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워치’ 너마저…

발행일 2014-09-11 15:00:26
행사가 절반은 훌쩍 넘겼다고 생각된 바로 그 시점. 특유의 어두운 무대 위에 홀로 선 남자가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무겁고도 확신에 찬 낮은 목소리로, 마치 단어 하나하나를 지르밟고 가듯 또렷하게. ‘원모어띵’.

애플의 새 제품발표회를 즐겨보는 이들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한 문장이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가 꼭꼭 감춰둔 비장의 카드를 소개할 때 썼던 말이잖나. 지난 2011년 이후 ‘원모어띵’을 무대에서 들을 수 없었으니 그야말로 3년 만이다. 팀 쿡 애플 CEO도 무대를 극적으로 연출하는 마법의 문장으로 ‘원모어띵’을 꺼내들었다. 현장에 직접 참여한 이들의 기립박수가 수십 초나 이어졌다. 잠시 뒤에는 제품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두근거림과 그게 무엇이든 일단 빨리 보여달라는 아우성이 한순간에 무대로 날아들었다다. 갈채가 잦아들고, 영상에 시계가 떠올랐다. “마침내 애플도!”

애플이 마침내 소문 속에서만 존재하던 ‘애플워치’를 공개했다. 행사 이전 이미 디자인이 밝혀진 ‘아이폰6’ 시리즈와 달리 누구도 실제 제품을 본 적 없는 물건이다. 삼성전자와 구글, 소니, 모토로라가 뛰어든 시장에 애플도 합류할 것이라는 신호탄이자, 뜨뜻미지근한 스마트워치 시장에 지각변동을 몰고 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득 담은 제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품의 외형과 기능이 구체적으로 소개될 때마다 현장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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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도 별수 없는 디자인

누구나 안다. 제품의 외형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모두를 만족하게 하는 객관적으로 멋진 디자인은 없다. 애플워치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는 멋진 제품으로 보일 수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그리 내키지 않을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먼저 세상에 나온 다른 업체의 여러 스마트워치와 비교해 그리 나아진 것이 없다는 점이다.

외형을 살펴보자. 스마트워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격형 디스플레이가 애플워치에도 그대로 쓰였다. 둥그스름하게 디자인된 모서리와 테두리를 보면, 만질만질한 조약돌 콘셉트의 디자인이 떠오르기도 한다. 반짝이는 은색과 금색, 검은색 3가지 색깔로 출시될 예정이라고 하지만, 그 어떤 색깔도 애플워치를 디지털 장난감 이상으로 포장해주지는 못한다. '갤럭시기어’부터 최신 ‘기어S’, ‘G와치’와 소니의 ‘스마트와치2’로 이어지는 얼리어답터만을 위한 제품이라는 인상이 애플워치도 비껴가지 못한 셈이다.

시계줄을 바꿀 수 있도록 했고, 여성과 남성용 2가지 크기로 만들어질 예정이지만, 이마저도 썩 마음에 드는 부분은 아니다. 우레탄 소재로 만들어진 줄은 삼성전자의 스마트워치에서 이미 수 없이 시도된 디자인이고, 금속이나 가죽으로 만들어진 애플워치 전용 시계줄도 정작 시계 몸체와 어울리지 않는다. 고급스러운 시계줄은 장난감 같은 시계를 더 도드라지게 한다.

다른 스마트워치와 구별되는 점을 꼽자면, 바로 용두(크라운)다. 애플은 애플 워치 옆면에 용두를 심었다. 마치 진짜 시계처럼 말이다. 애플은 여기에 '디지털 크라운’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기존 시계에 달려 있는 용두처럼 누르거나 돌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하지만 톱니바퀴를 돌리는 대신 시계의 디지털 화면을 조작하는 데 쓰인다. 말하자면 애플워치의 디지털 크라운은 전자제품이라는 인상이 강한 스마트워치를 좀 더 옛 시계와 가깝게 보이도록 하는 디자인적 '기믹(Gimmick, 속임수)'인 셈이다. 하지만 디지털 크라운이 오히려 제품을 더 어렵게 꼬아버렸다.

어려운 조작법, 복잡한 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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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워치 화면은 스마트폰처럼 터치 조작을 지원한다. 독특한 점은 가볍게 두드리는 동작인 ‘탭’과 누르는 조작 방식이 구별된다. 애플은 여기에도 이름을 붙였는데, '포스터치’다. 정전식 터치 방식과 감압식 조작 방식을 한 화면에 구현한 덕분이다. 여기에 스와이프 터치 조작까지 지원하고, 화면을 밑에서부터 끌어올리는 조작 방식도 넣었다. 화면을 조작하는 행동에만 최소한 4가지 각기 다른 방법이 존재하는 셈이다.

디지털 크라운은 여기에 4가지 조작법을 더한다. 앞뒤로 돌려 화면을 축소·확대할 수 있고, 워치 페이스(디지털 시계 화면)를 설정하는 데 쓰인다. 디지털 크라운을 누르면 응용프로그램 모음 화면이 나오고, 꾹 누르면 지능형 음성비서 시리를 호출할 수 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디지털 크라운 밑에 마련된 단추는 '디지털 터치’ 명령을 불러오는 단추로, 메시지나 이모티콘으로 친구와 대화하는 기능을 실행하는 역할을 한다.

애플워치의 화면 크기는 2인치 미만이다. 극도로 작은 디스플레이에 너무 많은 정보와 조작법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에서 애플이 강조한 부분이 학습 없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면, 애플워치는 이 명제를 한참이나 빗나간 셈이다.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과연 애플워치가 새로운 전자제품이나 기계에 비교적 친숙한 이른바 ‘얼리어답터’만을 위한 제품인지, 누구나 쓸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인지. 스마트폰이 소수의 얼리어답터에게만 매력적인 카테고리였다면, 지금처럼 쉽고 빠르게 확산할 수 있었을까. 애플워치와 스마트워치 제품 모두가 직면한 문제인 동시에 안경이나 팔찌 등 다양한 모양으로 등장하는 모든 웨어러블 기기가 떠안은 숙제이기도 하다.

웨어러블 시장의 근본을 의심해야 할 때

애플 제품발표 행사장의 분위기는 팀 쿡 CEO가 케빈 린치를 소개한 이후부터 조금씩 변했다. 열광하던 분위기는 숙연해졌고, 박수 소리도 잦아들었다. 무대 위에 선 인물과 관객의 대치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생중계 영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드문드문 관객 속에 섞인 이름 모를 이들이 기립박수를 유도하는 모습은 흡사 의도적인 ‘바람잡이’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할 정도였다. 애플워치를 시연하는 동안 케빈 린치 부사장이 날린 유머도 그리 잘 먹히지 않았다.

발표 직후 애플워치는 비판대에 올랐다. 디자인은 취향의 문제이지만, 애플워치는 기존 스마트워치가 안고 있던 문제 중 그 어떤 것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이모티콘으로 대화하는 ‘이모지’ 기능은 쓸모를 의심케 했고, 피트니스 기능도 이미 많이 봐 왔던 기능 아닌가. 일반판 외에 스포츠와 에디션으로 구분된 제품군은 보는 이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애플이 만들면 좀 다를 것'이라는 암묵적인 기대감은 제품 발표 직후 무너져내렸다. 많은 이들이 애플워치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닐까.

해외 IT 전문매체 <벤처비트>는 미국 현지시각으로 9월10일 전한 뉴스에서 밥 오도넬 테크아날리시스 분석가의 말을 인용해 2세대 애플워치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전했다.

밥 오도넬 분석가는 “좋은 시계인 것은 맞지만, 스마트워치 카테고리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했다”라며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카테고리에서 가장 뛰어난 제품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지금까지 출시된 몇 종 안 되는 스마트워치 중 그나마 나은 제품일 뿐이라는 얘기다.

우선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는 점이 문제다. 애플워치가 새로 나왔다고 해서 사용자들이 그동안 소홀히 하던 운동에 시간을 투자하려 할까.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문자를 치면 되는데, 굳이 손톱만한 화면으로 이모티콘을 보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디지털 크라운을 뒤로 돌려 사진을 화면 한가득 확대해본들 무슨 소용이랴. '스마트워치 카테고리를 다시 정의할 것’이라는 팀 쿡 CEO의 기대와 달리 애플워치도 그저 그런 스마트폰용 액세서리로만 남을 가능성이 높다. 기존 스마트워치는 시계를 안 차던 이들의 구매 욕구도, 원래 아날로그 시계를 쓰던 이들의 교체수요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말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페블, 소니 제품의 판매량이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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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정식으로 소개되지도 않은 제품에 2세대를 내다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문제다. 전자제품의 숙명이기도 하다. 애플워치는 마치 아이폰 시리즈처럼 더 나은 버전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한 번 사서 오래 차는 옛 시계와 명백히 다른 제품 수명 주기다.

패션 잡지 '레옹'의 신동현 편집장은 제품이 공개된 직후 <블로터닷넷>과 가진 인터뷰에서 애플워치에 퍽 긍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다음과 같은 설명이 눈에 띈다.

“시계라는 것 자체가 이미 필요가 없는 물건이다. 그럼에도 시계 산업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시계를 차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는 것, 고급 시계 시장이 크고 있다는 것은 시계에 원하는 건 시간이 아니라는 얘기다.”

시계는 의복과 같은 액세서리다. 하지만 매년, 혹은 분기마다 새 기능과 하드웨어를 탑재해 업그레이드되는 액세서리를 누가 선뜻 구입할 수 있을까. 많은 이들이 탐을 내는 보석만큼 아름답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써야 하는지 헷갈리는 데다가, 사자마자 구형이 돼버리는 액세서리에 존재가치를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스마트워치는 시계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시계를 구입하는 이들의 구매 습관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만하면, 애플을 비롯한 모든 웨어러블 기기 개발업체의 전략을 손봐야 할 때가 아닐런지. 지금은 사용자가 원한 적 없는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이 마치 보편적 미래인 것처럼 포장된 상황이다. 우습지만,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이후 차세대 먹거리를 웨어러블에서 찾으려는 업계의 안간힘이 과연 어디까지 대중에 먹히게 될지 지켜보는 것만이 흥미롭다. 제품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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