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새로 나온 차에 올라타면 스마트폰을 꽂을 단자나 블루투스 연결 버튼을 먼저 찾는다. 스마트폰에 담긴 음악을 차량용 오디오에서 들려주고 스마트폰의 똑똑한 실시간 길 안내 서비스를 켠다. 스마트폰을 잘 쓰는 이들은 한 번씩 생각해봤을 것이다. ‘스마트폰의 화면을 큰 내비게이션에서 볼 수 없을까?’

이것이 '미러링'이다. 미러링은 말 그대로 화면을 거울에 비춘 것처럼 스마트폰에 뜬 화면을 또 다른 화면에서 보이도록 비춰주는 기술이다. 스마트폰에서 보는 화면을 TV나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그대로 전송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TV에도 쓰일 수 있지만 차량을 우선 염두에 둔 기술들도 있다. 또한 상당히 많은 회사들이 이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MirrorlinkTechnology
▲ MirrorlinkTechnology

아직까지 시장을 주도하는 기술은 노키아가 주도하는 ‘미러링크’다. 미러링크의 목적은 스마트폰 화면을 자동차의 내비게이션 화면으로 띄우는 것이다. 애초 ‘터미널모드’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2011년 이름도 알기 쉬운 브랜드로 만들었다. 초기에는 심비안과 블랙베리를 연결하기 위한 것으로 개발했던 것인데, 실제 기술이 꽃피기 시작하는 것은 안드로이드와 iOS와 더불어서다.

현재 미러링크는 CCC(Car Connectivity Consortium)라는 이름의 컨소시엄으로 운영중이다. 여기에 가입된 회사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자동차와 관련된 거의 모든 기업들이 붙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기아차는 창립멤버 등급이고 LG전자와 삼성도 마찬가지다. HTC와 파나소닉, GM, 폭스바겐 등도 창립멤버다. 포드, 마쯔다, BMW 등의 완성차 업체와 클라리온, 덴소, 델파이 등도 코어 멤버로 등록되어 있다.

CCC
▲ CCC

▲미러링크 창립멤버 목록. 현대기아차를 비롯해 LG전자,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도 많다. 


자동차 회사들이 미러링크를 선호하는 이유는 오픈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미러링크는 스마트폰과 자동차를 연결하는 표준 체계일 뿐이고, 실제로 어떻게 연결하고 어떻게 활용할지는 회원사들이 직접 결정한다. 심지어 미러링크는 무선 연결에 대한 규격도 없다. 애초에 유선으로 콘텐츠, 앱, 화면 등을 전송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구현하느냐보다 어떤 장치들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약속에 가깝다. 그래서 아직은 화질이 아주 뛰어나진 않다. 장치들끼리 서로 화면과 소리 규격을 맞춰주는 과정이 중간에 더해지기 때문이다. 화면은 1초에 8프레임 정도를 전송할 수 있는 수준이다. 동영상보다는 내비게이션이나 웹페이지 혹은 정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앱을 보는 데에 유리하다.

미러링크를 비롯해 미러링 기술로 화면을 전송하는 방식은 대부분 VNC(가상 네트워크 컴퓨팅)기술에 기반한다. 스마트폰에 뜬 화면을 일일이 캡처해서 압축한 뒤 전송하는 것이다. 그 방식이 유선일 수도, 무선일 수도 있다. 미러링크의 경우 USB 케이블,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 다양한 접속 방식을 활용할 수 있다. 다만 미러링크는 그 전송 규격이 인터넷 프로토콜 같은 표준 규격이고, 다른 기술들은 더 나은 화질과 속도를 위해 또 다른 전송 규격을 쓸 수도 있다.

아직까지 무선 방식은 유선에 비해 화질이 낮은 편이다. 이 때문에 풀HD급 화면을 초당 60프레임까지 뽑아내는 와이파이 미라캐스트 방식도 자동차에 고려되긴 하지만, 미라캐스트는 인증제도여서 차량에 적용하면 완성차 자체를 와이파이협회에 인증받아야 하기 때문에 도입이 빠르진 않다. 미러링크가 회원사 가입 이후에 자유롭게 기술을 가져다가 활용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셈이다.

유선 기술은 가상 컴퓨팅도 쓰지만 각 스마트폰이 주로 쓰는 MHL 기술이 더 편하다. MHL은 HDMI처럼 유선 기반의 화면 출력이기 때문에 반응 속도나 화질이 빠르다. 하지만 디스플레이에서 터치 입력을 다시 스마트폰에 보내주기는 쉽지 않다.

자동차에 적용되는 과정은 생각보다 빨리 이뤄지고 있다. 자동차를 구입한 뒤 직접 액세서리를 장치하는 애프터마켓 시장에는 이미 통신사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SK텔레콤은 티맵을 미러링하는 기술을, LG유플러스는 단말기 화면 전체를 전송하는 방식으로 자동차에 휴대폰 화면을 띄우는 제품들을 내놓고 있다. 유선으로 연결하는 방식도 속속 나오고 있다. 아이듀오는 MHL 방식의 제품을 선보인 바 있다. 각 제품들의 특징은 뒤에 다룰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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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애프터마켓보다 완성차에 적용되는 것이 적극 검토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소 의외다. 그간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표준을 정하는 제니비 프로젝트를 비롯해 차량용 안드로이드, 타이젠 등 각 자동차 회사들이 개발중인 IT 기술들을 보면 스마트폰에 의존하기보다 자체적인 플랫폼 구축을 원하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제품들이 상당수 개발되고 있고 상용화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원가 절감과 그에 따르는 소비자 만족이 크다는 점 때문이다. 방식은 아주 간단하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개개인이 갖고 있는 스마트폰을 헤드유닛에 연결해 쓰는 것이다. 자동차 헤드유닛에는 아무 기능도 넣을 필요가 없다. 더미 디스플레이만 넣어도 된다. 그래도 스마트폰으로 성능 좋은 내비게이션도 쓰고, 음악도 듣고, 영상도 본다. 인터넷도 된다. 그러면서도 가격은 기존 옵션 내비게이션보다 훨씬 싸고 자동차 업계가 콘텐츠에도 크게 신경 쓰거나 책임질 필요도 없다.

자연스럽게 소형차 위주의 시장에서 달콤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방식을 LCN(Low Cost Navigation)이라고 부른다. 이르면 올해부터, 늦어도 내년부터는 여러 완성차 업체들이 소형 자동차에 적용할 계획이다. 싼 값의 자동차는 스크린으로, 고급차로 갈수록 완성차 업체들이 직접 제공하는 내비게이션과 애플리케이션, 콘텐츠를 얹는 것으로 차별화하는 전략이다.

고급 차량이라고 해도 스마트폰과 연동하는 것은 빠뜨리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스마트폰 제조사나 통신사들이 하려는 N스크린에 대한 연장선으로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퇴근길 스마트폰에서 보던 영상을 집에 도착해 큰 TV로 볼 수 있도록 연결되는 것처럼, 출발전 스마트폰으로 목적지를 찍고 차량에 차서 스마트폰을 연결하면 목적지까지 운전 경로가 차량의 헤드유닛에 뜨고 목적지 주차장에 도착한 이후에는 다시 스마트폰이 목적지를 더 상세하게 설명하는 실내 내비게이션 역할을 이어서 할 수 있다. 이게 자동차 IT를 연구하는 업계에서는 바로 다음 단계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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