 고민할 것으로 믿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열린 창의와 혁신에 대한 가치를 인식할 것이고 그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와 가치의 확산은 분명 이 사회를 조금 더 괜찮은 곳으로 만들 것으로 믿는다.

이것이 CC 10년을 맞고 다시 10년을 기다리는 어설픈 인터넷 시민의 희망섞인 소감이다.


 (사진 : CC Korea Flickr. CC BY)

저작권자 © 블로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