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폰에서 '네이버 웹툰’ 응용프로그램(앱)을 이용하는 이들은 안다. 네이버가 알쏭달쏭한 공지 화면을 무척 자주 띄운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모바일기기에서 ‘그리드(Grid) 컴퓨팅’을 구현하는 기능이다. 안내문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기능을 적용한 이후에는 이를 다시 되돌리는 방법도 없다. 사용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네이버의 웹툰 앱 개발 정책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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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ver_webtoon_800

사용자 스마트폰 빌려쓰는 '그리드 컴퓨팅'

네이버가 네이버 웹툰 앱에 띄우는 공지사항은 사용자의 기기로 그리드 컴퓨팅을 구현하겠다는 알림이다. 그리드 컴퓨팅은 사용자가 가진 기기끼리 자원을 엮어 일종의 서버처럼 쓰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지난 2013년 8월부터 시작됐다.

예를 들어 웹툰은 콘텐츠 특성상 크기가 퍽 큰 그림이나 사진을 전송하기 마련이다.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서버가 그림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때 서버에 자원이 투입된다. 사용자가 많이 몰릴수록 서버의 능력이 중요시된다. 종종 서버가 다운되는 것도 한꺼번에 많은 요청이 몰리는 탓이다.

그리드 컴퓨팅 기술을 이용하면, 네이버 쪽 서버의 부하를 다소 줄일 수 있다. 사용자의 스마트폰이 일종의 작은 서버가 돼 다른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 웹툰을 전송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네이버가 설명하는 '이미지 로딩 방식 개선’ 공지사항은 사용자의 스마트폰을 서버로 잠깐 빌리겠다는 동의 절차다. 서비스 제공자 본연의 역할 중 일부를 사용자에 떠넘기는 꼴이 아닐까.

팝업창 형태로 뜨는 안내문은 한 번 스윽 보고 마는 이들은 무작정 ‘약관에 동의합니다’ 단추를 누를지도 모를 일이다. 이 안내문이 그리드 컴퓨팅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첫 화면에는 이 기술을 이렇게 설명한다. 회색 글씨로, 그것도 첫 화면에서 가장 작은 크기로.

“와이브로로 와이파이 연결 사용시 사용자의 통신사 요금상품 가입형태에 따라 많은 양의 데이터 소모가 발생할 수 있으니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안타깝지만, 설명을 읽어봐도 이 기술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정확히 알아보려면, 약관을 읽어봐야 한다. 안내문에 포함된 이용약관 7조에 그리드 컴퓨팅 기술임을 알리는 설명이 들어가 있다. 첫 화면의 작은 글씨에도 눈이 잘 안 가는 상황에서 약관의 내용까지 꼼꼼히 읽고 넘어가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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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ver_350_app
안내문에서 ‘동의’ 단추를 누른 이후도 문제다. 네이버 웹툰 안드로이드용 앱에서는 그리드 컴퓨팅 기능을 끄는 방법이 없다. 한 번 동의하면, 계속 서버로 활동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동의하지 않을 때는 1주일에 한 번씩 집요하게 안내 창을 띄웠으면서, 동의한 이후에는 사용자의 철회 선택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리드 컴퓨팅 기능을 해제하는 방법은 앱을 지우고 다시 설치하는 것 뿐이다. 물론, 그 때부터는 1주일마다 반복되는 안내문을 또 봐야한다.

몰리는 트래픽이 부담인 네이버, 이해는 하지만…

지난 2014년 2월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네이버는 PC용 웹툰 서비스에서도 그리드 컴퓨팅을 구현하는 ‘스피드뷰’ 기능을 추가한 바 있다.

네이버는 당시 웹툰 새 회차가 올라오는 특정 시간대에 많은 사용자가 한꺼번에 몰려 스피드뷰를 적용했다. 네이버에 새 웹툰이 등록되는 시간은 보통 밤 11시에서 11시30분까지. 이 짧은 시간대에 사용자가 급격히 몰려 원활한 서비스를 위해 그리드 컴퓨팅을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스피드뷰 기능은 얼마간 서비스가 유지되다 이후 폐기됐다. 당시 네이버의 스피드뷰 기능에 적잖은 독자가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음은 물론이다.

그리드 컴퓨팅을 이용한다고 해도 사용자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우선 네이버 웹툰의 그리드 컴퓨팅 기능은 사용자의 스마트폰이 와이파이에 연결된 상태에서만 작동한다. 자칫 큰 데이터를 주고받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네트워크 환경을 제한한 덕분이다. 데이터를 주고받느라 배터리 소모 속도가 더 빨라질 가능성은 있지만, 사용자의 스마트폰에는 그리 나쁜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네이버의 안타까운 처지와 그리드 컴퓨팅의 경제성, 쾌적한 서비스를 위함이라는 순수성을 모두 너른 마음으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네이버의 양심과 친절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이 본연의 역할 일부를 사용자와 나누겠다는 발상, 그 과정에서 사용자의 선택권을 얼마간 빼앗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안내문은 한 번만 띄워 사용자를 귀찮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거나, 이미 ‘동의’ 단추를 누른 이들도 ‘설정’ 등 메뉴에서 언제든지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까. 혹은 사용자의 스마트폰을 마치 서버인양 빌리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서버자원에 투자를 하거나. 그것도 못하겠다면, 공지사항에 크게 써 놓으면 된다. “사용자의 스마트폰, 잠깐 빌리겠습니다.” 이 중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 무척 아쉽다.

안드로이드용 네이버 웹툰 앱은 사용자가 더 알기 쉽게 서비스를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하지 않을는지. 어쩌면 ‘배려'가 됐을지도 모르는 서비스가 종이 한 장 차이로 ‘강요'로 끝나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새소식]

네이버 홍보실은 9월23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서비스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사용자의 불편을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용자가 불편을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 팝업 알림창을 ‘일주일간 보지 않기’에서 ‘다시 보지 않기’로 고치기로 했습니다.” (2014년 9월23일 오전 9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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