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의 심장박동 소리가 멈췄다. 신생 검색엔진이 눈에 띄지 않는다. 거의 모든 검색은 네이버로 통한다. 이것이 한국 검색의 현실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안 검색엔진이라는 이름으로 도전장을 내미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씨가 말랐다. 모바일 시장이 열리면서 또 한번의 기회를 맞은 듯하지만 좀체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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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VER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북미는 다양성의 토양이 상대적으로 비옥한 지역이다. NSA발 감시사회 논란이 퍼지면서 덕덕고라는 검색엔진이 주목을 받았다. 검색 이용자의 사적인 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면서도 고품질의 검색 결과를 제공하는 대안 검색서비스다. 스타트페이지라는 검색엔진도 같은 맥락에서 주목을 받았다. 이외에도 울프람알파블레코CC 검색에 이르기까지 범용이든 전문검색이든 다양한 목적과 용도의 검색엔진이 지금도 생존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다양성의 여지가 크게 쪼그라들었다. 한때 한국도 신규 검색엔진의 경쟁터가 된 적이 있었다. 네이버 검색을 넘어서기 위해 출사표를 던졌던 스타트업도 있었다. 언론에 자주 오르내렸고 유명세도 탔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인터넷 주소를 몇 번이고 다시 찾아도 웹사이트로 접속할 수 없다. 대부분이 3~4년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이들이 검색서비스를 포기하게 된 이유는 하나로 모아진다. 기술로 경쟁하는 시장이 아닌데다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각론과 진단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이러한 방향으로 의견은 수렴됐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비관적인 측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 당분간 대안검색이 출현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성공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위스폰] 구글식 검색 알고리즘으로 주목...“기회 있을 거라 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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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spon


“국내 포털 검색과는 다르게, 구글처럼 정확한 검색을 지향한다.”


2007년 가을, 검색 생태계에 훈풍이 불어닥쳤다. 서울대 교수와 10여명의 대학원생들은 힘을 합쳐 구글식 검색엔진을 표방한 위스폰을 10월15일에 세상에 내놨다. 당시 위스폰은 네이버의 ‘손맛' 검색 방식을 직접 겨냥하며 출범을 알렸다. 창업자인 박근수 교수는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들이 네티즌 입맛에 맞는 서비스로 성공한 것은 분명하지만 기술력이 부족해 앞으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며 경고장까지 날렸다. 하지만 결과는 아쉽게도 소멸이었다.


박근수 서울대 교수는 “벤처기업이 검색엔진을 만들기 시작해서 기존 검색엔진과 경쟁하기는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모바일이 기회의 터를 제공하긴 하지만 “검색에 대한 수요의 성격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실패의 쓴맛을 본 적이 있는 창업자의 생생한 소회다.

“네이버의 기술 수준이 높지는 않다. 우리가 그래서 개발한 것이다.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국내 검색 시장은 전세계 시장과 다른 측면이 있다. 기술적인 요소가 절대적이지 않고 네이버가 워낙 정보를 사람들 입맛에 맞게 잘 제공한다. 그 측면이 크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구글이 시장점유율을 가져가야 한다. 기술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환경이 아니다. 네이버를 보면 손에 의해 가공된 정보가 많다. 만들어진 정보이다. 월드컵 관련된 다양한 정보, 연예인이면 연예인 정보, 일반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정보가 잘 정리돼 있다. 구글에 들어가면 아무 것도 없지 않나. 그런 부분이 국내 검색시장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국내 검색의 미래 시장도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박 교수는 “시장의 절대적인 지배자가 생겨났고 검색이 제공하는 기능도 많아지면서 새로운 경쟁자가 나오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앞으로 어떤 생각지도 못한 기술이 나올 수도 있긴 하겠지만 현재로선 비관적”이라고 전망했다.

[큐로보] 독특한 시맨틱 검색으로 화제...“막대한 유지 비용 못 견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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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robo


큐로보 검색은 2008년 출시 당시 화제를 몰았다. 검색엔진의 기본 요소랄 수 있는 형태소 분석과 단어 사전(시소러스)에 의존하지 않는 독특한 시맨틱 검색으로 승부를 걸었다. 시소러스는 검색용 단어 사전으로 특정 키워드에 대한 동의어, 반의어, 계층 및 종속관계 등이 정의돼 있다. 검색엔진의 전형성을 파괴한 특이한 다중언어 검색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큐로보는 채 5년을 버티지 못하고 서비스를 일시 중단했다. 막대한 유지 비용을 감당하지 못했고 광범위한 이용자를 모으는 데도 실패했다. 현재 큐로보는 국내 서비스를 잠시 접고 미국에서 재기를 노리고 있다. 미국 조지워싱턴공대로부터 투자 제안을 받아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B2B 중심의 인공지능 기술을 납품할 계획도 갖고 있다.


조수진 부사장은 검색엔진을 둘러싼 국내 생태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검색엔진 유지에 굉장한 비용이 든다. 큐로보는 자동화로 설계가 됐다. 운영 인력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더 이상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 사업을 하느니 영어 서비스를 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으로 방향을 완전히 전환했다. 네이트나 파란은 매출 1500억원 이상 했던 검색엔진임에도 운영비 충당이 어려웠지 않나. 네이버 지식iN에 답글, 영화 콘텐츠 운영하는 데 300명씩 있다고 들었다. 검색엔진 기능보다는 전부 사람이 필요한 거다. 그 정도 유지하려면 연간 수백, 수천억원이 필요하다.”

조 부사장은 국내 이용자들이 네이버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고급 정보를 검색으로 찾고자 하는 수요가 너무 적었다고도 했다. 박근수 교수의 언급처럼 검색 기술력이 우선시되는 시장 환경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는 “한국인들은 새로운 정보에 대해서 폐쇄적인 것 같다”라며 “이걸 넘어서기 위해서는 마케팅이 필요했는데 너무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네이버라는 골리앗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술 투자보다는 마케팅 투자가 우선될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조수진 부사장도 앞으로 국내에서 새로운 대안 검색엔진이 출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했다. 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반네이버 이용자들의 소규모 채널에 불과한데다 고급 정보보다는 재미 정보에 대한 욕구가 강한 국내 이용자들을 감안할 때 네이버를 넘어서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그는 “검색 기술력은 웹문서 검색을 보면 된다”라고 꼬집은 뒤 "네이버와 다음의 검색 기술력이 어느 수준인지 확인해보라"고 주문했다.


[스도쿠] 문서 검색에 도전...“사용자 없어 철수”


스도쿠
▲ 스도쿠


사이냅소프트의 검색엔진 스도쿠는 문서 검색에 특화된 전문검색이었다. 2008년 5월 오픈한 스도쿠는 아래아한글, 워드, 파워포인트, 엑셀, PDF 등 문서파일을 굳이 내려받지 않고도 문서의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틈새를 찾아들어간 만큼 이용자들의 기대감도 컸다.


스도쿠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2011년 11월말 문을 닫았다. 엔터프라이즈 검색 전문 기업 와이즈넛을 거쳐 현재 사이냅소프트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박영진 부장은 스도쿠를 포기하게 된 이유를 3가지로 정리했다. 저작권, 개인정보, 트래픽 한계.


공개된 문서를 제3의 서비스에서 열람한 데 따른 저작권 이슈를 피하지 못했고 문서 내에 포함된 여러 개인정보를 걸러내지 않았던 탓에 송사에 휘말릴 가능성도 높았다. 무엇보다 포털과의 제휴로 문서검색 결과를 제공하기까지 했지만 트래픽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용자들의 문서 검색 수요가 극히 낮았던 것이 검색을 접게 된 계기였다.


박영진 부장은 포털의 집중도가 대안 검색의 탄생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한다.

“쇼핑이나 문서, 이미지 이런 방향으로 검색엔진이 진화해야 하는데 모든 콘텐츠가 포털에 몰려 있다. 포털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많으니 대안검색으로 갈 이유가 없다. 모바일 검색 쪽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업체들이 있었는데, 구글 등이 스마트폰에 선탑재된 상태로 진입해서 기술적으로 차별화하기가 너무 어렵다. 현재는 검색 비즈니스를 하려는 분들이 서비스를 접고 기존 업체로 돌아가는 경향이 강하다.”

그는 현재 대안적인 검색엔진을 개발하는 기업들은 SI에 의존하면서 검색엔진을 끼워파는 형태로 유지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대안 검색엔진의 미래는 비관적


레이 커즈와일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는 5~8년 안에 구글의 검색엔진이 혁신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예고했다. 웹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문서를 분석하는 구글 검색엔진에 인공지능을 결합시켜 사람처럼 생각하는 검색엔진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그만큼 검색엔진의 진화속도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빠르다.


그 속도로 대응할 수 있는 검색기업은 한정적이다. 아니 단일화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국내든 해외든 사정은 다르지 않다. 대안 검색의 토양은 더 척박해지고 신생 기업이 틈입할 여지는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검색엔진의 미래는 비관적이라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는다.


이안 위튼은 검색엔진을 ‘웹 드래곤’이라 칭하며 지식의 보고를 지키는 문지기에 비유했다. 동양과 달리 서양에서 드래곤은 사악한 동물로 여겨진다. 만약 모든 지식의 보물창고를 단 하나의 드래곤만이 지키는 현실이 고착화된다면 인류에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혹여 드래곤이 ‘악의 화신’으로 돌변하기로 한다면? 검색 생태계에 다양성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상황은 너무 열악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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