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1일 아침부터 애플 iOS용 응용프로그램(앱) 개발사들은 시쳇말로 '멘붕'에 빠졌다. 앞으로 한국 애플 앱스토어에 앱을 등록하려면 사업자등록번호와 통신판매업등록번호를 무조건 입력해야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항목을 채우지 못하는 앱 개발자나 개발사는 앱을 새로 등록하지도, 업데이트하지도 못한다. 이미 앱스토어 등록을 마친 개인 개발자도 사업자로 등록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앱스토어에 접근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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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ppstore

또 다른 소식도 전해졌다. 국내에서 사업자 등록이 돼 있지 않은 해외 개발자도 상세한 개인 또는 회사 정보를 입력해야 앱을 등록할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해외 개발자들이 한국 앱스토어에 앱을 등록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뒤따랐고, 곧이어 구글플레이에도 똑같이 사업자 등록번호 없이는 앱 등록이 차단될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 모든 것이 불과 반나절 만에 일어난 일이다.

앱 개발자 의무 등록제, 세금 때문?

정확한 원인을 모른 채 바뀐 정책 때문에 개발자들은 심각한 혼란을 겪었다. 주된 정책 변경 이유로 지목된 것은 '세금'이었다. 정부가 2010년부터 애플에 앱 판매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낼 것을 요구했던 사실이 새삼 환기됐고, 최근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이 해외 앱스토어에 대한 부가세 과세에 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서도 그 배경을 놓고 논란이 오갔다. 요컨대, 정책당국이 세목을 좀 더 정확하게 파악하고 세금 계산서를 발급하기 위해 모든 앱 개발자를 사업자로 만들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이번 정책 변경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 것이다.

이는 결국 반나절 만에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오후 3시께, 애플 앱스토어에서 사업자등록번호와 개인정보 입력창이 슬그머니 사라졌기 때문이다.

부가세? 이미 납부하고 있는데

기획재정부는 앱스토어에 사업자등록번호를 입력하는 것이 세금 문제와 연관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번 애플 앱스토어와 관련해 기획재정부에서 애플에 뭔가 요청하거나 지침을 만든 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앱스토어에서 앱을 판매해서 생긴 수익에 대한 부가가치세나 소득세는 이미 개발자들이 신고해서 납세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앱 가격에 부가가치세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세금을 매기고 있다는 얘기다. 한 앱 개발 업체 관계자도 “애플과 구글의 앱 판매는 해외 결제로 이뤄져 각 회사의 본사에서 해외 송금으로 판매 대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수익이 이미 다 노출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다.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전자상거래법)’이다.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사업자는 소비자에게 사업자 등록번호를 고지할 의무’가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전자상거래법 제20조 제2항 : 통신판매업자인 통신판매중개자는 통신판매중개를 의뢰한 자(이하 "통신판매중개의뢰자"라 한다)가 사업자인 경우에는 그 성명(사업자가 법인인 경우에는 그 명칭과 대표자의 성명)·주소·전화번호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확인하여 청약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소비자에게 제공하여야 하고, 통신판매중개의뢰자가 사업자가 아닌 경우에는 그 성명·전화번호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확인하여 거래의 당사자들에게 상대방에 관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여야 한다.

동법 제13조도 연결지어 볼 수 있다. 이 법은 통신판매업자가 물건을 팔 때 상호, 대표자 성명, 주소, 전화번호, 전자우편주소, 신고번호 등을 표시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오픈마켓에서 물건을 판매할 때도 통신판매사업자 등록번호를 고지해야 하는데, 앱스토어에서 판매되는 앱 역시 전자상거래이기 때문에 개발자나 개발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대통령령에 따라 국내에서 사업자로 등록돼 있다면 주소, 전화번호, 사업자 등록번호 등이 고지돼야 하고 사업자가 아니어도 이름, 전화번호 등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소비자에게 고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해외 앱 판매자는 개인 개발자와 마찬가지로 국내에 사업자로 등록돼 있지 않기 때문에 사업자등록번호 대신 상세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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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w

 

개인 개발자라면 기본 정보는 앞으로도 제공해야

이번 일은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는 모양새다. 개인이나 법인 사업자에게 또 다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애플은 법인과 개인 사업자, 개인 개발자로 나누어 개발자를 등록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자들은 사업자등록증을 e메일로 애플에 보내야 앱스토어 앱 등록 자격을 딸 수 있다.

하지만 개인 개발자들은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법에 따라 이름, 연락처, 주소 등을 입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에서 애플이 해외 개발자들에게 요구했던 정보들 말이다.

이는 구글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개발자 페이지에 ‘대한민국 법률에 따르면 사용자에게 앱 관련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개발자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Google Play의 앱 정보에 개발자의 연락처 정보를 표시해야 합니다.’라고 공지하고 있다. 구글도 이미 사업자로 등록된 개발자에 대해서는 사업자등록번호를 수집하고 있다.

애플도 애당초 개인·법인 사업자에게는 정보를 받고, 일반 개발자들에게는 개인정보를 입력받도록 하려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실수로 모든 개발자들에게 사업자등록번호를 수집하는 페이지가 뜨면서 문제가 불거졌을 가능성이 높다. 이 화면이 아무런 공지 없이 반나절만에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점에서 이를 유추할 수 있다. 앞으로도 개인 개발자들에게 이 화면이 다시 뜰 가능성은 희박하다.

개인정보 요구는 전자상거래법 때문

하지만 이 전자상거래법을 관할하는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루종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번 해프닝의 원인이 전자상거래법이란 가능성은 가장 높지만, 현재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정황은 충분하다.

그럼 공정거래위원회가 원하는 그림은 뭘까. 국내 사업자들의 사업 방향을 보면 될 것 같다. 현재 티스토어는 앱마다 통신판매업 신고번호를 비롯해 대표자 이름과 전화번호, 사업장 주소 등을 고지하고 있다. 개인 개발자는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와 주소, e메일 등이 공개돼 있다. 삼성전자가 운영하는 삼성앱스 역시 사업자는 사업자 등록번호, 전화번호, e메일 등이, 개인은 연락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등록·공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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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e

▲삼성앱스(왼쪽)과 티스토어의 판매자 정보 페이지. 개인 개발자의 경우 휴대폰 번호는 물론, 집주소까지 공개돼 있다. 개인·법인 사업자는 통신판매업신고번호를 공개했다.


반면 애플 앱스토어는 개발자나 개발사 이름만 보여주고 다른 정보는 없다. 전자상거래법은 문제가 생겼을 때 판매자와 직접 연락할 수 있는 연락처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기에 다른 정보를 추가하라는 사항이 애플쪽에 접수된 것으로 짐작된다. 현재 애플은 e메일 주소를 수집하지만 앱스토어에 보여주진 않고, 이용자들이 불편을 신고할 수 있는 서비스 페이지로 링크를 연결해 주고 있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변화가 있다. 11월29일부터 전자상거래법 일부 개정안이 발효된다. 현행 전자상거래법 제24조에서 결제대금예치 방식의 거래 제한을 10만원 이하 상거래에는 적용하지 않았는데, 워낙 소액 사기 등이 기승을 부리면서 지난 5월28일 10만원이라는 제한을 없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모든 상거래가 개정안의 적용을 받게 되면서 1달러 안팎 앱을 주로 파는 애플 앱스토어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애플과 구글이 이 법의 발효를 한 달 여 앞두고 판매자 정보 수집에 바짝 신경쓰는 것이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확실한 것은 이거다. 앞으로도 개인 개발자들은 개인 사업자나 통신판매업 등록을 할 필요는 없다. 지금처럼 앱을 개발하고 등록하고 업데이트하면 된다. 다만 곧 앱에 실명과 연락처와 주소 등 소비자와 연락할 수 있는 창구를 공개할 준비는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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