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사 댓글에 가장 자주 보이는 말이 뭔지 혹시 아시나요. "이딴 쓰레기 기사"하는 식의 댓글입니다. 요즘 기자는 '기레기'로 불리기도 합니다. 요즘 온라인 기사판은 그야말로 누더기입니다. 새로 나온 ‘야동’ 제목인지 기사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죠. 글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인데, 사진은 '눈 감고' 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홈페이지에서 기사 제목을 보여주는 대신 언론사 목록을 보여주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옷 살 여유조차 없어 보이는 여인분들 사진이 언론사 1면을 뒤덮었습니다.

'1등 언론'을 자처하는 아무개 종합일간지는 똑같은 소재를 여러 기사로 쓰되, 제목만 바꾼다지요. 그런 식으로 하루에 네이버로 전송하는 쌍둥이 기사가 무려 60여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소재일수록 더합니다. 검색에 더 잘 걸리도록 유도하기 위한 꼼수입니다. 어디 1등 종합일간지뿐입니까. 너도나도 이 진흙탕 싸움에 한 발 걸치고 있습니다. 비극판에서 뒤엉킨 기사를 보자면, 아이러니하게도 이만한 희극이 또 없습니다. 사태가 얼마나 심각하면, 얼토당토않은 제목을 붙인 ‘낚시성’ 기사만 따로 모아 보여주는 '충격 고로케’ 같은 웹사이트도 문을 열었겠습니까.

배우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인생을 논한 찰리 채플린에게 조금 미안하지만, 국내 언론 생태계에 붙여도 손색 없는 말입니다.

이쯤에서 ‘저널리즘’을 생각해봅시다. 저널리즘이 뭔가요. 거창한 개념은 아닙니다. 언론의 보도 행태를 말하는 단어일 뿐이죠. 권력과 돈으로부터 자유롭게 진실과 옳음을 말할 권리. 언론의 숙명과 다름 아닌 말입니다. 지금 우리의 저널리즘은 어디까지 떨어졌나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어떻게 가야 할까요. 수많은 물음이 스치는 까닭에 ‘블로터포럼'을 기획했습니다.

한발 느린 뉴스를 가치로 내 건 ‘슬로우뉴스’의 편집장 민노씨를 블로터포럼에 모셨습니다. ‘ㅍㅍㅅㅅ’의 이승환 편집장도 초대했어요. ㅍㅍㅅㅅ의 재기발랄한 언어와 큐레이팅 방식의 신선함은 온라인 저널리즘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최진순 한국경제신문사 기자도 블로터포럼 초청장을 흔쾌히 받아들었습니다. 저널리즘을 이야기하는 개인 블로그 ‘온라인저널리즘’에서 온라인 미디어의 새로운 저널리즘을 고민하고 있지요. 최진순 기자는 건국대 언론정보대학원 겸임교수도 맡고 있습니다.

이번 블로터포럼 기획 의도가 다른 언론사에 생채기를 내려 한 것 아니냐는 식으로 비쳐질까 걱정되긴 합니다. 아닙니다. ‘밑바닥 저널리즘'의 칼날은 블로터닷넷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앞에 나서 잘난척하겠다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어디 잘난 구석이 있어야 말이지요. ‘블로터포럼’은 업계 이슈를 정해 좌담회를 꾸리는 자입니다. 이번엔 '온라인 저널리즘의 미래'를 주제로 정했을 뿐이고요. 국내 온라인 미디어의 저널리즘을 걱정하는 시민의 마음으로, 눈을 찌푸리는 독자의 눈으로, 그리고 이 희극과 비극 사이를 오가는 언론판에서 ‘기자질’의 미래를 걱정하는 기자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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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시: 2014년 2월26일 오후 6:30

  • 장소: 모임 공간 토즈(Toz) 홍대점

  • 참석: 민노씨 슬로우뉴스 편집장, 이승환 ㅍㅍㅅㅅ 편집장, 이희욱 블로터닷넷 편집장, 최진순 한국경제신문 기자, 오원석 블로터닷넷 기자.



저널리즘의 오늘과 책임 공방

오원석: 누구나 아는 얘기로 먼저 시작해 보자. '네이버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있다. 네이버에서 잘 보이는 기사를 써야 돈이 되기 때문에 자극적인 사진들로 기사가 채워지는 현실을 비판하는 말이다. 네이버 책임론과 언론사 나태론 둘 다 오르내리는 상황인데, 이 같은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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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노씨: ‘작업'하시는 분들이 가련하다. 기자 역할을 못 하는 분들이 안타깝다는 소리다. 예전에 네이버에서 뉴스스탠드를 도입하기 전에 마련한 토론회에 나간 적이 있다. 슬로우뉴스만 유일하게 뉴스캐스트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그랬더니 모 언론사에서 “우리도 쓰기 싫다. 환경이 강요하는데 어쩌라는 말인가”라며 반문하더라.

인간적으로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언론은 특수한 조직 아닌가. 지금 우리 언론은 존재 이유를 생각해야 할 때다. 생존의 이유가 존재 이유를 넘어설 수는 없는 거다. 쓰레기 생산하는 게 무슨 언론인가. 아니 차라리 그럴 거면, 네이버에서 우리 슬로우뉴스를 넣어주든가. 우리가 다른 언론사보다 더 잘 할 자신 있다(웃음).

오원석: 넣어달라는 말이 다양하게 풀이된다. 진흙탕을 비판하면서도 참여하겠다는 얘기로 들리는데.

민노씨: 다른 얘기다. 네이버는 사기업인 탓에 사유재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포털사이트인 만큼 공공재 성격도 있다. 공공시설이 쓰레기더미로 넘쳐나는 셈인데, 거기서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의미였다. 네이버가 사기업이자만, 공공재 차원에서는 독자가 읽을만한 콘텐츠를 배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최소한의 계약으로서의 사회적인 책무를 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희욱: 유통 채널을 지금처럼 포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먼저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어뷰징이나 똑같은 기사를 여럿 내보내는 행위는 독자의 트래픽이 들어오기 때문이고, 곧 돈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잘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대안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어떤 언론이든 네이버 검색제휴에 목을 매고, 네이버 첫 화면에 들어가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들어가는 순간 트래픽이 들어오고, 곧 돈을 벌 수 있는 그런 사업 모델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그 대안에 네이버도 일정 부분 기여해야 한다고 본다. 포털로서의 책무도 생각해야 한다.

이승환: 네이버 저널리즘을 문제 삼기에는, 언론사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네이버 처지에서야 언론사 몇 개 인수하는 쪽이 편하긴 할 텐데, 워낙 죽어라 까대니 매달 언론사에 용돈 쥐여주는 형국이다. 뉴스 편집권을 가지는 것도 부담일 것이고. 검색어 어뷰징도 마찬가지다. 중소 언론이야 쫓아낼 수 있지만, 대형 언론사는 그럴 수 없다. 그냥 방치하는 것 같다. 물론 네이버가 좀 더 책임감을 가졌으면 좋겠지만, 사실 저런 거(실시간 검색어) 검색하는 독자 입장에서는 뭐 딱히 잃을 것도 없잖은가.

최진순: 우리가 바라본 네이버나 다음의 뉴스 유통 플랫폼은 과연 좋은 뉴스, 좋은 저널리즘을 독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작동됐는가 질문해야 한다. 언론사 책임론과는 별개로. 네이버나 다음이 보여준 뉴스 서비스 행태는 독자의 바람과 기대치에 턱없이 부족할 정도로 연예뉴스나 저급한 뉴스가 더 선호되는 구조로 심화돼 왔다고 본다. 지난 10여년 동안.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지만(뉴스캐스트 → 뉴스스탠드), 그것도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용자 관점에서 수준 있는 저널리즘을 제시하지 못해 정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어쩌면, 좋은 이용자의 좋은 뉴스 선별을 가로막는 서비스 구조로 집중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 같은 관점에서 포털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TV에서 예능 프로그램 방영하면, 왜 그걸 언론사가 실시간으로 쏟아내는 뉴스를 모두 수용하고 있는지 정말 의문이다. 이런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언론의 책으로만 돌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포털 책임론은 지금도 유효하다.

전통매체 관점에서 보면, 우선 전통매체가 포털을 이해하는 수준, 즉 언론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포털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관한 이해가 늦었다고 본다. 그러나 언론사 내부에서도 최근 포털에 대한 진지한 이해가 시작됐다. 주로 주요 매체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는데, 기사 유료화나 새로운 형식의 기사를 실험적으로 쓰거나 하는 것이다. 전통매체가 포털에 대한 이해가 늦긴 했지만, 다음 단계에서는 전통매체와 포털 사이에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질 것도 같다.

지금까지가 실패한 모델이라면, 더 긍정적인 모델이 나올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유료 서비스라든가 아니면, 기자 개인의 브랜드를 앞세우는 전략이라든가. 일단 지난 10여년 동안 포털과 언론사가 이어온 관계를 소극적이고 제한적인 관계로 규정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양상은 다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언론사 내부에서 피어오르고 있다. 최근 변화상이다.

민노씨: 이견이 있다. 언론이 포털과 새로운 공생을 모색하고, 실험한다는 부분은 당연히 환영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독자 스스로 뉴스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뉴스를 어떻게 소비하느냐의 문제다. 뉴스 자체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독자 스스로 지난 10여년 동안 이어진 언론사와 포털의 뉴스 서비스에 길들었는 얘기다. 이건 마치 조건반응이다. 야한 뉴스 올라오면 침 흘리며 클릭하는 또 다른 파블로프 실험처럼.

포털에 들어가면, 독자를 즐겁게 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자극이다. 댓글로 싸지르고 나오는 거지. 포털의 뉴스 댓글은 토론의 공간이나 감정의 토로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당파, 혹은 연예인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까는 감정적인 배설구 역할을 하고 있다. 독자는 지금까지 그런 방식으로 움직이도록 조금씩 길들여져 온 것이고.

최진순 기자님의 새로운 공생관계를 모색하고 있다는 말은 양식 있는 독자를 상정한 말 인 것 같다. 그러나 양식 있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 냉정하게 말해, 그런 독자가 많았다면 사태가 이 지경 까지는 안 왔을 것으로 본다. 물론, 책임의 소재를 전적으로 독자에게 돌리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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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순: 민노씨의 지적에도 일반론적인 관점에서 동감한다. 온라인 이용자가 과연 양질의 뉴스를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경험을 갖고 있는가는 논쟁거리라고 보지만. 하지만 전통매체가 포털에서 얻고자 했던 목표는 전통매체가 기존 독자 외에 다양한 독자와의 접점을 얻으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원래의 전략과 목표였다.

그 점에서 포털과 매체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은 네이버나 다음에서 들어오는 독자를 가려낼 수 있는 정교한 작업이 과제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노씨: 뭐, 사실 나도 그런 이용자중 하나다. 나도 자극적인 것 보면 누르기는 한다.

최진순: 최근 내가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오늘은 처음으로 네이버에서 뉴스를 단 한 건도 안 읽은 날이다”라고. 따지고 보면, 3년 전에는 어떤 경로로든 어떤 방송사의 뉴스를 단 한 번도 읽지 않은 날이 있었다. 5년 전에는 또 다른 방송언론의 뉴스를 한 번도 보지 않은 날이 있었고. 그 이전에는 종이신문이 있었겠지. 실제로 타사의 종이신문을 보지 않은 것이 한 10년 됐다.

말인즉슨, 독자는 직업이나 소득을 떠나 다변화되는 플랫폼에 적응하고 있다는 얘기다.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거시적으로 봤을 때 뉴스를 소비하는 독자의 진화도 눈부신 것은 사실이다.

저널리즘은 특정한 시장, 예를 들어 언론 생태계에 의해 정의되는 개념이 아니다. 사회의 전반적인 요소가 누적된 결과물로서의 저널리즘이다. 슬로우뉴스도 그렇고, ㅍㅍㅅㅅ도 그렇고, 블로터도 마찬가지인데, 전통매체의 모자란 점을 비판해 승부하기보다는 앞으로 더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고, 독자가 좋아할 수 있는 것을 이끌어내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저널리즘의 혁신, 어떻게 이루나

이희욱: 문제 많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다른 얘기도 해보자. 지금처럼 획일화되고 하향평준화된 언론 환경에서 창의적이고 다른 관점을 가진 다른 방식의 미디어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내부의 혁신이 됐든, 아니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새 언론이 나오든. 새로운 시도에 관한 얘기가 듣고 싶다.

최진순: ㅍㅍㅅㅅ이나 슬로우뉴스, 블로터 등 새로운 전문 미디어나 신생 인터넷 미디어가 과연 한국에서 어떠한 영향력을 갖고 지속 가능한 모델로 성장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에는 의문이다. 결국,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사회에서 이 같은 언론 모델이 각광받고 있는 까닭은 그 사회가 갖춘 담론과 교양의 수준 덕분이다. 정치의 그릇과 지식인들의 태도도 그렇고. 이용자의 의식 수준이 종합적으로 갖춰져 있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는 이 같은 신생 미디어의 붐업에 취해 낙관론을 가지는 걸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장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기존 매체가 가진 시장을 빼앗아 오는 구조여야 이 모델이 지속가능한 모델일 것이다. 예를 들어 ㅍㅍㅅㅅ이나 슬로우뉴스의 경쟁력은 차별화된 뉴스 스토리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자본을 가진 이들이 언제나 똑같이 따라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많은 광고주와 영향력을 가둘 수 있는 전통매체와 경쟁하기 때문이다. 과연 자생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신생매체는 전통매체와 연대, 결합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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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4월부터 네이버의 뉴스캐스트(위)가 뉴스스탠드로 바뀌었지만, 언론은 변하지 않았다.


민노씨: 최진순 기자 말은 전통 미디어와 결합해 뭔가 좀 더 쿨하게 될 것이라는 얘긴데, 지금은 우리가 가진 참맛을 더 갈고 닦아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앞으로 1~2년 정도는 더. 전통매체와 신생미디어가 대등한 관계로 연합해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부분은 예측일 뿐이지만, 아마 어렵지 않을까. 찬물과 뜨거운 물이 섞여 미지근해지거나, 혹은 신생매체가 전통매체에 이용당하는 시나리오도 생각해야 한다.

최진순: 전통매체와 신생매체를 아우르는 지점이 분명 있을 것으로 본다. 협업의 지점은 만들기 나름 아닌가. 나는 이런 생각도 한다. 매체의 지면이나 웹사이트가 과연 명망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담아야 하는가. 그건 아니다. 지금은 좀 더 독자의 생활에 밀착적이고 동료의 시각을 담고자 하는 스토리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더 다양한 시각을 담을 수 있는 플랫폼이 되도록 현재 우리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는 것이 마지막 남은 생존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또, 전통매체 기자들은 ㅍㅍㅅㅅ이나 슬로우뉴스 등등 매체를 여전히 잘 모른다. 그런데 일부 기자는 이 같은 매체의 신선함이나 굉장히 수준 높은 시각을 보며 칭송하는 부류도 분명 있다. 나는 이런 신생매체와 전통매체 기자 사이에 소통의 장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서로 자극이 되도록.

예를 들어 김광현 기자(한국경제신문, 필명 '광파리')와 블로터가 프로젝트를 함께할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연결 지점을 만들자는 얘기다.

이희욱: 그렇게 하려면, 전통매체도 파트너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할 것 같다. 블로터도 기존 매체와 제휴를 모색한 적이 더러 있었는데, 그냥 콘텐츠 공급자(CP)로 대하는 경우가 많더라. 협업이 아니라.

최진순: 확실히 그렇긴 하다. 그래서 전통매체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새로운 시도를 새로운 저널리즘으로 활용하거나 비즈니스로 활용하는 것에 친밀성이 떨어진다. 합리적인 접근모델이 없는 상태에서 신생매체와 만나게 되는 것은 분명 전통매체 내부의 문제다. 내부에 끊임없이 다른 모델이나 패턴을 주문하고 자극해야 한다.

이희욱: 흔히 말하는 전통매체라는 것을 기존 언론이나 방송이라고만 생각하면 안 된다. 충분히 우리 같은 신생매체가 활용할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을 찾아야 한다. 그게 포털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다른 언론사가 될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니면 비슷한 의식을 갖고 출발한 전문 미디어가 될 수도 있고.

민노씨: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슬로우뉴스도 폐쇄성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제안만 있다면, 얼마든지.

최진순: 지금보다 좀 더 진취적인 생각을 갖고, 그런 방향에서 연합이 다뤄져야 할 것이다. 솔직히 쉽지만은 않겠지. 연합을 도구적인 개념으로 보는 탓이다. 확장과 관계의 개념으로 진화해야 한다. 필수다. 그렇게 되려면, 주고받는 것이 명확해야 한다. 근데 그게 과연 뭘까. 그걸 우리가 찾아야 한다. 확실히 어렵다. 전통매체는 전통매체 나름대로 보도관행과 프레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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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 기본적으로 전통매체와 신생매체는 똑같은 선상에 있다. 결국, 누가 고객을 만족하게 하느냐의 문제다. 굳이 뉴스가 아니라 다 마찬가지겠지만.

생각해보자. 지난 10여년 동안 게임은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그런데 뉴스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뉴스가 가장 재미없는 판이다. 아직까지 쿨하지 않은 형식으로 남아있다. 방송도 진화했잖은가. 케이블 생기고 종편도 나왔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서로 차별화하려는 노력을 한다.

앞으로는 지금까지 뉴스라고 여겨졌던 정의는 바뀔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유지된 뉴스와 매체 형식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집앞에 있는 신문 가판대에서, 무가지로 갔다가 다시 온라인으로 변화하지 않았는가. 아이폰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스마트폰에 별 니즈를 못 느꼈다. 아이폰이 나오니까 세상이 변했다. 지금까지는 방송이 변했고, 앞으로는 뉴스의 형식이 변화할 것이라고 본다.

이희욱: 뭔가 파괴적인 그런 것이 좋겠다. ㅍㅍㅅㅅ 처음 나왔을 때 정말 신선했다. 슬로우뉴스도 마찬가지였고. 이렇게도 기사를 낼 수 있구나 싶더라. 블로터도 처음 출발할 때는 기존 매체의 관성화된 글쓰기 방식이 싫어서 시작한 건데, 시작하고 좀 지나니 우리도 꼰대가 돼 있더라(웃음). 그게 익숙한 거다. 알게 모르게 우리한테 각인돼 있던 거고.

자, 그렇다면, 이 같은 파괴적인 시도가 과연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느냐. 이게 문제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을 것이고, 내부의 문제도 있을 것이고. 짧은 혁신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기존 매체와 관계를 맺는 것도 좋지만, 혁신의 연대나 새로운 미디어의 성공 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몇 번 꿈틀대다가 사그라지는 것을 너무 많이 봤기에.

콘텐츠로 말하는 저널리즘의 혁신

오원석: 콘텐츠 얘기도 해보자. 요즘 뉴욕타임스 보면, 눈이 돌아간다. ‘스노우폴’ 기사가 특히 그랬다. 올림픽 기간에는 일본 아사히신문이 온라인에서 아사다 마오의 ‘라스트 댄스’ 기사를 만들었다.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온라인이라면 콘텐츠의 형식도 혁신해야 한다고 본다. 어떻게 생각하나.

최진순: 온라인 콘텐츠 측면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테크놀로지다. 20세기에 기사를 쓰던 이들은 기술을 몰라도 됐다. 기술은 저널리즘과 무방하다고 보거나 하부 조직 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해외에선 기술을 주요하게 다룬다. 2003년에 미국언론연구원(API)에서 온라인저널리즘 디플로마 과정을 받았는데, 그때 텍사스 지역신문 교포와 함께 수업을 들었다. 그 사람 명함을 보니 '웹디자이너/저널리스트’라고 쓰여 있더라. 의아해서 물었다. 웹디자이너인데 저널리스트라고? 그 교포가 그러더라. "나는 웹디자이너로서 신문사 편집회의에 참여한다”라고. 그는 편집회의에서 중요한 발언을 한다고 했다. 뉴스를 매만지는 모든 사람이 기자이지 그럼 누가 기자냐고 오히려 되묻더라. 그게 무려 12년 전 일이다.

지금 한국의 매체는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나 양상 모든 측면에서 이 같은 정신이 결여돼 있다. 여전히 제한적이고,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미세하지만 물론, 변화는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런 식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들이 있다. 등 떠밀려서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접근하는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문제는 이것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토대를 갖췄느냐는 것이다. 이 같은 새로운 서비스를 계속 만들게끔 하는 동력은 독자의 적극적인 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독자가 언론의 새로운 시도를 과감하고 뜨겁게 격려해 주지 않으면 일회성 시도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희욱: 콘텐츠와 기술은 조금 나눠서 보고 싶다. 콘텐츠는 결국 차별화 문제일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 네이버 기사에 네이버 ‘라인’ 얘기가 깔렸다. 일본에서 라인이 행사를 열었다. 그런데 한국은 라인 기사가 다 똑같다. 해외는 다르다. 테크크런치가 다루는 라인 얘기 다르고, 더넥스트웹이 하는 얘기가 다르다. 결국, 국내 매체는 관점이 없는 기사를 쓰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기존의 스트레이트 기사 강박에서 벗어나 논조가 있고 당파성을 견지하는 기사를 생산하는 것이 콘텐츠를 바꾸는 기본이 아닐까 생각한다.

국내 매체는 이른바 ‘팬'이 없다. 정치적인 ‘지지'만 있을 뿐이다. 조선일보에 팬이라고 부를 만한 이들이 과연 있을까. 오마이뉴스라고 과연 팬이 있을까. 정치적인 지지만 있을 뿐이다. 팬은 기사로 만드는 것이다.

최진순: 동의한다. 아까 스노우폴을 얘기한 것은 기술만능주의 얘기는 아니었다. 기술에 앞서 언론을 선택하고, 미래가치를 높이는 것은 저널리즘이 가진 본연의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공정성과 객관성이지. 기술을 앞세워 포장하는 것과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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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욱: 기술 면에서 콘텐츠 얘기를 하자면, 2013년 1년 동안 뉴욕타임스는 스노우폴 같은 인터랙티브 기사를 57개 올렸다. 1주일에 하나씩이다. 이건 국내 최대 언론사도 못 할 것이다. 인력과 비용을 따져보자. 지속가능한 여력이 있는지 의심된다. 그나마 국내에선 종합지이기 때문에 시도라도 할 수 있지, 우리는 시도조차 못 한다. 인력도 없고, 기술 갖추기도 힘들다.

그래서 기술적인 새로운 시도에도 표준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인터넷에 맞게 새로운 글을 쓸 수 있도록 기술을 모듈화하고, 이를 표준화하는 작업 말이다. 그런 것을 오픈소스로 공개해 미디어가 나눠갖고 자신에 맞게 발전시키면, 온라인 매체 전반의 테크놀로지 환경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포털사이트도 문제다. 매일경제가 ‘당대불패’란 인터랙티브 기사를 써도, 포털사이트에선 받아들일 수 없다. 포털사이트가 인터렉티브 기사 페이지를 지원하지 않는 까닭이다. 콘텐츠를 얹고 싶어도 못 얹는다는 얘기다.

이승환: 스노우폴이나 인포그래픽이 이슈인데, 제아무리 완성도가 높아 봐야 유행 수준을 벗어날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전통 언론사의 그런 시도는 의미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 어떻게 더 전달력을 높일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트레이트 기사와 박스 기사 형식을 깨는 것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버즈피드의 상위 인기 공유 콘텐츠는 주로 퀴즈가 많다. 뉴욕타임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사는 각 주를 비교하는 인터랙티브 기사이기도 했다. 꼭 스노우폴뿐만이 아니라.

최진순: 무엇보다 국내에서는 기자 스스로 도구를 활용하는 데 적잖이 거부감을 갖고 있다. 심지어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그걸 내가 왜 하느냐고 생각하는 기자들이 많다.

오원석: 일종의 기자 권위주의인가?

최진순: 교육의 문제다. 기계적으로 뉴스를 만들고 훈육하는 그런 교육 말이다. 국내 교육은 좋은 대학 가서 직장에 취직하는 도구적인 교육이다. 생의 본질을 탐색하려는 교육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수렴해서 더 나은 길, 다른 길로 가는 의지 자체를 꺾어버리는 수동적인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전통매체를 보면, 답이 없다. 아니 왜 전통매체는 스토리파이 못 쓰는 건가. 그걸 왜 신생매체만 하고 있는 것인가. 기자 타이틀을 달면 다른 모든 기술과 배움이 무의미해지는 환경도 한몫한다.

이희욱: 기자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웹사이트 구조 자체가 예전 웹 초기 형태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신문사의 웹사이트 기사 페이지에 트위터 트윗 을 따다가 집어넣을 수 있나? 아마 안 될 거다. 기사에 사진 하나 넣는 것도 디자인팀 거치고 그럴거고. 시도 자체를 못 하고 있다.

플랫폼 측면에서 신생매체는 웹표준을 따르는 식으로 진화한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새로운 기능을 활용하고 있다. 굳이 스노우폴이 아니어도 된다. 오픈소스 기술을 활용하는 도구도 많고, 이를 빠르게 반영할 수 있다. 신생매체의 장점이다. 전통매체가 과연 그리로 갈아탈 수 있느냐 하는 점에 의문이다. 하부조직을 따로 만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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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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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신문의 아사다 마오 헌정기사 '라스트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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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loter_forum_journal_5_500


매일경제 '대한민국 1번마, 내 이름은 당대불패'


최진순: 사실 그건 경쟁의 결과다. 한국에 상주하고 있는 일본 언론 특파원을 만나 물어본 적이 있다. 인터넷매체가 일본은 몇 개가 있느냐고. 그분이 그러더라 자기가 하는 한 500개가 넘지 않는다. 인구를 고려했을 때 일본과 우리나라가 얼마나 많이 차이가 나는가. 2013년 12월 기준으로 등록된 인터넷매체만 해도 국내엔 5천여개 정도인 것으로 내가 알고 있다. 인구 규모와 경제성장률, 정치상황 등 미디어를 둘러싼 외적 환경을 모두 고려하면 국내 매체는 내부를 혁신하려는 투자를 할 여력이 전무하다. 너무 많은 경쟁자가 제한적인 시장에서 옴짝달싹 못 하고 갇혀 있는 형국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스노우폴 같은 기사를 만들어야 할까. 뉴욕타임스도 1년에 57개밖에 못 만든다. 근데 이걸 국내 매체가 소화할 수 있을까. 이 같은 콘텐츠 혁신이 아니라 다른 대안을 찾아봐야 할 것이다. 결국 저널리즘의 초심과 언론의 기본기를 다지는 것이 잃어버린 독자를 찾는 첫 발걸음이라고 본다.

이희욱: 예전과 비교해 지금은 정보와 도구가 널려있는 시대다. 기획과 시도의 문제가 될 것이지만, 이를 활용하고 조합하기 위해 기자와 언론 스스로가 기획자 내지는 프로젝트 매니저(PM)가 돼야 하지 않겠나.

최진순: 내가 전통매체 처지에서 나와서 전통매체 얘기를 대변한 감은 없잖아 있다(웃음). 한마디 더 하면, 지난 10여년의 세월은 전통매체가 비현실적 감각으로 불완전하게 융합해 불충분한 협업을 하며 망가져 온 시기라고 본다.

얼마 전에 이상화 선수가 페이스북에 소치 올림픽에 대한 감상과 함께 "연아야 너는 이미 금메달리스트야, 누려”라고 사진을 함께 찍어 올렸더라. 언론 처지에서 보면, 이상화 선수는 취재원이다. 이상화 선수가 자신의 소셜 계정에 독창적인 스토리를 올리고, 댓글을 받고 하는 그런 과정을 보면서 결국에는 슬로우뉴스나 ㅍㅍㅅㅅ 같은 매체가 그런 것의 진화 형태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이런 시도가 나오겠지.

그렇다면 전통매체는 이 같은 변화를 기사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어떻게 관계를 맺을까를 고민하는 것이 저널리즘의 기본기를 찾는 중요한 생존 포인트라고 본다. 대체로 기사에만 그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온라인 저널리즘이었는데, 여기에 ‘연결'과 ‘관계'라는 키워드로 서로 협업하고 연대하는 것이 숙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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