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TV가 없다고 하면 다들 ‘왜?’라고 묻는다. ‘안 불편해?’도 단골 질문이다. 나는 2가지 이유 때문에 TV를 사지 않았다. 비싸고 크기 때문이다. TV가 없으면 책을 더 읽을 것이라고 기대도 했다. 그런데 TV라는 가전제품만 없다 뿐이지 ‘기황후’, ‘무한도전’, ‘꽃보다누나’, ‘나혼자산다’를 빼놓지 않고 본다. 푹과 티빙, K플레이어, MBC TV 덕분이다.

스마트폰과 아이패드에 이 앱을 깔면 아이패드는 TV가 되고, 스마트폰이 곧 TV다. 거실의 TV와 다르게 이 TV는 나를 따라다닌다. 화장대, 침대 머리맡, 화장실, 싱크대, 현관 등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렇게 TV 없이 살다 보니 이젠 TV의 앞날을 걱정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답은 못 구했다. 어느 서비스의 이용권이 더 싼지는 따져봤지만, TV의 앞날을 예측하는 건 내 능력 밖이었다. 마침 티빙이 ‘TV를 보듯이’ 쓸 수 있는 기능을 2013년 12월 내놨다. 모바일TV가 가전제품 TV의 경험을 주겠다고 하니, 내 고민을 덜 비책을 품었을 것만 같았다.

케이블TV 사용자 붙잡는 무료 서비스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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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헬로비전에서 티빙 팀에서 일하는 표희찬 대리와 장기형 팀장, 곽유영 UX디자이너(왼쪽부터)


장기형 CJ헬로비전 UX랩 팀장은 티빙의 첫 모습부터 들려줬다.

“티빙의 전신은 '헬로tv i’예요. 케이블TV 이용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웹서비스였죠. 이용자가 서비스를 해지하는 걸 막으려고 내놨죠.”

CJ헬로비전은 케이블TV 사업자다. 그러면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이기도 하다. 티빙의 전신 헬로tv i는 케이블TV 사업자로서 가입자에게 혜택을 주는 서비스였던 셈이다. CJ헬로비전은 2008년 헬로tv i를 만들고 나서 2년 뒤 단독 서비스인 티빙을 출시했다.

티빙은 2010년 웹서비스에서 출발했다. CJ E&M과 지상파 방송 등 케이블TV에 나오는 채널을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2010년 11월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 앱이 나왔다. 2011년 9월 스마트TV에서도 쓸 수 있게 됐다.

헬로tv i를 티빙으로 바꾸면서 CJ헬로비전은 어떤 고민을 했을까. 장기형 팀장이 이어서 한 얘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케이블TV 사업은 서비스 범위가 국내로 제한됐고 방송 규제도 많습니다. 무엇 하나 바꾸려고 하면 기기 제약도 있지요. 이런 부분에 대응하고 미래 사업의 축으로 생각한 게 N스크린 서비스였습니다. 저희가 방송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 사업자이기도 하고요. 이걸 잘 할 수 있는 회사는 저희라고 생각했죠.”

TV 사업자는 '투잡'이 기본


티빙로고
▲ 티빙로고


티빙의 목표이자 핵심 기능이 방송 프로그램을 보여주기란 얘기다. 시청자가 TV 앞에 있든, 손에 스마트폰을 들었든 말이다. 당연한 얘기를 한 것 같지만, 이 목표 때문에 CJ헬로비전은 신경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스마트TV부터 스마트폰까지 전용 앱을 종류별로 만들고, 이용자가 접속한 단말기나 인터넷 환경에 맞게 방송 화질을 조절하고, 방송을 보다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트래픽 관리를 해야 한다.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 고민을 티빙의 경쟁 서비스도 할 것이다. MBC나 KBS, SBS도 별 수 없다. 지상파 방송사는 저마다 모바일TV를 만들었다. MBC는 MBC TV, KBS는 K플레이어, SBS는 쏘티를 만들었다.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도 겸업하는 셈이다.

티빙이 있는 시장에서 겸업은 흔하다. 티빙과 올레tv 모바일은 자체 프로그램을 만든 바 있다. 티빙은 생중계 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 올해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이다. 올레tv 모바일은 ‘열개소문’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두 곳 모두 방송사의 영역까지 탐내는 것이다. 티빙과 비슷한 미국의 넷플릭스는 ‘하우스 오브 카드’라는 드라마를 만들었는데, 에미상 후보에도 올랐다.

그러고 보니 티빙의 경쟁 서비스를 만든 회사는 출신이 다양하다. MBC, SBS, KBS와 같은 방송사, KT나 SKT, LGU+ 등 통신사, ‘TV스토어’를 운영하는 네이버와 같은 인터넷 서비스 회사, ‘곰TV’를 서비스하는 그래텍처럼 미디어 플레이어 회사 등이 있다. 비슷한 서비스를 다양한 영역에서 만든다는 얘기는 아직 누가 이끌어야 하는지 정해지지 않았단 얘기일 터다.

장기형 팀장은 “시장이 단기간에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말했다.

TV와 다르지만, TV처럼


티빙
▲ 티빙

하지만 TV 없이 TV를 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시장이 바뀐 게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장기형 팀장은 기존의 시청률 조사 회사들이 티빙의 시청률 자료에 기웃거린다고 말했다.

"시청자 행태가 바뀌었는데 실시간 시청률이 의미가 있느냐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안도 많이 들어옵니다. 티빙은 채널별 동시접속자 수를 봅니다. 티빙 앱에는 5분 단위로 보여주는데 실제론 실시간으로 파악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티빙으로 방송을 보는 게 TV로 보는 것만큼 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티빙과 같은 새로운 TV가 나오면서 차이점이 부각되었지만, TV는 TV라는 이야기다.

“티빙을 단순화하고 있어요. TV 본연으로 다가가려고 하지요. TV처럼 티빙을 열면 마지막으로 본 채널이 켜집니다. 티빙과 카톡을 같이 쓸 수 있고요. 요즘은 이어보기가 화두입니다. TV가 영상을 계속 틀어주는 것처럼 티빙에서 VOD를 몰아서 보게 하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우리가 TV를 보면서 친구와 카카오톡으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습관적으로 TV를 틀어두는 것처럼 사용자가 티빙을 쓰게 만들겠다는 말이다. 결국, 티빙의 목표는 TV라는 얘기이리라. 티빙이란 이름도 ‘TV의 현재진행형’이란 뜻이 아니던가. 'tving'은 'TV'에 진행중이란 뜻이 있는 ‘-ing’를 붙인 것이다.

이런, TV의 미래가 TV라니. TV가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TV처럼 단순하게 작동하는 단말기로 바꾼다고 풀이하는 게 더 맞겠다. 그러고보니 아이패드로 TV를 보면서 어느새 TV로만 쓰게 된 지 오래다.

티빙은 웹사이트와 아이폰, 안드로이드폰, 아이패드, 스마트TV 전용앱으로 서비스 중이다. 사용자 10명 중 6명이 모바일, 4명이 PC로 시청하며, 모바일 사용자 10명 중 7명은 안드로이드, 3명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로 접속한다.

티빙 시청자는 180여개 채널을 볼 수 있으며, CJ헬로모바일과 헬로TV, 헬로넷 사용자는 무료 혹은 할인혜택을 누릴 수 있다.

CJ헬로비전은 티빙에 아프리카TV와 비슷한 1인 방송 서비스 '티빙쇼'를 2013년 7월 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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