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4일 두 가지 큼직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는 ‘팬택의 매각 공고 임박’,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내 보조금 분리공시 무산’입니다. 과연 국내 스마트폰 단말기 시장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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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팬택의 상황부터 보겠습니다. 워크아웃에서 법정관리로 넘어간 팬택이 결국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카드는 매각이었습니다. <연합뉴스>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최근 팬택에 대한 매각 공고 신청서를 승인하고 매각 주관사인 삼정회계법인은 24일 매일경제 등 일간지와 팬택 홈페이지에 정식으로 매각 공고를 게시했다”고 전했습니다. 앞으로 팬택은 10월7일까지 인수 의사를 갖고 있는 기업의 인수의향서(LOI)를 접수하기로 했습니다.

결국 자력으로 회생하는 절차는 쉽지 않게 됐고, 주인을 바꾸는 것이 팬택에게 남은,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위기 탈출 방법이 됐습니다. 결과는 열어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서는 국내 기업이 팬택에 손을 내밀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입니다. 오히려 해외 기업들이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인도의 마이크로맥스가 팬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냉정하게 바라봐도 국내보다 해외로, 특히 인도를 비롯한 신흥 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펼치는 것이 더 나아 보입니다.

물론 스마트폰 기술의 해외 유출, 그리고 일자리, 협력업체 문제 등 많은 부분을 우려하고 있지만 누구도 선뜻 팬택을 인수하거나 지분 투자를 할 분위기는 보이지 않습니다.그렇다고 3800억원 가치를 갖고 있는 회사를 없애버릴 수도 없습니다. 이미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워크아웃 돌입부터 통신사들에만 팬택의 위기를 해결하라고 강요하고 이에 통신사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때부터 팬택의 매각 가능성을 어느 정도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채권단이 적절한 투자자를 찾지 못했고 당장은 통신사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만 모든 책임을 통신사에게만 지우는 분위기 때문에 통신사도 옴짝달싹하지 못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업정지 기간 동안 쌓인 재고는 팬택의 자금 회전을 꽉 막았고, 잇달아 돌아오는 어음과 대금 결제는 끔찍했을 겁니다. 결국 상황은 순식간에 워크아웃에서 법정관리로 전환됐고, 그래도 답이 나오지 않으면서 눈깜짝할 새 매각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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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lecom_logo

팬택의 위기와 함께 부각됐던 게 불공정한 스마트폰 단말기 유통구조입니다. 정부도 이를 인지하고 있었고 정상적인 스마트폰 유통 환경을 만들고 보조금 과잉 경쟁을 막겠다며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을 추진해 왔습니다. 공교롭게도 팬택의 매각 소식이 전해진 날, 단통법에도 핵심 요소로 꼽혔던 ‘보조금 분리공시’가 무산됐다는 소식도 따라서 터졌습니다.

보조금 분리공시란 법정 보조금 한도 중에서 통신사가 내는 것과 단말기 제조사가 내는 것을 분리해서 공개하자는 겁니다. 우리가 단말기를 구입할 때 통신사를 통해 할인받는 27만원, 혹은 그 이상의 보조금은 모두 통신사가 내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 부분은 통신사가, 어느 정도는 단말기 제조사가 ‘판매 장려금’이라는 명목으로 보탭니다.

이게 합쳐서 나오다보니 통신 시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장려금이 많이 나오는 단말기에 가입자가 쏠리게 됩니다. 팬택의 위기를 비롯해 그간 외산 기업들이 국내에서 쓴잔을 들이켰던 것도 결국 비슷하게 나오는 통신사 보조금 위에 제조사들이 얼마나 더 많은 비용을 올리느냐가 품질이나 성능, 서비스보다도 더 직접적인 성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출고가가 똑같이 90만원에 잡힌 제품에 통신사 보조금이 올라간 뒤에 판매점으로 장려금이 추가로 올라가면 판매점 직원은 장려금이 더 많은 쪽을 우선적으로 판매할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자에게 제품을 더 싸게 팔면서 수익도 더 많이 남기 때문이죠.

결국 그 머니게임에서 이기려면 그만큼 ‘총알’이 필요한데, 한때 점유율 15%를 넘나들던 팬택의 곳간에 현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그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나를 알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시장이 얼어붙을까 단통법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세우던 팬택이 결국 돌아선 이유도 결국 이 통신사 보조금과 제조사 장려금이 분리되면 투명하게 경쟁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마이너스가 아니라 적정한 이윤을 남길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왔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피로를 느끼던 LG전자도 결국 분리공시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미래부와 방통위 역시 단통법의 핵심 요소로 분리공시를 꼽아 왔습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끝까지 이를 부정해 왔습니다. 마케팅 비용은 영업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삼성의 주장도 틀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 마케팅 비용이 시장에 혼란을 낳고 있다는 사회적 합의하에 단통법이 시행되고, 분리공시가 준비돼 왔습니다. 분리공시가 빠지면 단팥 없는 찐빵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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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lecom_fee_01

결국 규제개혁위원회가 단통법에서 이 분리공시를 제외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미래부와 방통위, 야당은 ‘삼성전자의 입김’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삼성전자는 기업 이익을 위한 입장에서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정면으로 막아선 기획재정부는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국내 경제를 삼성전자가 이끌고 있기 때문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어떻게 답을 할 건가요. 삼성은 단통법을 준수하면서 영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결국 단통법의 효력은 또 다시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이제 단통법의 방향은 더 오리무중이 됐습니다. 정말 시행해봐야 알 것 같지만 어떻게든 싸게 밀어낼 수 있는 활로는 완전히 막히지 않았습니다. 한도 이상의 보조금은 더 치밀하게, 증거가 남지 않게 음지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이제 제조사도, 통신사도 더 고도의 보조금 전략을 세워야 할 겁니다. 억지로 위안을 삼자면 이제 국내에 스마트폰을 파는 회사가 몇 남지 않았기 때문에 제2, 제3의 팬택, 그리고 HTC와 모토로라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을 볼 기회가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 정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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