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와 예술 영역에서 '아동·청소년 성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은 현재 가장 뜨거운 감자다. 아청법은 아동과 청소년을 성폭력 피해로부터 자유롭게 하려고 만들어진 법이다. 개정을 거친 아청법 개정안은 6월부터 시행 중이다.

6월27일 수원지방법원에서는 교복을 입은 성인 배우가 등장하는 이른바 '성인 교복 음란물'은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아청법) 규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개정 이전 아청법 대로라면 성인 교복물도 영락없이 아청법 규제 대상이었다. 수원지방법원의 판결 덕분에 영상 매체물을 가르는 아청법 기준이 더 세밀하고 엄중해졌다는 점은 환영할만하다. 하지만 성인 교복물을 제외하더라도 논란은 남는다. 바로 만화나 애니메이션의 아청법 논란이다. 개정된 아청법 제2조 5항은 아청법 규제 대상인 매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히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필름·비디오물·게임물 또는 컴퓨터나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한 화상·영상 등의 형태로 된 것을 말한다."

'표현물'이나 '성적 행위' 등은 여전히 모호한 표현이다. 이 같은 기준에 따르면, 아동 캐릭터가 등장하는 많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 가상의 창작물도 아청법 규제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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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노 고타로 일본 휘파람새 리본 단체 대표 


일본, '아동포르노 금지법 개정안'으로 표현의 자유 위축

일본도 국내와 사정이 비슷한 모양이다. 사단법인 '오픈넷'이 오기노 고타로 휘파람새 리본 대표를 초청해 좌담회를 꾸렸다. 휘파람새 리본은 일본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다. 지금은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 가상 창작물을 규제하려는 일본 정부의 활동을 저지하는 활동을 벌이는 중이다.

"현재 일본 국회 중의원회에 '아동포르노 금지법 개정안'이 제출된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은 규제하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금지하겠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죠. 아동포르노를 금지하는 것은 촬영 환경에 노출될 가능성이 있는 실제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서지 매체를 규제하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일본의 이 법률은 실제와 가상 매체를 혼동한 결과물입니다."

오기노 고타로 대표는 "내용에 관한 규제가 있어서는 안 된다"라며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일본 중의원회에 상정된 아동포르노 금지법 개정안은 아동이 등장하는 음란물뿐만 아니라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 가상의 창작물까지 포괄적으로 금지하겠다는 법안이다. '컴퓨터 그래픽 표현물'도 포함돼 있어 규제 대상은 게임까지 확대된다. 일본에서는 만화가협회와 문예가협회, 변호사연합회 등 다양한 단체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출판, 제작 영역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찬성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게 오기노 고타로 대표의 설명이다.

일본의 아동포르노 금지법 개정안은 현재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낸 아이디어다. 국내에서는 여성가족부가 주도적으로 아청법을 손질하고 있다. 일본 자민당과 국내 여성가족부가 기대는 지점은 비슷하다. 바로 국민 정서다. 아동이 등장하는 만화 애니메이션에 성적인 표현이 포함돼 있으면 보기 좋지 않다는 근거 없는 통념 말이다.

오기노 고타로 대표는 "규제를 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아동이 등장하는 장면만 부각해 보여주는 등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라며 "작품의 문맥이나 내용, 흐름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과학적 근거 없는 아청법의 아이러니

국내 아청법과 일본 중의원회에 상정된 아동포르노 금지법 개정안은 실제 매체 제작 환경에서 성적 학대를 당하는 아동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하려고 만들어진 규제다. 따라서 만화나 애니메이션 등 가상의 창작물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돼야 한다는 것이 오기노 고타로 대표의 주장이다. 내용의 규제가 이뤄지는 순간 창작 활동이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아청법 논란 한가운데 영화 '은교'가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기노 고타로 대표는 "일본에서는 현재 포르노를 규제하려는 보수적 견해를 견지한 이들이 결집한 상황"이라며 "상대적으로 냉정한 사고를 하는 이들이 논의에서 배제돼 있어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높다"라고 설명했다.

만약, 아동을 대상으로 성적인 표현이 등장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나온 행동을 현실에 옮기는 이들이 많다면 어떨까. 일본의 아동포르노 규제 금지법과 국내 아청법은 효과적인 규제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가상 매체를 접한 이들이 아동 성범죄자로 이어진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오기노 고타로 대표는 "일본에서는 성적인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널리 퍼진 이후에도 성범죄율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라며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성범죄에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오기노 고타로 대표는 일본에서 아동포르노 금지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직 통과된 법안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어쩌면 일본은 국내보다 나은 상황일 지도 모르겠다. 국내에서는 이미 발효 중인 아청법에 위헌소송이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서울지방법원은 아청법의 문제점을 인식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변민선 판사는 위헌법률심판제청문을 통해 "입법자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청소년의 성과 사랑에 관한 주제가 금기시되고 의사표현 공간이 위축되고 있는 것"이라며 "빅브라더의 시대는 그렇게 소리 없이 오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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