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여성 개발자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여성으로서, 직장인으로서, 개발자로서 행복도 느끼고 고민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성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터놓을 공간이 별로 없었다. 많은 IT기업 내에 남자 직원 비율이 높기 때문에 여성 직원끼리 모여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구글이 이런 부족함을 해결하고자 여성 개발들과 함께 할 자리를 마련했다.

구글코리아가 3월7일 서울 역삼동 사무실에서 ‘여성 개발자의 밤’ 행사를 마련했다. 이 행사는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 57개 나라에서 함께 열렸다. 구글코리아는 그동안 구글 API나 구글 제품 개발에 참여한 GDG 코리아 우먼(Google Developers Groups Korea Women) 개발자들과 내부 모임을 진행해 왔지만, 이렇게 외부 여성 개발자를 따로 모아 진행한 건 처음이다.

정김경숙 구글코리아 상무는 “국내 IT 인력은 워낙 부족한데 여성 IT 인력은 더더욱 찾기 힘들다”라며 “이런 여성개발자들을 격려해주고 좋은 친분을 서로 맺는데 도움을 주고자 이번행사를 기획했다”라고 설명했다. 행사는 개발자로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었고,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참가할 수 있도록 저녁식사와 놀이방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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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여성 개발자들이 가족과 친구와 함께 올 수 있도록 저녁식사와 놀이방 시설을 제공했다.


행사는 둘로 나뉘어 진행됐다. 첫 번째 세션에는 여성 개발자 멘토들이 강연을 했다. 멘토들은 현재 임원 자리에 있으면서 몇십년 이상 개발 경험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됐다. 장혜진 티베로 선임연구원, 이수정 이포넷 CEO, 조은숙 LG전자 개발 연구위원, 김지희 KT 미래기술연구소장이 멘토로 나섰다. 멘토들은 이미 작성된 참가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 개발자로서 조언을 전했다. 두 번째 세션은 조별로 참가자들을 나누고 멘토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으로 마련됐다.

이 날 모인 여성 개발자들은 비슷한 고민을 공유했다. 특히 결혼 이후 경력이 끊기거나,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하는 데 힘이 든다는 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개발자는 팀 단위로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동료가 코드를 테스트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시간도 많으며, 서비스 복구 작업을 하느라 새벽이나 공휴일에 출근하는 경우도 잦다. 자연스레 업무량이 늘고 예상치 못한 시간에 일하면서 시간 관리를 하기 힘들어진다. 이수정 CEO는 “우선순위를 정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면서 “모두가 수퍼우먼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가족과 주변지인들에게 도움을 받는 게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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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개발자들은 멘토들과 따로 모여 토론시간을 가졌다. 


또 다른 고민은 남성문화에서 오는 불편함이다. 과학 분야 직업은 대부분 여성 비율이 10% 안팎인데, 이 때문에 따라갈 수 있는 여성 롤모델이 부족하고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지희 상무는 “남성 동료와 함께 있어야 한다면 그들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라며 “여성 동료가 있으면 좋겠지만 남성 멘토나 친구를 1명 정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1명이라도 있으면 회사에 대한 소속감이 높아진다”라고 김지희 상무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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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로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부분도 고민 중 하나다. IT업계는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바뀌기 때문에 트렌드를 이해하고 신기술을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많은 여성 개발자들은 “바쁘더라도 개발자 커뮤니티나 외부교육을 통해 계속 공부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개인시간과 업무를 분리해 어떻게 공부하고 어떻게 정보를 얻을지에 대해서도 활발히 토론했다. 김지희 상무는 “커뮤니티를 이끄는 역할에 한 번쯤 도전해보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참가자들이 활발히 토론하는 공간에서는 자신들의 직장생활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을 형성했다. 최근 여성 개발자가 느끼는 문제는 단순히 여성에서 비롯된 문제라기보다는 남녀 구분없이 부딪힐 수 있는 문제들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계디자이너로 일하는 참가자 ㄱ씨는 “내 생각과 무관하게 상사들은 내가 결혼이나 출산 이후 회사를 그만둘 거라 생각한다”라며 “일에 대한 애정이 높지만, 다른 선배들을 봤을 때 내가 과연 계속 남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김지희 상무는 “실제 임원들은 직원을 대할 때 여성이나 남성을 구분해서 판단하지 않는다”라며 “눈에 보이는 성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오래 다닐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단순히 여성에게 국한되지 않고 남성들도 똑같이 고민하는 문제라는 의견도 나왔다. 미디어솔루션 업체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를 맞고 있는 양유민 참가자는 “입사 초기에는 대부분 진급이 수월하지만 누구나 과장 직급 이후에 살아남는 과정에 대해 고민한다”라며 “외부환경에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의지도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여성개발자가 느끼는 불편은 일부 남성중심 문화에서 파생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인 조직문화나 리더의 역할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는 의견도 나왔다. 참가자 ㄴ씨는 “직장에서 새벽까지 술자리를 강요하는 상사가 있다”라고 했지만, 다른 참가자 ㄷ씨는 “여성들을 배려해 회식 이후 카페에 가서 담소를 나누는 뒤풀이를 가진다”라고 말했다. 이런 차이는 팀원들을 존중해주는 문화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견이 많았다. 대기업 모바일 사업부에서 일하고 있는 ㅇ씨는 “우리 회사에는 여성개발자 비율이 20%를 넘었는데 자연스레 여성 직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라며 “회사에서 워킹맘이나 여성 임원을 위한 커뮤니티를 더 지원해주려고 노력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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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반에 걸친 행사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행사에 대해 대체로 만족하는 반응을 보였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여성 개발자 ㅂ씨는 “개발자로서 계속 성장하고 싶은 욕심이 많다”라며 “업무환경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면서 좋은 정보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제조업 분야에서 설계디자이너로 활동하는 ㅈ씨도 “우리 부서에는 여성 직원이 1명도 없어서 직장 내 고민을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라며 “앞으로 계속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정김경숙 상무는 “어느 직업군이나 위로 승진할수록 여성 동료를 만나기 힘들다”라며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끼리 공감하고 격려하는 것은 큰 위안이 되며 필요하다”말했다. 정김경숙 상무는 “앞으로 비슷한 행사를 계속 진행하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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