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 한국 커뮤니티에서 포럼 마스터를 맡고 있는 송현도 이분투 과장을 처음 만난 건 2011년 열린 다음의 개발자 행사인 '디브온(DevOn) 2011'에서였다. 당시 그는 '개발자와 오픈소스'라는 주제로 "절대로 반값에 개발하지 말라"라며 개발자들에게 당부하고 있었다. 그 뒤 오픈소스와 관련된 행사에서 자주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때마다 그는 '오픈소스와 우분투', '오픈소스 개발자로 사는 법' 등 다양한 주제로 국내 개발자들에게 오픈소스를 전파중이었다.

많은 사람에게 '오픈소스'를 얘기할 정도면, 뭔가 오픈소스에 빠지게 된 특별한 사연 같은게 있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정말 특별했다. 송현도 과장은 통신학도로서 여자친구 때문에 오픈소스에 발을 담갔다. 이전까지는 오픈소스의 '오'자도, 리눅스의 '리'자도 관심없던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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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 덕에 리눅스 데비안을 알게 되다


"1999년도였을까요. 그 때 사귄 여자친구가 데비안을 설치했는데, 그래픽카드가 안잡힌다고 제게 자문을 구하더라구요. 여자친구잖아요. 이건 100% 해야 되는 거잖아요. 이것저것 찾아보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GNU Manifest(GNU 선언문)'을 읽게 됐어요."

송현도 과장은 선언문을 접한 순간 오픈소스 정신에 감화됐다. GNU 선언문은 리처드 스톨만이라는 유명 개발자가 1985년 3월 오픈소스 프로젝트인 GNU 프로젝트의 목표를 설명하고 다른 사람들의 참여와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쓴 글이다.  '초기 전산 공동체에 지배적이었던, 협동 정신을 되돌리고 누구나 자유롭게 실행, 복사, 수정, 배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배포하자'라는 게 핵심 내용이다. 당시 대학교 1학년 새내기였던 송현도 과장에게 GNU 선언문은 따라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구글도, 네이버도 없을 때였어요. 알타비스타나 야후는 있었지요. 이 때부터 꾸준히 웹사이트에서 검색도 하고, 관련 자료도 찾으면서 우분투의 엄마격인 데비안 리눅스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픈소스에 관심이 보이기 시작했지요."

송현도 과장은 잘 쓰지 않는 저사양 컴퓨터에 데비안을 깔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윈도우 운영체제와 달리 리눅스는 요밀조밀 뜯어보고 살피는 맛이 있었다. 뭔가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해결할 수 있다는 기분이 들게끔 한다고 할까.

"리눅스는 공부하는 맛이 나는 운영체제입니다. 윈도우는 내부적으로 컴퓨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리눅스는 컴퓨터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거든요. 뭔가 잘 운영되지 않아 답답하면, 그 답답함을 해결할 수 있는 구조였지요."

어딘가 집중하게 만드는 데 '흥미'만큼 중요한 게 없다. 리눅스 운영체제를 사용하면서 송현도 과장은 오픈소스에 재미를 느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서 배워나가는 과정도 즐거웠다. 어느 날은 아이폰3GS에 웹서버를 설치하고 운용한 다음 그 과정을 웹사이트에 공개했다. 사람들이 송현도 과장의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보였다.

"그냥 컴파일 방법을 홈페이지에 공개했을 뿐인데, 방문자 수가 늘었더라고요. 왜일까 알아보니 몇몇 해외 포럼에서 제 작품을 공유하고 있더군요. 석달 밤을 꼬박 새며 완성해 코드를 공개했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습니다."

송현도 과장은 점차 남들과 지식을 나누는 재미와 자신의 결과물이 남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픈소스 프로그래밍 배우는 게 '너무너무너무너무' 좋았을 정도다.

오픈소스, 마냥 좋은 건 아니다


그렇다고 송현도 과장이 오픈소스의 모든 점을 사랑했던 건 아니다. 오픈소스라고 만능이었겠는가. 언어, 라이브러리, 라이선스, 진격의 커밋 벽 등이 존재했다. 이를 뛰어 넘어야 오픈소스를 더 이해할 수 있었기에, 무시할 수도 없었다.

"최신 오픈소스 소식은 대부분 영어입니다. 영어를 잘 해서가 아니라, 오픈소스 흐름을 따라잡으려면 영어를 잘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지요. 저라고 좋아서 영어를 했을까요. 어쩔 수 없이 공부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공동작업 하는 형태인 오픈소스를 이해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만든 라이브러리를 짬뽕해서 나온 형태가 오픈소스 프로젝트이다보니, 바로 내려받아 사용하기 힘들었다. 각 라이브러리를 이해하기 전까지는 쉽게 오픈소스를 활용하기 힘들었다.

송현도 과장은 내려받은 오픈소스를 활용할 때 지켜야 하는 라이선스도 부지런히 배웠다. 오픈소스는 단어 뜻 그대로 소스코드가 공개돼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 공개된 소스코드를 활용해 레드햇이나 MySQL처럼 상용 소프트웨어로 만들어 팔 수 있다. 특정 라이선스 규칙에 따라 상용 소프트웨어로 만들었지만, 어떤 소스코드를 활용했는지를 공개해야 할 때도 있다. 오픈소스라고 해서 무료로 그냥 퍼다가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안드로이드는 오픈소스지만, 모토로이는 오픈소스가 아닙니다. 구글이 제조사마다 자기 독자 기술을 공개하지 않으려고 라이선스 정책을 세운 거죠. 이런 사실들을 알아나가야 하다보니까 라이선스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루가 빠르게 변화하는 오픈소스 기술도 문제였다. 송현도 과장 설명에 따르면 크롬 웹킷 같은 오픈 프로젝트는 하루에 커밋이 800건이 올라온다고 한다. 하루라도 쳐다보지 않으면 아예 다른 프로그램이 만들어질 정도로 무수한 변화가 일어난다. 오픈소스 프로젝트 덩치가 커지기도 한다. 덩치가 커지면 관리하는 사람도 늘어난다. 더 빠르게 변화가 일어난다. 송현도 과장은 아파치 프로젝트를 '진격의 아파치'라고 비유했을 정도다.

오픈소스 개발자로 살아남는 법


이 모든 벽을 넘고도 남는 아쉬움이 있다. 한국에서 '오픈소스는 프리웨어'라는 인식이다. 송현도 과장은 이 점이 국내 오픈소스 개발자를 힘 빠지게 만드는 가장 큰 벽이라고 표현했다.

"월급 싸게 주고, 어차피 공짜로 가져다 쓰는 건데 왜 돈을 받느냐 식의 분위기가 형성돼 있습니다. 지금이야 괜찮지만, 과거에 전 100만원도 안되는 월급을 받으면서 일한 적도 있어요."

그만큼 국내에서는 아직 오픈소스 개발자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 개발자 사회에서 오픈소스 커밋 내역 공개하는 게 잘 먹힐지 모르지만, 기업 내 인사담당자에게까지 통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오픈소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무언가 해보고 싶다면, 오픈소스 커밋을 한번 해보라도 권유하고 싶습니다. 혼자 뭘 하긴 그렇다면, 남이 따라한 걸 해도 상관없습니다. apache가 있다고 해서 lighttpd나 nginx 이런 것들이 안 나오는건 아니잖아요."

송현도 과장은 자신이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 '테트리스맨'이라고 불린다.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테트리스 만들어"라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송현도 과장은 오픈소스 커밋은 거창한게 아니기에 누구나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냥 깃허브에 계정 하나 만들어놓고 활동하면 됩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돼요. 회사가 개발자를 뽑는데 영어점수 100점짜리 친구와 회사에서 진행할 프로젝트랑 비슷한 프로젝트를 해 본 친구 중 하나를 뽑으라면 누굴 뽑을까요. 열심히 하면 다 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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