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규제안이 속속 나온다. 뉴욕 금융감독청은 자금세탁방지법 원칙을 빌려와 엄격한 규제안을 마련해 비트코인 업계의 반발을 불러왔다. 영국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처럼 쓰게 해 영국을 비트코인 허브로 만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한 구글 정책연구원이 정부가 어떻게 비트코인 규제안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제안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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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tcoin_circuit_red

구글 정책연구원 앤디 이는 ‘인터넷 아키텍처와 계층 원칙: 비트코인 규제를 위한 개념틀’이라는 논문에서 인터넷을 분석하는 계층 구조를 빌려 비트코인에 관한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비트코인 규제가 기존 규제와 전혀 다른 유연한 방식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앤디 이의 논문은 8월19일(현지시각) 인터넷 규제 포털 웹사이트 '인터넷 정책 리뷰’에 공개됐다.

앤디 이 연구원은 비트코인이 정부에 골칫거리를 안겼다고 분석했다. 금융 시스템을 혁신시킬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거래 내역 자체를 프로그래밍해 ‘스마트한 거래’를 가능케 하고, 거래 비용을 없애 아주 소액도 결제할 수 있게끔 한다.

하지만 규제할 중앙 기관이 없는 점은 정부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다. 모든 거래가 사용자가 직접 꾸린 P2P 네트워크상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정부가 규제를 적용할 곳이 없다. 기존에 정부는 은행 같은 금융기관을 직접 규제함으로써 모든 사용자를 간접적으로 규제해왔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은행 같은 기관이 없다. 그래서 정부는 어디에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한 입장이다.

이런 진퇴양난을 벗어나기 위해 앤디 이 연구원은 인터넷 계층구조를 빌리자고 제안했다. 인터넷은 물리적인 망 위에 TCP/IP라는 프로토콜을 얹어 모든 형태의 정보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도록 한 중립적인 정보 교환 플랫폼이다.

인터넷과 비트코인 구조는 닮은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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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ternet_Bitcoin_Diagram_01

앤디 이 연구원은 블록체인이라는 공공장부를 분배해 기록하는 식으로 작동하는 비트코인 프로토콜이 인터넷의 TCP/IP 같이 비트코인 네트워크를 작동시키는 밑바탕이라고 봤다.

비트코인은 콘텐츠 수준까지 올라왔을 때 주목받는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작동 방식에는 별 관심 없는 사람도 유튜브나 페이스북, 네이버 같은 인터넷 서비스는 사용한다. 비트코인으로 가치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 비트코인 거래소나 지갑, 결제서비스가 나와야 일반인도 비트코인에 관심을 둔다. 앤디 이 연구원은 전통 금융기관과 결제회사도 비트코인 기술을 받아들여 효율성을 높여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앤디 이 연구원은 특정 단계에서 다른 단계까지 아우르는 규제를 만들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인터넷이라는 구조 자체가 서로 다른 수준에는 관여하지 않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음란물을 규제하려고 인터넷 망 자체에 필터링 기능을 집어넣으면 음란물뿐 아니라 다른 정보까지도 들여다보게 된다. 애초 의도보다 과도한 규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모든 거래내역을 블록체인이라는 공공장부에 기록한다. 블록체인은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다. 실제로 컴퓨터 공학자 도리트 론과 아디 샤미르는 블록체인을 분석해 온라인 암거래 웹사이트 ‘실크로드’ 거래 내역을 밝혀낸 바 있다.

"비트코인 규제를 콘텐츠 수준에 마련해야"

앤디 이 연구원은 이 사실에 착안해 비트코인 규제를 콘텐츠 수준에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으로 마약을 거래한 범죄집단도 운영자금을 회수하려면 비트코인을 내다팔 수밖에 없다. 이처럼 비트코인과 실물이 교환되는 길목을 노리면 돈세탁 등 범죄활동을 솎아낼 수 있다는 것이 앤디 이 연구원의 주장이다. 요악하자면 비트코인 거래소를 규제하라는 얘기다.

다만 지금 금융기관이 적용받는 강력한 규제는 비트코인의 잠재력을 꺾을 우려가 있다. 앤디 이 연구원은 정부가 비트코인의 잠재력을 십분 활용하려면 지금보다 더 유연한 규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존 금융권처럼 강력한 규제를 비트코인 세계에 대입하면 ‘풍선 효과’가 나타나 오히려 비트코인이 지하경제로 퍼져나간다는 분석이다.

“실크로드가 문닫을 때 한 달 거래액은 120만달러 정도였습니다. 당시 비트코인 전체 거래액은 7억7천만달러였고요. 불법 거래는 비트코인 경제의 극히 일부분일뿐이지만 언론은 여기에만 집중했죠. 정말 중요한 것은 업계와 규제기관이 협력해 실물 경제를 더 효율적으로 보조하는 새 금융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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