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이야기를 먼저 꺼내고 본론에 들어가자. 첫째, 이건 컴퓨터를 평범하게 쓰는 사람들에게는 굳이 살 필요 없는 기기다. 둘째, 필요한 사람이라면 누가 뭐라고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알아서 살 기기다.

애플 '맥프로' 얘기다.

맥프로를 처음 본 건 지난해 6월 세계개발자컨퍼런스(WWDC) 현장에서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로 3년만에 새 맥프로가 대중 앞에 섰다. 그런데 이제까지 맥프로를 감싸고 있던 웅장한 케이스 대신 한 손에 들 수 있을 것 같은 자그마한 케이스가 등장했다. 그날 WWDC에서 무료화를 선언한 매버릭스나, 완전히 새 옷을 갈아입은 iOS 속에서도 가장 머릿속을 울린 게 이 맥프로였다. 이 맥프로를 실제로 만져보기까지 꼬박 반 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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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cpro_1_500

그리고 다시 리뷰를 마치는 데 한 달이 더 걸렸다. 늘 맥을 쓰지만 아무리 봐도 내가 맥프로로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고, 단순히 벤치마크 테스트를 돌리는 것은 누구든 제품만 있으면 기계적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이다. 실제 이 빠른 컴퓨터가 현장에 들어갔을 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가 중요했다. 이미 맥프로의 예약판매 이후 영상과 음악을 다루는 스튜디오에서는 몇 대씩 예약이 들어갔고 여전히 공급이 받쳐주지 못하고 있다.

다시 봐도 놀랄 디자인

한 번 봤던 적이 있음에도 다시 본 맥프로는 여전히 작고 단단해 보인다. 당시에는 유리막 안에 들어 있어서 몰랐는데 겉 케이스는 아주 매끄러운 금속으로 돼 있었다. 용접이 아니라 한 덩어리의 재료를 누르고 깎아내서 가공했다. 부피는 이전 맥프로의 8분의 1이다. 이전 세대 맥프로를 꺼내고 그 자리에 놓으려니 휑하다. 새 맥프로의 자리는 책상 아래가 아니라 모니터 옆이다.

모든 단자는 뒤에 촘촘히 박혀 있다. 이 맥프로 안에는 모션 센서가 있어서 단자에 뭔가 꽂기 위해 맥프로를 살짝 움직이면 LED가 들어온다. 뒤에는 USB3.0 4개, 썬더볼트2.0이 6개 달려 있다. 무게는 5kg 정도인데 이게 단순히 가볍다는 것 정도 이상의 가치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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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cpro_01

맥프로는 사실 껍데기만 같을 뿐 속은 완전히 다르게 꾸밀 수 있다. 399만원에 팔리는 기본형에는 쿼드코어 제온 E5 프로세서와 AMD 파이어프로 D300 2개가 쓰이고, 필요에 따라 6코어 최고급형에는 12코어 E5 프로세서가 들어간다. GPU도 파이어프로 D500과 D700 가운데 고를 수 있다. 기본형만 해도 이만한 개인용 컴퓨터를 보기는 쉽지 않다. 간단히 노바 벤치마크를 돌려보니 2013 맥북에어에 비해 5배 가량 나은 성능을 낸다. 이는 SSD 성능 테스트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 때문으로 보인다. CPU와 GPU 속도만 해도 10배 이상 차이 난다.

크기만 보면 작은 PC같지만, 맥프로는 명확히 워크스테이션 범주에 들어가는 컴퓨터다. 윈도우PC에서는 둘 사이의 경계가 애매해지긴 했지만, 조립PC처럼 구성하는 게 불가능한 애플은 맥프로 외에는 대안이 없다. 맥프로를 선택하면 그 차이점을 확연히 보여준다. 이번에는 그 간격이 훨씬 넓고도 깊다.

일단 수치로 볼 수 있는 성능을 보자. 테스트에 쓴 맥프로는 최고급형으로 12코어의 제온 E5 프로세서, AMD 파이어프로 D700이 2장, 그리고 32GB의 시스템 메모리를 쓴다. 이 정도면 현재로서는 서버 용도가 아니라 다용도 컴퓨터로 쓰기에는 가격도, 성능도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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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cpro_test

▲맥프로(왼쪽)와 맥북에어 2013의 성능 비교. 벤치마크 도구가 낡아서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대략적인 차이는 가늠할 수 있다.


빠른 성능이 만드는 창의성

맥프로는 단순히 '빠르다'라고 느끼는 수준을 넘어선다. 대부분의 작업은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맥프로 뿐 아니라 워크스테이션은 단순히 벤치마크로 이 정도 성능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별로 의미가 없다. 진짜는 이걸로 뭘 얼마나 할 수 있느냐이다. 현장 이야기를 듣고자 실제 맥프로를 쓰고 있는 남궁연 씨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성능의 차이는 늘 쓰던 프로그램에서 가장 많이 느낄텐데, 예컨대 '프로툴스' 같은 프로그램이다. 프로툴스는 컴퓨터 리코딩 프로그램이다. 남궁연씨는 그동안 구형 맥프로를 작업 장비로 썼다. 그는 외부의 리코딩 장비를 쓰는 것보다 편리하고 소리가 좋아서 최근의 녹음 작업을 대부분 프로툴스로 해 왔는데, 얼마 전부터 한계에 이르렀다. 소리에 효과를 입히는 소프트웨어 플러그인들이 버거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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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udiofat

우리는 MP3 같은 음악 파일을 아주 가볍게 다루지만 실제 음악을 만들 때는 컴퓨터 성능을 엄청나게 활용한다. 특히 곡 하나에 수백개의 플러그인이 붙으면 제 아무리 맥프로라고 해도 재생이 원활하게 되지 않았다. 새 맥프로는 무거운 플러그인을 계속 걸어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12코어의 프로세서도, 하드디스크도 조금의 스트레스조차 받지 않았다. 최근 음반을 작업할 때 구형 맥프로로 애를 먹었던 모습을 자주 봐 왔기에 이같은 속도 향상은 놀랍다.

'파이널컷 프로X'을 돌려보니 더 놀라웠다. 맥북에어는 물론이고 맥북프로에서도 파이널컷 프로X에서 아이폰으로 HD 동영상을 편집할 때는 약간의 인내가 필요하다. 물론 효과를 걸어놓고 예전처럼 기다린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편집 도중에 렌더링을 하거나 다 만든 영상을 뽑아내는 과정에서 약간의 스트레스가 있었다. 애플이 맥프로에서 편집 테스트를 할 때 써보라며 4k 영상 샘플을 건네줬는데, 용량이 자그마치 100GB에 이르렀다. 맥프로는 이 파일들을 순식간에 불러와 실시간으로 편집을 해냈다.

가장 놀란 것은 4k 영상 16트랙을 한 번에 올리고 멀티캠으로 실시간 편집을 해도 마치 720×480 정도의 영상을 편집하는 것처럼 가볍다. 또한 파이널컷 프로X은 효과를 입힐 때 보통 렌더링을 해 두는데, 맥프로는 렌더링이 필요 없다. 그 자체로도 미리보기를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결과물에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니까 동영상을 포토샵 편집하는 기분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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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cpro_03

단순히 빠르고 좋은 컴퓨터가 나왔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컴퓨팅 파워가 필요한 음악, 동영상 등에서 할 수 있는 게 더 많아졌다는 점이 워크스테이션으로서 가장 큰 발전이다. 이 부분에서 남궁연 씨는 '격세지감'이란 단어를 꺼내들었다.

“이전에는 컴퓨팅 성능 때문에 실시간으로 효과를 주지 못하고 트랙에 아예 플러그인을 입힌 채로 녹음한 다음에 이를 다시 덮어쓰는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동영상도 마찬가지로 일부를 수정하면 이곳저곳 렌더링을 다시 하는 것이 골칫거리였는데 그 문제가 싹 사라졌어요. 효율성이 높아졌습니다.”

스토리지 속도도 빨라지면서 CPU의 성능을 더 많이 끌어낼 수 있었다. 남궁연 씨가 가장 애를 먹었던 것은 프로툴스의 플러그인들이 수십개만 걸려도 하드디스크가 각 샘플을 원활하게 끌어당기지 못하는 문제였다. 맥프로에선 이전에 쓰던 하드디스크보다 10배 정도가 빨라졌다. 그나마도 수치상 그런 것으로, 실제로는 파일이 저장되고 복사되는 과정 자체가 잘 보이지 않았다. 1초면 1GB를 복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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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cpro_04

남궁연 씨는 “빨라서 좋은 건 둘째치고, 그 동안 못하던 것을 맥프로를 통해 할 수 있게 된 점이 좋았다”라고 설명했다. 컴퓨터로 음악과 영상 작업을 할 때는 절대적으로 컴퓨터 성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맥프로는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성능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는 “이전까지는 맥프로에서 작업하고 스테이지에서 공연할 때 무거운 맥을 들고 가거나, 따로 맥북프로를 1대 더 운영해야 했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영상을 편집해야 할 때도 이전에는 가편집 상태로 맥을 가져가서 바로 실행해야 했지만 새 맥프로를 쓰면서부터는 인코딩까지 마쳐 완제품을 가져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100% 성능을 끌어내서 써보지는 못했지만, 몇 가지 작업을 하면서 컴퓨터를 잊게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맥을 쓰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해야 할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고 시스템을 관리하거나 운영체제를 다스리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맥을 켜고 바로 글을 쓰고 사진을 편집하는 그 일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워크스테이션의 영역까지 똑같다.

저장 공간의 부족, 선더볼트로 전환

문제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남궁연 씨는 애초 맥프로에 매우 만족스러워했는데 며칠만에 한 가지 문제가 슬슬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저장공간이다. 맥프로에는 보통 500GB의 SSD가 들어간다. SSD로는 큰 용량이지만 이 저장공간에 파이널컷 프로X과 로직X, 프로툴스 등의 응용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각 플러그인 수 백개를 올리니 맥없이 찼다. 그런데 4k 영상은 용량이 어마어마하다. 몇 분만 찍어도 수십 GB에 이른다. 심지어 아이폰 2대로 몇 시간동안 찍은 영상을 편집하니 스토리지 수십 GB를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절대적으로 저장공간이 부족하다.

용량을 1TB로 늘릴 수는 있지만 가격이 비싸고 그런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맥프로는 CPU와 GPU의 성능,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스토리지의 성능까지는 잡았지만 아직까지도 비싼 SSD의 장벽을 넘을 수는 없었다. 그동안 잘 쓰던 외장 하드디스크를 꽂았는데, 1초에 1GB씩 휙휙 오가던 컴퓨터에서 갑자기 100MB가 간신히 나오는 하드디스크를 쓰자니 답답했다. USB3.0으로 SSD를 연결해도 답답할 정도로 맥프로의 스토리지 속도는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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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cpro_05

결국 선더볼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선더볼트2.0은 1초에 20GB의 자료를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에 외장 하드디스크라고 해도 성능에는 전혀 영향이 없다. 결국 DAS와 SSD를 함께 주문하는 것으로 소동은 일단락됐지만, 아직까지 SSD의 용량은 고성능 컴퓨팅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한편으로 새 맥프로의 방향을 확장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새 맥프로는 속을 쉽게 열어볼 수 있지만 사실상 만질 수 있는 부분은 별로 없다. 메모리 업그레이드 정도가 전부다. 나중에 프로세서나 GPU를 바꿀 수 있기는 하지만 다른 장치를 더 꽂는 건 불가능하다. 이걸 선더볼트가 대신한다. 이전에는 PCI와 선더볼트를 병행했다면 애플은 이제 100% 선더볼트로 옮긴다. 포트는 넉넉하지만 이내 맥이 문어발이 됐다. 주변기기 업체들은 새로운 의미의 확장성을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됐다.

가격과 가치, ‘도구가 주는 즐거움”

마지막으로 가격 이야기를 해보자. 맥프로는 싸게는 399만원, 비싸게는 1400만원에 달한다, 여기에 메모리나 SSD를 올려 더 비싼 제품도 주문할 수 있다. 가격을 보면 '헉'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나도 처음에는 너무 비싼 가격은 맥프로의 단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맥프로는 일반적인 PC 이용자가 구입해야 하는 물건은 아니다. 꼭 필요하다면 기본형을 사도 맥북프로나 아이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실제 맥프로가 필요한 현장에서는 작업 속도를 끌어올리고 창의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면 그 가치를 돈으로 매길 수 없다. 그래서 “이 정도 성능이면 싸다”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엄청난 용량의 4k 편집이 주 목적이 아니라면 기본형으로도 상당히 많은 작업들을 할 수 있다. 400만원 정도로 효율을 얻는 편이 경제적인 사례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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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cpro_02

각 프로세서나 GPU, SSD 등을 직접 구입해서 조립한 가격과 맥프로의 가격은 거의 차이가 없다. 무엇보다 미디어를 다루는 현장에서 파이널컷 프로, 로직, 프로툴스 같은 전문 프로그램들은 손에 익으면 대체할 방법이 없다. 이래저래 구형 맥프로를 어르고 달래서 써 왔던 이들에게는 또 다시 선택의 여지 없이 가장 효율적인 컴퓨터는 맥프로일 수밖에 없다. 참, 안타깝지만 디자이너나 엔지니어가 더 이상 렌더링 걸고 쉬는 호사는 사라진다. 가격과 가치는 또 다른 문제라는 남궁연 씨의 이야기로 마무리 한다.

“맥프로를 쓰면서 도구가 주는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가마가 안정적이면 더 좋은 도자기를 구워낼 수 있는 것처럼, 작업 자체가 즐겁고 스트레스 없이 집중할 수 있었어요. 그 즐거움이 맥프로가 주는 가장 큰 가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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