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2일 저녁 7시, 선릉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강의실이 가득 찼다. 스타트업 지원 단체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핀테크'를 주제로 콘퍼런스를 열었기 때문이다. 퇴근시간에 바로 맞닿은 시각인데도 정원 100명을 훌쩍 넘긴 인파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협업 공간을 가득 채웠다. 핀테크가 그만큼 뜨거운 관심사이기 때문이리라.

‘핀테크(FinTech)’란 금융(Financi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기술을 접목한 금융 서비스를 뜻한다.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남긴 글을 분석해 대출 신청자의 신용도를 평가해 부도율을 10% 이상 낮춘 온라인 대출 서비스 등이 그 예다. 이 자리에서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황승익 한국NFC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신재은 퓨처플레이 CFO가 이야기를 나눴다.

▲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10월22일 저녁에 연 '핀테크 미니 콘퍼런스' 무대에 오른 강연자. 왼쪽부터 황승익 한국NFC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유영석 한국비트코인거래소 대표, 홍별철 레드헤링 대표, 신재은 퓨처플레이 CFO
▲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10월22일 저녁에 연 '핀테크 미니 콘퍼런스' 무대에 오른 강연자. 왼쪽부터 황승익 한국NFC 대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유영석 한국비트코인거래소 대표, 홍별철 레드헤링 대표, 신재은 퓨처플레이 CFO

한국은 핀테크 불모지

관심은 뜨거웠지만, 나눈 이야기는 어두웠다. 발표자와 청중 모두 ‘한국에선 규제 때문에 핀테크 스타트업이 나오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임정욱 센터장은 “미국에선 서비스를 만들어 영향력이 커지면 규제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국은 시작도 하기 전에 규제 얘기부터 나온다”라며 규제에 목매는 한국 금융당국을 비판했다.

“미국에는 많은 핀테크 스타트업이 쏟아집니다. 규제가 네거티브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다 해도 되고, 하면 안 되는 일만 알려주는 게 미국 시스템입니다. 반면 한국은 포지티브 시스템입니다.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죠. 공개 안 하니 데이터에 기반해 서비스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여전히 공급자 중심이지요.”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역시 “한국은 사전 규제 중심이라 핀테크 스타트업의 싹을 잘라버린다”라며 “어떤 서비스에 사용자가 반응할지 가늠할 필요도 없이 애초에 나올 수가 없다”라고 꼬집었다.

▲  황승익 한국NFC 대표가 한국에서 핀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하며 규제 장벽을 맞닥뜨린 경험을 공유했다
▲ 황승익 한국NFC 대표가 한국에서 핀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하며 규제 장벽을 맞닥뜨린 경험을 공유했다

황승익 한국NFC 대표는 핀테크 스타트업을 시작하며 직접 겪은 경험을 공개했다. 황 대표는 스마트폰에 신용카드를 가져다 대기만 하면 물건값을 결제하는 간편결제 서비스 ‘NFC페이’를 지난 3월 내놓았다.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실린 NFC 안테나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아직 서비스를 시작도 못 했다. 복잡한 규제 때문이다. 황 대표는 “쇼핑몰에 우리 결제 서비스를 붙여달라고 하니 금융회사와 제휴했냐고 묻고, 금융회사에 가니 금융감독원 보안성 심의 받았냐고 묻고, 금융감독원에 가니 보안성 심의 대상인지부터 확인해오라고 했다”라며 “이런 복잡한 절차는 로펌 상담 못 받으면 알기도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NFC페이는 모든 절차를 다 밟아 빠르면 올 연말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신재은 퓨처플레이 CFO 역시 한국에서 핀테크 스타트업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 CFO는 영국에서 20년 동안 살았다. 런던 모건스탠리에서 5년 동안 M&A 전문가로 일한 뒤 스프레딧이라는 핀테크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유럽에는 할부가 없다는 점에 착안해 체크카드에 3개월 무이자 할부를 제공하는 서비스였다. 서비스를 궤도에 올린 뒤 신 CFO는 한국에 왔다. 한국에도 핀테크 스타트업이 활약할 기회가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높은 규제 장벽서 사업을 시작하려 보니 장벽이 너무 높았다. 신재은 CFO는 “한국에서도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하자는 포부를 갖고 왔는데, 규제에 맞닥뜨리니 한국에서는 정말 힘들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고 있다”라며 “고위층에서 압력이나 움직임이 없는한 규제가 바뀌지 않는 것 같다”라고 비판했다.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이런 상황이 크게 3가지 요인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금융업계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위험도를 낮추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과감하게 금융에 신기술을 접목한 핀테크가 싹트기 어렵다. 금융전문가가 창업에 뛰어들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 사전 규제 중심이라 새 금융 서비스를 애초에 선보일 수조차 없다. 법적인 장벽도 있다. 창업지원법은 투자회사가 금융업에 투자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다. 핀테크 스타트업이 국내 투자회사에서 지원받기가 힘든 이유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그럼 한국에서 핀테크 스타트업을 여는 것은 헛발질일 뿐일까. 홍병철 레드헤링 대표는 아니라고 말했다. 미국 월스트리트 모건스탠리에서 일하는 등 금융업계에서 일해온 홍 대표는 규제만 풀리면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내다봤다.

“핀테크 분야에 작년 한 해만 30억달러가 투자됐고 지난 5년 동안 투자액이 3배 늘었는데, 아시아 시장에 투자된 금액은 1억달러가 조금 넘었어요. 아직 투자가 활성화 안 됐기 때문에 해법이 나오면 충분히 성장 가능성이 있지요.”

홍병철 대표는 결제말고 다른 분야에도 눈을 돌려보라고 조언했다. “페이먼트 말고도 애널리틱스, 시큐리티, 컴플라이언스 등 금융 안에도 다른 분야가 많아요. 그런 분야도 생각해보세요.”

황승익 한국NFC 대표도 “규제가 많은 곳일 수록 기회가 많다고 본다”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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